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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콘 Sep 08. 2023

[차대왕] 졸본성전투(2/3)

그 순간 졸본성의 동쪽에서 하늘을 찢는 듯한 새소리와 함께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마을을 밀어붙히듯 달려드는 검은 군세의 중심에는 황금 갑옷의 장수가 있었다. 바로 국왕 태조였다. 흑막대와 함께 돌진하며 그가 직접 말에 탄 채 돌진하며 칼을 하늘로 향하자 봉황이 날개를 피며 하늘을 붉게 물들었다.



봉황이 졸본성 위를 크게 맴돌자 성 안의 모든 불길들이 봉황을 향해 흡수돼듯 빨려올라갔다. 봉황은 불길을 흡수할 수록 덩치가 커져 어느새 양 날개로 졸본성을 모두 감쌀 수 있을 만큼 거대해졌다.



봉황이 졸본성 가장 높은 곳에 앉아 날개를 펼치며 한 번 더 크게 울자 구름이 찢어지고 땅이 흔들렸다. 그사이 흑막대는 창끝과 같은 대형으로 졸본성의 동문에 몰려 있던 적군을 뚫고 들어왔다.




그 선두에는 상오가 얇고 날카로운 칼로 사방의 적들을 무너뜨리며 앞장서고 있었고, 그들 주변으로는 흑막대의 폭탄이 사방으로 터지며 그들이 동문까지의 길을 순식간에 텄다.




“봉황이 떴다!”




“고구려의 흑막대 아냐?!”




옥저군은 소문만 무성했던 흑막대와 그보다 더 무서운 봉황의 기세에 짓눌려 오줌을 지리는 자도 있었고, 무기를 떨어트리고 경련을 일으키는 자도 나왔다.



결국 그들은 성과 거리를 두기 위해 뒤로 물러났고, 그 찰나에 국왕은 흑막병들과 함께 졸본성 입구까지 돌진했다. 해치장군은 성문을 열어 국왕을 맞이했다. 국왕이 말에서 내려 해치에게 말했다. 




“남은 병사는 몇이나 되느냐.”




“아직 피해가 크지는 않습니다. 전하!”




절을 한 채 답하는 해치의 어깨를 한 번 두드리며 국왕은 성벽 위로 올랐다.



실제 흑막병들을 처음 본 병사들은 그들의 검은 전투복을 유심히 지켜보았는데, 가만 보니 몇몇을 빼고 나머지는 그저 검은 천을 두른 사내들이며, 간혹 병사라 하기엔 나이가 있어 보이는 자들도 있었다. 왕의 지혜였다.



국왕은 진작에 말을 탈 줄 아는 자라도 모두 징병하여 검은 옷을 입혔고, 가장 선두에 있는 진짜 흑막대의 위용만으로 옥저군이 겁을 먹을 것이라 예측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져 옥저군이 거의 승기를 잡았던 전투를 잠시 후퇴하게 만들었다. 




 국왕이 생각할 때 위로는 부여군이, 아래에서는 옥저군이 양동작전을 짠 듯 밀려오는 것과 더불어 그들이 보여주는 전략들은 한낱 난이라기엔 너무나 체계적이었다.



이 정도로 고구려를 위협하고 장비를 지원할 수 있는 곳은 한나라뿐이었다.



국왕은 이번 전투가 단순 방어가 아닌 고구려와 한나라간의 기세싸움으로서 큰 의미가 깃들어 있음을 느꼈다. 따라서 그는 지켜내는 것 이상으로 메시지를 남겨야 했다. 국왕은 뒤돌아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병들은 들으라! 졸본은 이 고구려가 시작된 곳이다! 감히 이곳을 향해 칼을 겨눈 저들에게 고구려를 톡톡히 알려주도록 하라!”




모든 병사들이 국왕의 외침에 들고 있던 창칼들에 힘을 주며 그를 바라보았다. 국왕은 숨을 가다듬은 뒤 외쳤다.




“우린 오늘 저들을 모두 한 놈도 빠짐없이 전멸시킬 것이다!”




국왕이 칼을 높이 들며 외치자 병사들은 함성을 질렀다. 그들의 머리 위에서는 성보다 큰 봉황이 태양을 뒤덮는 밝은 빛으로 옥저군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고구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는 순간이었다. 




