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미래를 비추는 거울 같았다. 반도체 뉴스에 등장하는, 아이돌의 사인 CD보다도 더 매끄럽고 신비로운 원반. 우리는 그것을 ‘웨이퍼’라고 부른다. 20년 전에는 지름 20센티미터짜리 작은 우주였고, 지금은 30센티미터로 그 우주가 더욱 넓어졌다. 이 동그란 판 위에서, 보이지 않는 세상의 질서가 새롭게 쓰이고 있었다.
갓 투입된 새 웨이퍼가 우리가 쓰는 USB 메모리 같은 완제품이 되기까지, 꼬박 세 달의 시간이 걸렸다. 요즘은 그나마 빨라져 한 달 남짓이라지만, 우리의 슬픔은 그 시간의 길이에서 시작된다. 공장은 잠들지 않는 거인이었다. 24시간, 심장이 멎지 않는 거인처럼 쉼 없이 울었다. 밤에도, 별이 총총한 새벽에도, 생산 기계의 작은 기침 소리 하나에 우리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주문을 받고 생산을 시작하면 이미 늦는다는, 업계의 경제 논리는 우리에겐 그저 족쇄일 뿐이었다. 수백 대의 기계, 수백 가지의 점검 목록. 기계를 세우는 순간, 세상의 시간이 우리를 앞질러 달려 나갔다. 그래서 우리는 멈출 수 없었다. 팔리든 팔리지 않든, 이득이 남든 손해를 보든, 웨이퍼는 끊임없이 태어나야만 했다. 마치 벼랑 끝을 향해 마주 보고 달리는 두 대의 자동차처럼, 먼저 핸들을 꺾는 쪽이 지는 잔인한 ‘치킨 게임’. 그 게임의 운전대는 스물 남짓한 우리들의 손에 위태롭게 들려 있었다.
기계가 멈추면 생산량이 줄고, 우리가 만든 웨이퍼 한 장의 생산비용은 폭등했다. 시간은 돈이었고, 돈은 우리의 목숨 줄이었다. 그래서 기계가 멈추면, 우리는 밤낮도, 휴일도 없이 달려들어야 했다.
물론, ‘부자 회사’는 달랐다. 만들어야 할 반도체보다 기계가 더 많았으니까. 그들에게 기계 한 대의 휴식은 그저 작은 여유일 뿐이었다. 하지만 2000cc 자동차로 3000cc의 힘을 쥐어짜야 하는 우리 같은 ‘가난한 회사’는 사정이 달랐다. 기계 한 대 한 대가 우리의 생존과 직결됐다. 기계 하나가 멈추면, 대여섯 명의 고객사 담당자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전화를 걸어왔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라인 세울 거예요?”
새벽 두 시에도, 해가 채 뜨지 않은 아침 여섯 시에도 그들의 목소리는 수화기를 뚫고 심장을 후벼 팠다. 받지 않으면, 받을 때까지 울리는 그 전화벨 소리는 지옥의 전주곡 같았다. 급한 건 그들인데, 부탁이나 사정 따위는 없었다. 그저 닦달하고, 몰아세울 뿐. 그럴 때면 가끔 억울함에 숨이 턱 막혔다.
어느 새벽이었다. 잠시 고개를 들자, 공장 벽에 붙은 포스터가 흐릿한 시야에 들어왔다. 번쩍이는 고급 세단 한 대와 웨이퍼 한 장이 등가 교환되는 그림. ‘저게 정말일까.’ 헛웃음이 나왔다.
그때였다.
“와장창-!”
공기의 흐름마저 통제된 클린룸의 정적을 깨부수는, 날카로운 파열음.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이제 막 입사한 지 반년쯤 된 후배였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웨이퍼 캐리어(carrrier)가 바닥에 나뒹굴고, 스물다섯 장의 웨이퍼가 은빛 나비의 날개처럼 산산조각 나 흩어졌다.
순간, 나는 포스터 속의 그 고급 세단이 박살 나는 환영을 보았다. 스물다섯 개의 태양이 한순간에 빛을 잃고 바닥에 처박혔다. 후배는 방진복과 마스크로 온몸을 가렸지만, 그 너머로 새어 나오는 공포와 절망은 감출 수 없었다. 새하얀 방진모 아래, 그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깨진 웨이퍼 조각들처럼 바스러질 것만 같았다.
그 후배는 아마, 얼마 못 가 고향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우리는 아무도 그의 행방을 묻지 않았다. 그저 스물다섯 개의 태양과 함께, 그의 꿈도 산산조각 났으리라 짐작할 뿐이었다.
또 다른 날, 지방 출장 중에 전화벨이 미친 듯이 울렸다. 함께 일하던 선배가 기계를 수리하다 웨이퍼 쉰 장을 전부 날려 먹었다는 소식이었다. 쉰 장.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차를 돌려 미친 듯이 공장으로 향했다.
공장 입구에서 출입 카드를 찍고 들어서는 순간, 퇴실하던 고객사 사람들과 마주쳤다. 나는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지만, 그들은 나를 유령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때 본 그들의 얼굴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분노도, 실망도 아니었다. 마치 저승사자를 목전에 둔 망자처럼, 모든 것을 체념한 텅 빈 표정. 그들의 뒤편으로 우리 회사의 운명이 검은 그림자처럼 어른거렸다.
클린룸에 들어서자, 선배가 묵묵히 자신이 부순 웨이퍼 조각들을 치우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그저 고요하게. 그 모습이 오히려 비현실적이어서 나는 아무 말도 건넬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선배는 해당 고객사로부터 ‘영구 출입 정지’를 당했다. 그것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이 좁은 업계에서, 그의 경력 한 줄에 붉은 낙인이 찍힌 것이다.
나는 가끔 그 거울 같던 웨이퍼를 떠올린다. 우리의 청춘과 땀, 때로는 눈물과 절망을 머금고 빛나던 그 동그란 우주를. 그 위에서 우리는 넘어지고, 깨지고, 성장했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았다. 풋풋했던 설렘은 어느덧 치열한 생존의 무게로 변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 잠들지 않는 거인의 심장 속에서, 보이지 않는 내일의 회로를 그리고 있었다. 그것이 우리의 숙명이자, 서투른 청춘의 기록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