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노포 경양식집

어쩌면 삶은 소금커피와 레몬 케잌(신맛)

by 달삣



춘천에 “함지”라는 경양식 집이 있는데 50년 전통을 잇는 집이라고 했다.


구름한점 없는 새파란 시월의 하늘의 새한마리가 쉬라고 휴일을 던져주고 날아간다.


그 휴일에 막내이모 정순씨 칠순 잔치를 “함지” 에서 한다고 한다. 막내 이모는 스믈여덟에 남편을 잃고 혼자 죽 사셨다. 장사를 하며 괴산과 서울 국도를 오가던 이모부를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잃고 딸 아들 남매를 춘천에서 작은 양장점을 하며 대학교 공부까지 시켰다.


지금도 돋보기 끼고 옷수선집을 하신다. 어릴때 이모네 집에 가봤을 때 기억은 발 시리고 몹시추웠던 기억이 난다. 단지 겨울추위에서 오는추위 아닌 냉혹한 기억이다. 어찌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그뒤로는 이모네 집을 가본적이 없다. 이모를 자주뵙긴 했는데 말이다.여자 혼자 사는 것이 얼마나 발시린가?


친정엄마에게 막내이모는 아픈 손가락이다.


6.25전쟁 통에 일곱살 어린애가 두살짜리을 업고 피난길에 나섯다가 이모를 떨어뜨려서 다리가 부러졌었다


전쟁통이니 치료도 받을수 없었을테고 우는 동생를 업고 피난을 다녔다고 한다. 그때 치료를 받지 못한 이모는 절음발이가 된것이다.


엄마는 그것 때문에 늘 죄책감을 안고 사셨다. 또 엄마가 혼기 찬 절음발이 이모를 이모부에게 소개 시켜줬는데 젊은나이에 과부가 됬으니 막내이모를 보면 늘 가슴한켠이 답답하고 뭉긋한 누름돌 한장이 있는것 같다고 했다.


이제는 노쇠하여 안 아픈곳이 없는 친정엄마와 머리 희끗하고 머리숱 없는 남편과 차를타고 경춘 가도를 달렸다. 예전보다 도로 사정이 많이 좋아져서 한시간 반정도 되니 춘천에 도착했다.


다들 떨어져서 생업이 바쁘다 보니 집안 행사때만 잠깐 보는데 어르신들은 볼 때마다 다르신 것 같다. 보청기를 끼고 잘보지도 못하시고 기억도 흐릿하고 단정하지도 않으시다.


우리 또래의 중년들은 머리숱이 없거나 검버섯이 끼거나 주름이 훈장처럼 골을 타고 흐른다.


잘 안나가는 친척이거나 오기싫은 친척들은 대부분 중국이나 제주도 출장 중이라고 둘러대고 사전에 참석하는 사람들 통에서 기별을 한다. 아니면 얼굴만 삐죽 비치고 밥만 먹고 내뺀다. 그런 이들은 붙잡지않는 것이 예의다. 예전엔 나도 그랬 으니끼.


자기가 내뱉은 말을 도로 줍는 시간이기도 하다 .언제 실의 빠진 사촌 동생에게 훈남이라고 칭찬해준 동생이 반갑게 맞아주고 예뻐졌다고 덕담도 듣는 날이기도 하다.


이날 모인이들은 막내이모 일생의 열매 들인것이다.


아들 손자 며느리 친구들 형제 자매가 모두모여 한사람의 칠십 평생을 축하하는 것이다. 착한아들과 똑 같은 어린 시절의 얼굴을 한손자가 함께 케잌을 자른다.

깔리는 청포도 배 사과 과일들이 식전 음식으로 깔린다.


팔십넘은 노인들은 벌써부터 검은 봉다리를 가방에서 꺼낸다. 과일을 챙기는데 아직 팔순 안된 외숙모가 한마디 하신다. 먹으라고 준건데 벌써 싸냐고 핀잔을 준다.”이따가 다 싸 들일게요” 하니 봉지를 거둔다. 청포도가 참달다.


