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농리 아저씨 소금 반찬 도시락

어쩌면 삶은 소금커피와 레몬케잌(짠 맛)

by 달삣


절약하는 사람을 짠돌이라 하고 짠돌이 하면 소금이 생각난다. 그중 왕소금 말이다.


짠돌이가 없다면 이 세상은 너무 심심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오늘 아침도 큰 웃음을 주셨던 할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9번 마을버스를 탔는데 절약 끝판왕 할아버지를 보았다. 남방을 바지 속으로 집어넣은 검은색 허리띠를 보았는데 스템플러 심으로 촘촘히 박혀 있었다. '스티치 패션인가?'스템플러 심이 아침 햇살에 빛났다.


짠돌이라면 둘째가 라면 서러운 지인 중에 도농리 아저씨가 생각이 났다.


도농리 사셔서 그렇게 불렀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절약 끝판왕이셨다. 밥은 항상 도시락에 반찬 소금이고 어쩌다 핸드 블렌더로 주스라도 갈면 블랜더 에 묻은 과즙까지 핥아 드셨다. 위험한 일이다.


전쟁고아인 아저씨는 소싯적에 삼청동 어느 큰 술집 앞에서 구두닦이를 하셨는데 구두를 잘못 닦으면 손님에게 얻어터지고" 썅! 아 아파" 술집 기생들에게도 무시를 당했다고 했다."세수 좀 하그라 더러워"


아저씨는 "나중에 돈 벌면 꼭 이 집에 와서 술과 음식을 진탕 먹을 거야"하고 상상을 했다 한다. 술 먹을 걸 상상하며 대문간에서 술집 안채를 들여 다 보면 술집 여주인은 “뭘 들여다봐 어린 노무 자식이 구두나 반들거리게 닦아”하며 머리를 ‘콩’ 쥐여 박았다고 한다.


그 후 아저씨는 막노동, 장사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며 그 당시 양화점을 하다가 경동시장의 허름한 집들을 사들이고 돈도 많이 버셨다. 그런데 일을 가리지 않고 하다 보니 몸이 성한 데가 없고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치고 다친데 또 다쳐 다리에는 철심을 박고 사셨다.


아저씨는 어려서부터 배도 많이 곯고 고생을 하셔서 절약이 몸에 밴지라 돈을 번 후에도 소금과 도시락은 밥상에 빠지질 않으셨다고 한다.


가끔 놀러 가면 벽에는'나를 알고 나답게 살자'의 글이 쓰여있었다. 많이 배운 어떤 이보다 소크라테스의 수제자인 듯 '너 자신을 알라'를 이해하고 사신듯하다.요즘뜨고 있는 나훈아의 '테스형'트로트 노래속의 테스형의 뜻을 진즉에 알아채신거였다.


돌아가시기 전 그 옛날의 술집은 돈이 아까와서 근처도 안 가셨다고 한다. 아저씨가 가방끈 맬 때 구두통을 매셔서 배움에 갈증이 있으셨다. 학비 없는 학생들에 공납금을 많이 내주셨다.


주위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갈 곳 없는 어려운 이들을 많이 도왔다. 겨울에 연탄이 없는 이웃들에게는 조용히 연탄을 실어 나르셨다. 동네 노래자랑도 열어 노래 한곡 부르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무안하지 않도록 생활필수품도 나눠 줬다.


요즘같이 국가 장학금도 없는 시절에 단비 같은 역할을 하신 것이다. 얼마나 고마운 분이신가!

돈 아껴서 남을 돕기는 했어도 아저씨가 돌아가실 때는 문상객도 별로 없고 유골은 아저씨 유언데로 속초 바다에 뿌려졌다. 죽어서까지 땅 차지하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고 하셔서 유족들이 그렇게 했다.


소금을 그리 좋아하시더니 속초 바닷물에 가셨다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수근 댔다.


성경에서도 빛과 소금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둠 속의 빛, 썩어 가는 곳의 방부제 소금, 심심한 맛의 치명적인 맛소금 , 요리에서도 맛을 좌우하는 것은 간 , 즉 소금은 꼭 필요한 것이다.


사람도 소금같이 꼭 필요한 사람이 있는 것이다.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 심심할 때 유머로 분위기 살리는 사람 등이다.


“도농리 아저씨 잘 계시지요.”


소금을 보면 아저씨의 밥상에 소금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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