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뭐길래

주눅들지 않는 삶

by Norah

몇 년 전, 책을 내기 위해 출판사 사장님과 의견을 나눌 때였다. 그 분은 나와 얘기를 잘 하다가 뜬금없이 대기업에 다닌다는 높은 직책의 친구 분의 의견을 내 메일로 전달해주었고 그 메일은 객관적이지 않은 지적질이 주된 내용이었다. 작가와 출판사는 치우침없이 조율을 잘 해야함이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 내용은 나의 출판 의도와는 동떨어져 있었기에 나는 내 입장에 대해 회신을 줄 수 밖에 없었다. 그 고위직 친구는 고분고분하지 않는 나의 태도가 불만스러웠는지 감정 섞인 비난의 메일을 보냈고 나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무례함을 보고는 출판 계획을 무산시켜버렸다. 그 후 그 사람은 술김에 실수를 했다며 나에게 사과의 메일을 보냈고 나는 사과를 받아주며 일단락되었다.


이와 비슷한 일은 또 있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폰을 보니 전날 밤 늦게 걸려 온 부재중 통화가 있었다. 전화를 한 사람은 소위 잘 나가는 분이었는데 일 년에 한 두 번 연락이 닿을까 말까 할 정도로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 그의 거만한 말투와 행동때문에 친해지고 싶은 생각도 없는 사람이었다. 전화 용건은 알고보니 내가 머무는 도시에 출장와서 다른 사람과 술을 마시다가 나를 불러내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우습게 여기지 않았다면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쉽게 전화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설령 그 전화를 받았다 할지라도 나는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살다보면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이 자기 잘난 맛에 취해서 대단한 것처럼 행동하면서 타인에게 오만불손한 행동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더 가관인 것은 그런 사람을 욕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득이 될까 그 앞에서는 저자세로 숙이고 들어가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여덟 단어라는 책을 보면 권위에 주눅들지 말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랑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은 사람도 누구나 그렇듯 밥먹고 똥싸는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보여지는 조건과 환경을 그 사람 자체로 보는 경향이 많다. 사람은 생각과 행실에 의해 판단되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직업, 출신, 학력이 사람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작용되고 있다. 그런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무수한 착오를 겪으면서도 그 틀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나 역시 그 사람들의 지위와 인맥에 대해 조금이라도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면 그들의 요구대로 응해주고 순종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좀 더 쉬운 길로 가고자 비굴모드로 사는 스타일이 못된다. 그러니 더 많이 얻지도 못하고 착하다는 말도 못 듣는다. 하지만 내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들도 있고 그들과 잘 어울려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 아니면 안 되는데, 여기가 아니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은 사람을 비겁하게 만든다. 하지만 세상에는 사람도 많고 길도 많다. 이 사람, 이 길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다른 길로 가면 그만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권위와 신분에 이리저리 휘둘릴 이유는 전혀 없다.


진정한 권위와 신분은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껍데기를 벗겨냈을 때 진가가 드러나는 법이다. 그 알맹이는 인품과 교양에서 만들어지고, 알맹이없이 "나는 누구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 부끄럽고 우스운 일이다. 자뻑하는 사람과 그 자뻑에 현혹되어 굽신대는 사람들. 둘 다 알맹이없는 빈 껍데기일 뿐이다.


g.JPG 결점의 대부분은 거만한 태도에서 나온다 - 라 로시푸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