* * *




수성군은 어느새 선봉대를 격파하는 데에 성공했다. 언덕이 거의 점령당할 뻔했으나, 졸본의 지리에 빠삭한 고구려 기마병들의 양동작전은 부여의 선봉대를 농락하듯 공격했고, 비록 몇백에 달하는 기마병을 잃었지만 그 위치를 지켜낼 수 있었다.



부여의 선봉장이 생포되었을 때, 수성은 그 자리에서 그를 적호의 밥으로 주려 했으나, 진당의 만류가 있었다.




수성은 고집을 부리고 있기에는 코앞까지 다가온 부여군의 본대가 더 신경 쓰였기 때문에, 긴말 않고 진당의 의견을 따라 선봉장을 다섯 병과 함께 졸본으로 보냈다. 하지만 그 언덕을 지키기에는 부여의 본대는 엄청난 기세였다. 




시작은 후퇴였다. 기마병은 언덕을 달려나갈 수도 없이 수많은 궁병의 화살을 피해야만 했고, 수성은 적호의 엉덩이에 박힌 화살을 뽑으며 후퇴를 명해야만 했다.



하지만 마냥 후퇴할 수 만은 없었기에, 진당과 대다수의 군사를 후퇴시키는 동시에 소수의 기마병들과 함께 수성은 부여군에게 치고 빠지기를 반복했다. 




‘진군 속도를 늦추는 것만이 능사다…’




수성은 그 생각만으로 이백 남짓한 기마병을 대동해 빠른 기동력으로 그들을 좌, 우 번갈아 가며 괴롭혔다.



하지만 그의 전략도 두세 번 연속되자 부여군은 진을 바꿔 창병과 방패병을 선두로 내세웠고, 기를 쓰고 4차 돌진을 감행했을 때 수성은 단 한 번의 돌진 사이에 백 오십 가까이 되는 기마병을 잃고 후퇴해야만 했다.



그는 뒤로 멀리 빠져 있는 진당에게 창을 들어 신호를 보냈고, 진당은 그제야 기마병들에게 가서 수성에게 합류하라 명한 뒤 작전병과 함께 무리에서 동떨어져 도술을 시작했다. 진당의 도술이 시작되자 부여군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진당이 태풍을 일으켜 서쪽에서 동쪽으로 바람을 휩쓸면 그 태풍이 지나간 바로 후에 수성의 기마병들이 그들을 향해 돌진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수성이 닿지 못 하는 쪽의 병들이 계속 진군하는 것이 보이면 진당은 그들의 발밑 땅을 들어 올려 진군을 막기도 해야 했다. 




수 차례의 치고 빠지기가 이어지면서 수성은 지치고 있었다. 적호와 말들의 입에 거품이 묻어나기 시작했고 병사들은 점점 무기를 높이 들기 힘들어했다.



부여군은 아무리 공격해도 수가 줄어드는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여전히 그들의 병력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그들이 여덟 번째 공격하고 우회하는 순간 진당에게서 달려온 작전병 하나가 수성의 옆으로 말을 몰아 그에게 외쳤다.




“장군님! 진당께서 더는 이 위치에서는 지원이 벅차다고 하십니다!”




수성은 적호의 고개를 돌려 수성 주변의 적들을 떨어트린 뒤 빈 공간으로 뛰어올라 숨을 돌리며 외쳤다.




“퇴각하라!”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은 뒷걸음질 치며 물러나기 시작했다. 진당이 마지막으로 힘을 다해 땅에 손을 대자, 수성의 주변으로 땅이 물결치듯 오르내렸다.



당황한 부여군은 흔들리는 땅에 주저앉았고, 그 틈새에 고구려군은 수성을 호위하며 함께 뒤돌아 달아났다. 진당도 병사의 부축을 받으며 말에 올라탔고, 궁병들과 함께 달려 수성군과 합류했다.



부여군을 떨어트리고 삼십 분남짓 달아나 그들이 다시 진열을 가다듬은 곳은 졸본성에서 50리도 되지 않아 성 마루가 바로 보이는 사실상  마지막 방어선이었다. 수성의 눈에 보이는 졸본성은 불이 일고 있는 전쟁터였다.



그는 자신마저 뚫리면 졸본성은 끝날 것이란 걸 직감했다. 상처가 가득한 적호의 허리를 쓰다듬으며 그는 한 번 더 기운을 내보기로 했다. 멀리서는 부여군이 급할 것 없다는 듯 천천히 진열을 유지하며 앞으로 전진해 왔다.



