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복숭아

인생맛 레시피 (단 맛)

by 달삣

복숭아가 맛있는 여름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과일은 뭐예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면 대답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복숭아'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나도 그렇다.

과일 중의 으뜸이다.


가장 먼저 복숭아의 매력은 맛이다.

달콤하고 향긋한 내음이 참 좋다.

게다가 탐스런 모습도 빠지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삶은 황홀하다.


육즙이 가득한 감칠맛의 꽃등심을 숯불에 구을 때, 쫄깃한 질감의 생선회나 흰 속살 가득한 울진대게도 맛나지만, 과일의 그 달콤하고 새콤한 조화로운 맛에는 당할 수가 없다.


조화로운 맛을 지닌 복숭아를 한입 꽉 깨물면

맛을 주관하는 뇌의 중추 신경을 제대로 건드려서 옛날을 추억하게 하는 오묘한 일이 벌어진다.


대체로 좋은 기억들 달달하고 좋았던 기억들이다.

이렇게 경험을 주는 맛들은 삶의 축복인 것이다.

그러니까 복숭아는 축복의 과일인 셈인 것이다.


삶의 축복이 쏟아지는 순간은 아기 탄생의 순간이다. 생명의 경이로움은 탄생이고 그것은 아기와 새싹이다.

그래서인지 전쟁통에서 배고픔 속에서도 해는 뜨고 아기는 태어나고 나무의 싹은 난다. 신은 축복 하지만 배반하는 것은 모지리 인간 들인 것이다.


여름만 되면 축복의 과일 복숭아를 제대로 먹기 위해 아파트 초입에 있는 과일가게를 기웃거리게 된다. 잘 고르지 못하면 축복이고 뭐고 불평과 자아비판까지 들어간다.


"속았어 맛있어 보여서 샀는데 복숭아 맛이 맹탕이야 맹탕!" 하거나 "왜 이리 시냐?"소리가 절로 나온다.


복숭아라고 다 향긋하고 달콤하지는 않다. 때를 잘 맞춰 출하하는 복숭아를 사야 한다. 아니면 비싼 복숭아를 사게 된다.


몇 번 속아서 인지 복숭아를 사려고 과일 가게에서 망설이게 된다."할아버지 이 복숭아 맛있어요?"

하고 물어보면 할아버지는 복숭아 껍질처럼 까칠하게 대답한다.


"낸들 아나. 복숭아 맛이 하나하나 다 른걸"하고 말한다. 그럼 나는' 요번 것은 맛이 없군'하고 돌아선다.


매미가 대차게 울던 날 과일가게를 지나가는데 복숭아가 보였다.그러나 요번은 달 보였다.

"복숭아가 시집왔다니까, 부끄러워 볼 붉으스럼한것봐"하며 과일가게 할아버지가 붙잡는다.


보기에도 먹음직했다. 백도 복숭아였다.

아무래도 맛은 말이라 했던가! 할아버지의 말 수완에 넘어가 정말 맛있어 보이는 것이었다.


매번 썩은 가지나 감자를 한 번씩 장바구니에 몰래 넣는 할머니와는 달리 한번 믿고 사기로 했다.


"할아버지 몇 개만 주세요"

"한 상자 사가! 후회 안 할 거야"

할아버지가 권했지만 그냥 몇 개만 사서 먹어 보기로 했다.


집에 와서 개수대에서 복숭아의 까칠한 것들을 씻고 냉장고에 넣어 시원하게 해 놓고 다른 일을 하다가 복숭아를 꺼냈다.


백도 복숭아의 모양은 붉은기가 돌며 밑부분은 약간의 연두색이 아기 엉덩이의 몽고반점처럼 싱그럽다.


껍질을 벗겨 입으로 과육을 한입 씹으니 과즙이 풍부하여 입에서 줄줄 흐른다. 단맛과 신맛의 조화와 더불어 복숭아 특유의 유기산 맛이 폭발했다.


나도 모르게"뭐야 뭐야 너무 맛있잖아"

복숭아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매번 설렘으로 복숭아를 택했다가 '꽝'인 경우가 많았고 달고 맛있어도 뭔가 부족했었다.


뇌충추의 신경을 제대로 건드리고 예전의 달달한 추억들이 떠올랐다. 제대로 뽑은 맛 중의 맛이었다.


할아버지 말대로' 한 상자 사 올걸 '하며 후회가 됐다. 과일 가게로 다시 가서"할아버지 복숭아 다 팔렸어요? 한 상자 살려고요"

했더니 "그렇게 맛있는 것은 귀신 같이 팔려 다 팔았어"한다.


아까웠다.


고급스러운 단순 간은 많지가 않은데 말이다. 우리네 인생사도 단맛의 순간은 가끔 찾아오는 행복인 것 같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갈증 날 때 먹는 여름날의 찬 보리차처럼 아주 가끔 찾아오는 행복은 아주 짧다. 그리고는 그 기억으로 쓰디쓴 시절을 견디는 것이다.


또 하나의 복숭아 단물을 기대하며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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