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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콘 Sep 08. 2023

[차대왕] 다음으로 위대한 왕

 왕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졸본이 아닌 국내성 안 그의 침소였다. 그가 몸을 일으키기 이전에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니 그 주변에는 신하들이 그를 향해 절을 하고 있었다.



“전하! 깨셨나이까!”



국왕의 인기척을 느낀 신하 한 명이 그가 깼어났음을 보고 외쳤고, 그의 침소 안에 있던 모두가 고개를 들어 그를 본 후 다시 고개를 숙이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어찌하여 우느냐.”



“전하께서는 일주일 동안 깨어나시지 못하셨나이다. 허나 이리 돌아오시니 어찌 안도의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있겠사옵니까.”



국왕이 겨우 소리를 내 묻자 그의 동맥을 살피던 어의가 답했다.



‘일주일이나 지났구나…’



국왕은 침상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천장을 보며 마지막 기억이 무엇인지 더듬어보았다. 졸본성 바로 앞에서 일어났던 한나라군과의 전투였다. 그는 마지막 기억에서 수성이 떠올랐다.



“수성은 어딨느냐.”



“현재 회복중이시옵니다. 하지만 거동이 가능하신지는 꽤 되었나이다.”



그 때, 멀리서 누군가 뛰어오는 발소리가 거세게 들려왔다. 곧 신하들이 제지할 틈도 없이 침소의 문을 열고 두 사내아이가 뛰어들어왔다. 막근과 막덕이었다. 두 세자는 왕의 침소에 미끄러지듯 달려와 그에게 붙어서는 펑펑 울기 시작했다.



“아바마마!”



“천만다행이옵니다. 아바마마!”



국왕은 핏기가 빠진 마른 손으로 두 세자를 어루만졌다. 



“체통을 지키거라. 한 나라의 세자들이 아니더냐.”



국왕이 웃으며 말하자 두 세자는 일어나 뒷걸음질 친 후 울음을 참으며 절을 올렸다. 국왕은 두 토끼같은 자식들에게 어서 돌아가 공부에 전념하라 말했다.



막근이 막덕을 데리고 나가려하자, 막덕이 형의 손을 뿌리치고 국왕에게 달려와 품에 안겼다. 



“어마마마처럼 가시는 줄 알았사옵니다.”



국왕은 막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걱정마라 일렀다. 국왕의 눈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 막덕은 이내 씩씩하게 절을 올리고 형을 따라 침소를 나갔다.



국왕은 두 세자가 나간 후에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이내 모두에게 나가라고 명하며 상오를 불러오라 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신하가 뒤를 돌자 상오가 이미 그 자리에 서 있었고, 신하는 깜짝 놀라며 국왕과 상오의 자리를 비켜주었다.



상오는 말없이 국왕의 침상 곁으로 다가섰다. 국왕은 눈을 감은 채 물었다. 



“너에게 해줄 말이 있다.”



“예. 명만 내리십시오.”



상오는 무릎꿇고 대답했다. 왕은 고통이 밀려오는 듯 표정이 찌푸려졌다. 잠시 후에 한차례 고통이 지나간 후 왕은 말을 이었다.



“너는 이제 새 왕을 섬기게 될 것이다.”



상오는 그 말에 놀라서 고개를 들어 왕을 바라보았다. 늙은 국왕이 이어 말했다.



“너를 곁에 둔 동안 단 한 순간도 후회한 적 없다. 다음 왕도 그렇게 느끼도록 잘 지키거라.”



상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단 한번도 국왕은 그에게 감정을 보인 적이 없었다. 아버지였던 적이 없었다.



“묻고 싶은게 많습니다.”



상오가 어렵게 입을 떼자 국왕은 얕은 코웃음과 함께 미소지으며 답했다.



“네 놈이 알게 될 일이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니 굳이 내가 설명해주고 싶지 않구나.”



상오는 그의 태도에 울컥해 무어라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국왕은 한숨을 내쉬며 나지막이 말했다.



“너에게 마지막으로 묻고자 하는 것이 있다.”



상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용안을 바라보았다. 국왕은 얕게 기침한 후 천장을 지그시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너는 가장 원하면서 절대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느냐.”



