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질 무렵 오랜만에 삼청동에 나갔는데 인적이 없는 거리가 을씨년 스러 웠다. 경복궁과 현대 미술관도 잠정적으로 문 닫고 거리는 가게 내놓은'임대문의' 표지판이 많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여파 때문 인 것이다.
거리에서 본 쇼윈도 속 피그먼트 조각품은 집콕 중인 잘 먹어 몸무게가 확 찐자들이 생각이 나게 하는 귀여운 작품이었다. 빈 가게 쇼윈도가 많은 가운데 한 가게에 있던 조각품이다.
'집에 있어야 할 시기지'하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집으로 왔다. 인적이 없으니 돌아다닐 재미도 없었다.
집에 오래 있으니 맛있게 먹었던 옛날 음식들만 하나씩 생각이 나고 만들어 먹으니 살만 찌고 있다.
짜파게티을 끓여 먹으며 예전에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인생 짜장면을 생각해 보았다.
짜장면은 자주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김치와 마찬가지로 물리지 않는 친밀한 음식이다.
인생 짜장면 하면 돌아가신 아버지와 같이 먹었던 명동의 어느 짜장면 집이 생각이 나는데 쫄깃한면발과 불맛이 가득한 양파 볶음이 많이 들어간 간짜장이었다.
중학교 입학할 때 명동에 나가서 제화점에서 검은 구두를 사주고 짜장면을 사주셨다.라떼는 짜장면도 귀할때라 특별한 날에 한번씩 먹었었다.
아버지는 무슨 요리와 빼갈을 드시고 나는 짜장면을 먹었는데 짜장면이 그리 맛있을 수가 없었다. 빼갈기운이 거나하게 도니 옛날이야기를 하셨었다.
옛날을 알수있는 사극을 보면 역병이 돌아 마을을 불태우고 역병 걸린 사람들을 가마니에 둘둘 말아 동구밖에 내다 버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예전에는 그랬다고 한다. 의료시설도 없으니 그것이 최선 일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도 어릴 때 학질이라는 전염병에 걸렸는데 동네 동구 밖에서 열흘을 지낸 적이 있었고 한여름에도 그렇게 추울 수가 없어서 이불을 몇 개씩 덮어도 소용이 없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친할머니가 마을 사람들 눈을 피해 몰래 미음을 입으로 흘려보낸 정성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그때가 아버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라고 했다.한데서 몇일인지 모르게 한참을 앓다가 정신이 돌아왔는데 사방은 깜깜하고 이불에 둘둘쌓여 누운채 밤하늘을 쳐다 보니 별이 총총해서 눈물이 났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힘들때는 이것보다 더 힘들었을 때를 생각하고 견뎌야 한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인생은 결코 만만 한 상대가 아니라고 자식들을 엄하게 교육했는데 거짓말을 한다 던가 작은 거라도 남의 것을 탐내거나 작은 실수를 해서 큰일을 만들기라도 하면 불같이 화내는 것은 물론이고
신호등 무시하고 길을 건넌다거나 늦게 돌아다니거나 문단속을 안 하거나 어른보다 늦게 약속 시간에 나온다거나 하는 일도 혼이 났다.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하라고 당부하셨다.
어린마음에 딴 집도 이럴까 의문도 가졌었다. 사소한 일이 그렇게 혼 날일이 었나 잘못된 일인가 생각도 한 적이 있지만 그런 것이 성품을 만드는 자산이었다는 걸 이 나이가 되니 깨닫게 된다.
요즘 볕이 좋아 웅크리고 마루에 앉아 있으면 괜히 눈물이 난다. 나를 혼낼 어른이 없다는 사실과 내가 어른의 나이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에 말이다.
아버지는 솜사탕처럼 부드러울 때도있었다. 술이 취하면 노래를 부르며 예전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고 따뜻한 봄날에 강아지와 산책도 많이 다녔다. 그런 것이 다 교육이 된 것이다.
명동 중국 대사관 근처였던 것 같은데 나무계단을 올라갔던 그 짜장면집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그때 짜장면 먹을 때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예전에도 지금도 짜장면을 먹으면 떡볶이 먹을 때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새집으로 이사 갔을 때 신문지 깔아 놓고 먹는 노란 단무지와 짜장면은 기분 때문에 더 맛있는지도 모른다.
단무지와 양파와 춘장 단짠의 묘한 조합도 좋다.
집에서 먹는 짜장면도 좋지만 면발과 짜장 소스와 불의 조합이 잘된 맛집을 찾아 외식하는 것도 괞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