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라면이 익는 시간

어쩌면 삶은 소금커피와 레몬케잌(신맛)

by 달삣

배가 출출할 때는 어른들의 간식 삼분 인스턴트 라면이 제격이다.


즉석라면을 뜯어 끓는 물을 붓고 기다리면서

"만약에 라면이 익는 삼분 숨을 못 쉬면 어떻게 될까? "는 싱거운 의문이 생겼다.


말할 것도 없이 생사를 오가는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다.


생명은 숨을 쉬어야 하니까 말이다. 3분 길어야 15분만 지나면 저승인 것이니 삶과 죽음의 거리는 가깝고도 먼 거리다.


어릴 때는 무조건 죽음은 공포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죽음이 꼭 나쁘지만은 아닌 자연의 섭리인걸 알았다. 물론 사고사나 스스로 죽는 일 말고 수명대로 사는 걸 말하는 거다.


노인이 수명을 다하면 죽고 다시 자손의 아기가 태어난다. 집 근처 숲의 나뭇잎과 많이 닮았다. 생명은 자연스럽게 순환되는 것이다


내가 처음 주검을 본 것은 국민학교 사 학년 때 도농리 왕숙천에서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몸이었는데 그냥 자는 것 같았다.


물놀이하다가 심장마비로 죽은 것인데 자갈돌 위에 그냥 눕혀져 있었다. 그때 죽음이 있고 산다는 것에는 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이 컸었다.


한동안 물놀이를 하지 못했는데 어린 아이라 금방 까먹고 물놀이를 하다가 식겁한 적이 있다


수영도 못하면서 개울 가운데 쪽으로 아이들을 쫓아가다가 갑자기 강바닥이 없는 것이다. 발이 허공에 뜬 기분이 들었다.


짧은 순간 이런 것이 죽음이 아닐까 생각했다. 다행히 옆쪽에 튀어나온 큰 돌을 발판 삼아 강 웅덩이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어려서는 산다는 게 힘들지 않았으므로 빨리 어른이 됐으면 했다.



십여 년 전 숲이 가까운 곳에 이사를 왔는데 처음엔 도시의 소음과 빛에 익숙해져서 고요하고 깜깜 밤이 적응이 안되었다.


하지만 새소리와 눈으로 새의 둥지 추적과 나무와 나뭇잎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16층 아파트 뒤편에 숲길을 매일 내려다볼 수 있는데 재미도 있고 산책도 자주 하게 되었다.


봄이 되면 겨우내 웅크리던 몸을 추슬러 동네 뒷산을 오르면 많은 사색을 하게 한다. 하루하루 변해가는 나무와 잎을 보면서 자연스럽다 라는 생각이 든다.


시인 셀리는 “겨울이 긴 것은 봄이 곧 오기 때문이라고 “ 봄을 품고 있는 겨울이 꼭 혹독 하지는 않은 희망의 노래를 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때도 거저 오지 않는다.


길고 긴 겨울을 떨구느라 몇 차례의 꽃샘추위가 온다.


꽃샘추위는 봄이 샘이나서 오는 게 아니라 겨울 추위에도 못 떠난 바삭한 누런 잎들을 떨구고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려고 하는 것이다. ‘봄이다’ 하고 따뜻하다가 추운 바람이 불고 눈이 오고 하는 자연의 섭리가 아닌가 한다.


얍삽하게 붙어있는 누런 잎들은 연두색 새싹에 밀려 하루하루 없어지는 수가 많아진다. 여름이 되기 전에 나무는 연두에서 초록색 잎으로 덮는다. 누런 잎들은 바닥으로 떨어져 거름이 되고 새싹들을 키운다.


여름에 태풍이 몰고 간 뒷자리는 항상 흔적을 남긴다. 동네 뒷산을 올라가 보니 태풍 속에 버티지 못한 고목들이 쓰러져 있었다. 어딘가 썩어 있고 아픈 부분이 자연의 회초리에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모양새가 흉한 것이 아니고 편안히 쉬고 있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되기까지 한다. 그 옆에 어린 나무는 태풍 속에서 잘 견뎌 잎사귀의 초록색이 짙어졌다.


가을이 되면 나뭇잎은 알록달록 아름다워지고 열매를 맺는다. 주위 작은 동물 청설모나 다람쥐의 식량도 마련해준다. 넉넉해지는 것이다. 겨울에는 긴 잠을 자는 것이다.


견디는 일만 남은 것이다. 겨울을 잘 견뎌야 내년 봄이 오는걸 잎이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새싹이 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것은 그림 같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하지만 봄에 싹이 나야 할 나무가 꺾여 있거나 누군가 훼손하여 짓밟혀 시들하거나 죽어 가면 맘이 아프다. 자연스럽지가 아닌 것이다.


자연은 새찬 비바람 견디라고 처음에 약한 추위 외 눈비를 준다. 꽃샘추위를 주는 것이다. 누런 잎 자리에 밀리지 말라고 누런 잎도 떨구어준다.


나뭇잎 새싹이 차고 나갈 때는 차고 나가야 한다. 어떤 나무가 될지 아무도 모르는데 미리 포기시키거나 상처 주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인 것이다.


생명은 기본적으로 볕과 공기와 물만 있으면 산다. 원래 자연은 견딜만한 시련을 준다.


제일 나쁜 것은 생명이 생명을 훼손시키고 죽이는 일이다


인간은 스스로 죽는 일은 더욱 삼가야 한다.


정약용 선생은 벼랑 끝에 앉아도 돌아 앉으면 생각이 바뀐다고 했다.’ 죽을힘이면 산다’ 하지 않은가 뉴스에서 보면 스스로 목숨끊는이들이 많다.


철들기 시작하며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순간부터”햄릿의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 때문에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그럴 때는 인생의 겨울이라 생각하자 겨울이 혹독할수록 연분홍 진달래 피는 봄을 그리워하며 봄이 오면 또 일 년을 살 수 있으니까 말이다.


자연이 준 생명은 열심히 살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닐까.


언젠가는 저 아득하고 먼 영원으로 갈 테니까. 자연에서 섭리를 배우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축복인 것이다. 셀리의 종달새 시가 생각난다.


종달새에게


즐거운 소리의 모든 가락들보다, 책에서 볼 수 있는 모든 보물들보다 낫다.

네 기술은 시인에게 너 대지의 조소자여! 가르쳐다오 내게 네 두뇌가 알고 있는 환희의 절반을

그러면 이러한 조화로운 광희가 내 입술에서 흐르리

그러면 세계는 귀를 기울이리라

지금 내가 귀를 기울이고 있듯이!



라면이 다 익었다. 맛있게 먹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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