상오는 잠시 당황한 기색으로 용안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송구스럽사오나, 생각해 본 적 없사옵니다.”



왕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듯 하다가 고개를 돌려 상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고, 알게 된 이후부터는 무엇보다 크게 원하게 될 것이다.”



상오는 그의 시선에서 처음으로 아버지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왕은 말했다.



“그 때가 오면… 한 번 쯤은 가슴이 원하는대로 해보거라.”



그가 하는 말이 정말 자신의 시간이 담긴 말이라는 것을 상오는 느낄 수 있었다. 왕은 다시 천장으로 고개를 돌리며 들릴듯 말듯 말했다.



“나는 그리 하지 못했지…”



상오는 아무 말 없이 머릿 속으로 자신에게 그러한 것이 있는지 떠올려보려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소야의 얼굴이었다. 정말 소야가 자신에게 있어 가장 원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깊어지기 시작하려 할 때 쯤 왕이 눈을 감으며 말했다.



“피로하구나… 그만 물럿거라.”



상오는 눈이 음푹 패인 용안을 보며 그의 고된 시간들을 엿볼 수 있었다. 왕에게 간단히 목례를 올린 후 상오는 방을 나서려다 문지방에서 잠시 멈추었다. 절로 멈춘 발걸음과 무언가 터져나오려 하는 입을 겨우 참은 채 그는 방을 나섰다. 왕은 힘겹게 눈을 떠 상오가 다 나갔는지 확인한 후 말했다.



“수성을 불러라.”



국왕은 명하자 십분도 되지 않아 수성이 국왕의 침소에 들어왔다. 그의 오른 팔은 부목이 대진 채 천에 감싸여 있었다. 수성은 예를 갖춘 후 국왕의 침상 옆에 자리했다. 국왕이 수성에게 물었다.



“졸본은 어찌 되었느냐.”



“전하께서 정신을 잃으신 후에는 이미 남과 북으로 적군들이 모두 궤멸된 상황이었습니다. 소인이 명을 내려 전하의 소식이 성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막았고, 봉황도 며칠 내내 졸본성을 감싸고 버티자 적군들이 재차 공격을 감행할 생각을 못한 듯 하옵니다.”



국왕은 눈을 감았다. 마지막으로 힘을 다한 것이 효과를 본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는 한참을 뜸을 들여 고심하더니 이내 천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수성아.”



“예. 전하.”



국왕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름에 수성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국왕은 여전히 천장만 바라본 채 말을 이어갔다. 



“넌 필시 내가 미울 것이다.”



수성은 국왕의 말에 놀라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국왕은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수성을 바라보았다. 국왕의 눈은 붉어져있었다. 



“미안하다.”



수성은 심장이 뒤틀리는 기분을 느꼈다. 가슴팍이 뜨거워지는 것이 화가 치밀어 올라서인지, 생각지도 못했던 형의 눈물에 얼었던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왕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고통이 몰려와 다시 누울 수 밖에 없었다. 수성은 그런 그를 부축해 눕히고는 그의 이불을 다시 덮어주었다. 국왕은 수성의 팔을 잡았다. 수성과 국왕은 서로 눈을 마주보았다.



수성은 대체 그의 형이 뭘 원해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국왕의 손을 뿌리치고 일어났다. 



“왕위를… 왕위를 세자에게 줄 것이다.”



국왕이 목에 남은 힘을 쥐어짜내 말했다. 수성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형님께서는 그 말을 하기 위해 날 불러낸 것이오?”



수성의 목소리가 낮게 속삭이듯 들렸다. 국왕이 단호하게 말했다.



“고구려를 위한 일이다.”



“그럴거면 굳이 내게 미안하다는 말 따위 없이 임명하면 그만인 것을.”



“…”



국왕은 아무 말 없었다.



“이렇게 내게 사죄하면 형님 마음만 편해지는 것 아니오?”



“세자를 잘 부탁한다.”



“세자 같은 소리!”



수성의 분노 어린 목소리가 왕의 침소를 울렸다. 국왕은 눈을 질끈 감았다. 



“전장에 단 한 번도 나가본 적 없는 세자가 어찌 이 나라를 책임진단 말이오! 시로 나라를 다스릴 것이오? 노래로 적군을 물리칠 것이오? 어찌 그런 결정을 내리셨냐는 말이오!”