그야말로 옛날식 경양식집 이라서 맛도 옛맛이 난다. 크림스프와 야채스프가 속을 편하가게 달래

준다. 아침부터 매연 가득한 도로를 달려온 일정의 메스꺼움을 달래주는 스프맛이 참좋다


조금있으니 메인 요리인 함박 스테이크와 돈까스와 대하 튀김까지 멋들어진 한상이다. 코끼리 비스킷이 따로 없다하시며 노인들이 다시 검은봉지를 다시꺼낸다. “이거 다못먹어 나중에 먹어야지” 하며 검은 비닐봉지에 먼저음식을 담고 조금 남은음식을 드신다. 이제는 까칠한 외숙모도 안말린다.


어르신들은 항상 배가 고프신것같다. 늘 배가 곯지 않을까 걱정을 하며 음식물 보따리를 챙기는것이다. 음식점에 가면 명품백은 안챙겨도 검은 봉지는 꼭챙기신다. 아니면 아직도 6.25전쟁 피난길에서 음식보따리 챙기는 기억에서 헤어 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한다.


음식을 어느정도 먹고나니 왁작 직껄 수다 시간이 시작된다.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구석에 앉아서 하나 하나의 친척들 얼굴을 바라보았다. 보다가 그얼굴들 속에서 내얼굴을 발견했다. 어떠한 경우라도 지지 않고 살아온 불굴의 얼굴들 아니 눈물버즘 가득한 얼굴들 속에서 말이다.


부모팔자가 반팔자라고 한 말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친척들 얼굴속에 나의 어린시절 현재 미래가 보이는 듯 했다. 말하지 않아도 어느집이 우환이 있고 좋은일이 있는지 아는 사이다. 가끔 집안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마치 흑백 사진 찍기 같은 느낌이든다 .아마 이 공간이 오십년이나 이어온 공간이라 그런 생각이 더 들게 했는지도 모른다. 오래된 그림과 조각품과 함지박 그릇들이 그런 생각을 이끌어 낸것일지도 모른다.


아직은 오십중반 나이지만 나중에 칠십되고 팔십되서 저 어른들 처럼 짱짱하게 살아 낼수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갑자기 존경심이 들었다.


먹었으니 화장실 갈 시간이 된것이다. 남녀공용 화장실문에서 집안 어른인 팔십삼세 외삼춘이 나오셨다. 화장실은 깨끗했고 남자소변기가 하나있고 문닫힌 화장실문을 열었을 때 나도 모르게 웃음이 크게 터졌다


좌변기와 양변기가 한 개의 문 안 화장실에 있었다. 의자처럼 앉을수도 쪼그리고 앉을수도있다. 참으로 친절한 변기들이다.


아마 주인장이 화장실 개비 할때 전에 있던 좌변기를 놔두고 양변기를 설치 한듯하다. 우리의 삶이 양변기와 좌변기처럼 조화롭게 노년과 중년과 청년의 공존이라는 것을 변기를 통해서 다시한번 느낄줄이야. 볼일보고 나오니 카운터에 노년의 주인장이 계셨다.


나도 모르게 목례를 했다. 단지 경양식을 먹었을 뿐인데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주인장이 고마웠다.


오는길에 막내이모부의 납골당을 들려서 왔다. 칠순을 맞이한 이모가 돌아가신 이모부가 생각이 났나보다 이모부가 돌아가시고 처음 가보는 것이다. 돌아가실때는 너무 어렸으므로 이모부의 죽음은 아득하게 느껴 지기만 했었다.


납골당에서도 삶과 죽음은 공존한다고 느꼈다. 납골당안 유리벽안에 막내 이모와 이모부의 약혼 흑백사진이 오래 도록 함께 했을테고 경양식집의 양변기 좌변기처럼 산자가 죽은자를 끌어안고 평생을 살고 죽은자가 산자의 기억속에서 살며 용기도 주고 동행하는 우리네 삶이 애쟎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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