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짱이아빠 Mar 17. 2024

인생을 한 가지로 채우면 생기는 부작용

그 시절 한 달에 28일을 일하고 띄엄띄엄 3일을 쉬었다. 쉬는 날엔 침대에 누워 하루를 보냈다. 5분대기조 기숙사에 있는 동료 모두 이런 삶을 살았다. 우리가 쓰러지지 않고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20대의 젊은 나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젊은 청춘이라도 이렇게 일하면 쉬는 날 가족을 만나거나 친구를 만날 기운조차 남지 않는다. 그래서 쉬는 날은 아무 곳도 가지 않고 침대에 누워 노트북을 복부에 올리고 영화를 봤다. 그리고 잠들었다. 이것을 몇 차례 반복했더니 하루가 지나 곧 다시 출근할 시간이 돌아왔다. 


반복적인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친구가 그리워졌다. 회사 얘기 말고 일반적인 사람들이 하는 대화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피곤함을 무릅쓰고 중학교 동창 친구들과 약속을 만들었다. 약속 당일 하루 종일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공장에 기계가 멈춘다면 전화가 올 텐데 그러면 약속이고 뭐고 차를 돌려 돌아가야 할 텐데. 서울로 향하는 자동차를 운전하며 이런 걱정을 하는 모습이 측은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전화가 오지 않았고, 오랜만에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마음속에 쌓아 둔 회사에 대한 불평을 하나둘씩 풀었다. 


“세상이 원래 이렇게 힘드냐? 난 정말 죽을 지경이다. 이 일 그만해야 할까 봐.” 


진심을 담아 하소연했는데 술에 취한 친구가 말했다. 


“세상에 너보다 더 힘든 사람 많아!” 


맞다. 세상에는 힘든 사람 투성이다. 하지만 곧 죽겠는 상황에 다른 사람이 힘든 게 어쩌라고? 나는 자신을 원양 어선에서 태평양을 항해 중인 선원, 망망대해에 도망갈 곳이 없어서 힘든 선원이라 생각했다. 이 업계에서 최소 2년 경력을 쌓아야 하니 그만두지도 못하겠고, 5분대기조 기숙사에 들어가 전화가 언제 울릴지 모르는 두려움에 떨고 있자니 망망대해에 도망도 못 가고 꼼짝없이 갇혀 일하는 원양어선 선원과 다를 게 없이 느껴졌다.  


일요일 새벽, 혼자 낚시하러 가서 낚싯대를 펼치면 울리는 전화. 부리나케 낚싯대를 접어 공장으로 향한 일. 퇴근 후 저녁 먹고 침대에 누우면 울리는 전화. 기계가 죽었으니 빨리 들어와 살리라는 새벽 1시에 걸려 온 전화를 받고 공장으로 향한 일. 추석에 제사 지내며 첫 번째 절을 했더니 울리는 전화. 제사상에 절을 마치고 공장으로 차를 몰았는데 추석 교통체증으로 공장까지 6시간이나 걸렸던 일.  


전화벨 소리에도 신경이 예민해졌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안부 전화를 했는데 전화 노이로제로 고통받던 나는 어머니에게 다시는 전화하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너무 죄송했다.  


인생은 등수를 매겨 누가 더 힘든지 겨루는 게임이 아니다. 1등부터 10억 등까지 등수를 매겨 힘듦을 가늠하지 않는다. 자신이 힘들면 그냥 힘든 것이다. 그래도 힘든 상황을 버티며 나아가려면 삶의 일부분은 자신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때는 일 외에 삶이 없었다. 만일 하루 24시간 중 한 시간 만이라도 개인 시간이 허용되는 삶이었다면 세상을 망망대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 그때 이후 나는 주기적으로 확인하며 질문을 던진다. 하루 한 시간이라도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가?  

이전 06화 파티클(Particle)때문에 회사 못 다니겠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