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이야기

사는맛 레시피(널럴한맛)

by 달삣

"아 덥다. 더워 머리에 김 난다"


1970년대 미장원에서는 머리 모양 잡을 때 연탄불에 고데기를 벌겋게 달구어 찬물에 급히 식히면 "치이익" 소리가 났다. 고데기를 찬수건에 식히고 재빠르게 종이를 대고 고데기로 머리를 말아서 구불거리는 모양을 잡는데

그러면 머리에서는 김이 났다. 미용사는 머리를 입김으로 호호 불었다.


머리 위 땡초 같은 더위 때문에 양산 쓰고 모자 써도 머리가 달아있다. 이럴 때는 밖에서 들어오자마자 냉장고 문을 열고 머리만이라도 집어넣어 식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냉장고 속 음식재료들이 부러울 정도다. 한쪽에 수박화채 만들어 놓은 것이 떨어져 가서 수박을 사러 갔다.


과일가게에 자리한 수박을 바라보니 수박과 사람 머리는 모양이 닮은 것 같다. 대두 소두 중두 여러 가지 크기의 수박들이 쌓여있다.


'수박 자서전


게으르게 낮잠 자며 새끼들에게 젖 주던 둥근 머리들 한겨울 솔기가 목덜미에 스치면 새끼들 내팽개친 체 털레털레 끌려간다.


나를 배구공처럼 트럭에 던지듯 싣고 내 머릴 두드린다. 둥근 머리에 칼 꽂고 빨간 뇌수를 흘리며 트럭을 타고 어디론가 가는 녀석도 있다.


'고놈 잘 익었겠지' 하며 여름 빚 받으러 온 놈이 문간에서 자고 있는 나를 '텅텅'발로 찬다.'



아파트 앞 과일가게에서 산 효수 같은 수박 한 통을 들고 제법 무거워 '낑낑'거리며 집으로 왔다.


수박은 시원하게 해서 그냥 잘라먹어도 좋고 작은 사각형으로 잘라 사이다 우유를 넣어 화채를 만들어도 좋고 믹서기에 갈아 수박 주스로 만들어도 좋다.


수박을 냉장고에 넣어서 시원하게 하려고 보니 음식물이 꽉 차 있어서 도저히 넣을 장소가 없다. 일단 냉장고 속을 정리하기로 했다.

끝없이 나오는 냉장고 속 식재료와 반찬들이 줄줄이 나온다. 냉장고 파먹기를 시작했지만 냉장고는 파도 파도 자꾸만 채워지는 화수분 같았다.


TV에서 보니 알코올로 청소한 냉장고는 세균수가 현저히 줄어든 걸 보여줘서 알코올을 뿌려가며 냉장고를 청소했다.


다 비우고 수박 한 통만 넣고 사진 한 장 찍었다.


"뭐지 순간이지만 시원한 이 느낌"


냉장고 속 수박한덩이처럼 냉장고 속에 열받은 내 머리를 넣어 식히고 싶다.'치이익'


곧 다시 여러가지음식물로 냉장고는 채워지고 내머리도 쓸데없는걱정으로 채워지겠지만 잠시나마 잡생각들이 사라져 버린 느낌이 들었다.비우니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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