이전보다 수가 많이 줄은 것을 보니 수성군이 분명 분발했던 것은 틀림없으나, 수성 또한 군사를 많이 잃어 수적 격차는 여전했다. 수성은 사기가 떨어져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군사들을 둘려보며 어찌해야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 순간, 익숙한 새 울음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졸본성을 향해 날아가는 봉황이 보였다. 국왕이 직접 출격한 것이었다. 봉황이 졸본성 위로 날아오르자 불길은 순식간에 모두 사라졌고 산 중턱에서 밀고 내려오는 고구려군을 이끄는 익숙한 황금갑옷이 졸본성안으로 밀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수성의 입가에 미소가 띄우며 생각했다. 




‘재수 없는 노인네…’




진당도 여전히 헐떡대며 웃다가 수성과 눈이 마주쳐 더 환하게 미소 지었다. 수성은 창을 다시 잡으며 부여군을 향해 말머리를 돌렸다. 부여군도 봉황의 울음소리에 놀랐는지 전진을 멈추었다. 수성은 창을 높이 들어 군사들에게 외쳤다. 




“봉황이 왔다! 고구려는 오늘 지지 않을 것이다!”




적호가 크게 울어 먼저 수성의 외침에 답했고, 병사들은 사기가 충천하여 함성을 질렀다. 수성이 창을 뻗자 진열은 재정비되었다. 수성은 뻗은 창을 앞으로 향하며 달려 나가며 외쳤다. 졸본성 위에서 크게 날갯짓하는 봉황은 수성의 돌격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마치 국왕의 시선같다고 수성은 생각했다. 




“졸본을 지켜라! 적장의 목을 베어라!”




병사들은 수성의 외침에 힘입어 함성을 지르며 돌진했다. 그때 저 멀리서 봉황의 울음소리가 다시 한번 울렸다. 진당도 눈을 감고 숨을 가다듬으며 마지막으로 힘을 쥐어짜네 큰 태풍을 일으켜 부여군의 궁병을 향해 날렸다.



부여군이 쏘는 모든 화살들은 태풍에 감겨 자신들에게 돌아가거나 사라졌다. 화살촉과 같은 대형으로 돌진한 수성과 기마병은 부여군의 중심에 갇혔고 그 자리에서 적호를 중심으로 둘러싼 전투가 이어졌다.



부여군의 한 중앙에서 공격을 감행하기 시작한 고구려군의 주변으로 부여군의 창끝이 모이기 시작했고, 많은 수의 기마병들이 목숨을 잃어갔다.



우렁찬 외침으로 적호와 병사들을 고무했고, 적호가 한 병사를 물어 던진 후에 크게 울부짖었을 때에는 주변의 부여군들이 일제히 멈칫하고 그 근처에 있던 몇몇은 적호의 패기에 눌려 넘어지기도 했다.



적호는 크게 울부짖은 후 병사들의 뒤에서 지휘하고 있던 장군을 향해 돌진했다. 부여군들은 적호를 향해 창을 뻗기도하고 칼을 휘두르기도 했으나 적호를 막을 수는 없었다.



수성은 적호의 위에 탄 채 적장에게 어느 정도 다달았을 때 창을 거꾸로 잡은 채 높이 들고는 적장에게 던졌고, 적장의 말은 그 창에 정통으로 맞고 주인과 함께 쓰러졌다. 적장이 숨을 돌리며 뒤돌아보자 붉은 눈의 호랑이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고 순식간에 그는 적호에게 물려 있었다.



부여군들은 몇초 만에 일어난 상황에 놀라서 수성과 적호를 중심으로 뒷걸음질 쳤고, 수성은 차분히 적호에서 내려 적장의 말에 꽂혀 있던 창을 뽑았다.



그는 적호에게 다가가 입에 물고 있던 자를 내려놓게 한 뒤 창으로 마무리지었고, 그의 투구를 벗겨들고 외쳤다.




“적장이 죽었다!”




부여군과 고구려군 모두의 시선이 수성에게 쏠렸다. 적호는 하늘과 땅이 울릴 정도로 크게 울었고, 그 주변에 서 있던 모든 병사들은 겁에 질려 나자빠지거나 달아나려 하기 시작했다.



채 절반도 남지 않았던 고구려군은 더욱 함성을 외치며 부여군을 베어나가기 시작했고, 우두머리를 잃은 부여군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진당은 기력이 빠진 채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더니 허탈하게 웃다가 다시 일어나 그들을 향해 돌풍을 일으켰고, 그렇게 전세는 역전되어 더욱 아수라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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