국왕의 미간이 찌푸러졌다. 아직 제 기운을 다 차리지 못한 국왕에겐 수성의 고함이 머릿속을 울리는 망치같이 들렸다. 수성은 숨을 돌리며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흥분은 가시지 않았지만 수성은 다시금 목소리를 차분하게 낮추며 말했다.



“형님. 내가 형님의 뜻을 거스른 적이 있소? 평생을 고구려를 위해 적호 등 위에서 창을 휘두른 나요! 내가 이 나라를 지켜냈고, 내가 나가서 적장의 목을 베었소! 이 태평천하가 누구 덕이라고 생각하시오? 형님이 아무리 날 사지로 내몰아도 군말없이 다 해냈단 말이오!”



국왕은 고개를 돌려 수성을 바라보았다. 수성의 눈은 설움이 넘쳐 눈물로 토해내고 있었다. 수성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 침소를 맴돌았다. 국왕은 그를 보며 말했다.



“…넌 왕이 될 재목은 아니다.”



수성은 왕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 멈춰섰다. 충격을 받은 듯한 그의 눈동자는 눈꺼풀이 앉으며 고개가 숙여졌다. 그는 이내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늘 형님의 뜻대로였소.”



수성이 고개를 들며 국왕에게 다가왔다.



“단 한번쯤은 내 뜻대로 가겠소.”



국왕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수성의 눈에서 살의를 느꼈다. 하지만 큰 소리를 낼 수도, 침상에서 몸을 피할 수도 없었다.



수성은 겨우 허리만 일으키는 국왕을 다시 눕힌 후 그가 덮고 있는 이불을 그의 목에 댄 후 목을 졸랐다. 국왕은 발버둥을 치는 등 반항을 하려 했지만 수성의 무게와 악력을 이겨내긴 힘들었다.


잠시 후 왕의 움직임은 멈추었고 이불에 감겨져 있던 국왕의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다.



이성을 되찾은 수성은 놀라 뒷걸음질 치다가 넘어졌고, 지금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그제서야 파악이 되었다. 왕을 시해했다.



고구려의 대장군이 자신의 형인 국왕을 시해했다. 그의 손이 미친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보고 침소 밖에 귀를 기울였다. 분명 누군가 멀지 않은 곳에 있었을 것이다. 왕의 까마귀. 하지만 대화를 들었을까? 알 수 없다. 수성은 거친 숨을 내쉬며 빠르게 생각했다.



다음 행동이 중요하다.



한 평생 왕위를 기다려온 그였다. 그는 결정을 내렸다. 



“밖에 누구 있느냐!”



“예. 전하!”



“어서 어의를 불러라! 급하다!”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어의가 침소로 들어왔다. 수성은 어의에게 어서 국왕의 상태를 확인하라 했다.



어의는 황급히 국왕에게 다가가 솜을 꺼내 왕의 코에 대어 상태를 확인했다. 어의는 떨리는 손으로 솜을 거두었다.



그때 그는 목에 마치 눌려져있는 듯 들어가있는 살을 봤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구겨져있는 왕의 이불이 눈에 들어와 어의의 머릿속에 상상을 더해주고 있었다.



그의 손은 더 거세게 떨리고 등에는 땀줄기가 흘렀다. 어의가 감히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을 때, 수성이 그의 뒤로 와 속삭였다.



“어떻게 된 건가.”



어의의 귀에 새어들어오는 수성의 목소리는 칼보다 날카롭고 실보다 얇았으며 산보다 무거웠다.



“후…훙하셨나이다.”



“분명 편히 가신 것이 맞느냐.”



어의는 감히 수성을 바라보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인 채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예…예… 그렇사옵나이다. 전하.”



“그래… 그러면 촉광례는 이 것으로 끝난 것이냐?”



어의는 주저했다. 수성이 그의 귓가에 더 다가가 말했다.



“끝난 것이냐고 물었다.”



어의는 자신을 뒤덮는 오만가지 생각과 공포에 짓눌려 눈을 질끔 감은 채 겨우 소리내었다.



“…예… 그렇사옵니다…”



수성은 어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러면 나가서 국상을 준비하라 일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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