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준비되면 스승이 나타난다.
나는 골프 중계방송 보는 것을 좋아한다. 나름 이유가 있다. 안정감을 주고 편안함을 선사하는 자연의 색, 초록색이 시종일관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리를 죽여도 보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고, 드라마와 달리 중간에 보아도 지난 스토리를 굳이 알 필요가 없다. 보다 보면 나름 감동의 드라마를 선사하기도 한다.
지난 주말 있었던 하이트진로 챔피온쉽. 두 선수가 공동선두로 경기를 마치고 써든데스 연장전을 기다리고 있다. 피를 말리는 게임. 내가 소변이 다 마렵다. 얼른 화장실을 다녀와서 다시 화면 속으로 빠져든다.
이변의 연속이었던 연장 1차전을 뒤로하고 맞은 2차 연장전 그린. 상대 선수가 먼저 퍼팅을 했다. 공이 굴러간다. 됐다 됐어 됐어 하는 갤러리 소리가 크게 들린다.
들어갈 것 같다. 그런데 어떤 힘의 작용인 듯, 홀 바로 앞에서 공이 밀리면서 살짝 비켜간다. 밀린 방향 반대편에 내가 응원하는 선수의 마크가 있어서 인 것 같다. 내가 너무 몰입했나.
드디어 내가 응원하는 선수의 차례, 캐디가 손을 번쩍 들어 외친다. 움직이지 말아 주세요. 이어 퍼팅을 준비하던 이 선수, 상대편 선수와 캐디에게 홀에서 조금 물러나라고 손짓을 한다. 홀에 너무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
중계방송을 하는 해설자 고덕호 프로가 말했다."선수도 긴장해서 어디가 어딘지 몰라요". 순간. 나는 알아 버렸다. 넣겠구나. 저 순간에도 상대방 선수의 위치까지 확인하고 비켜달라고 부탁하는 강심장 이라니. '여기는 내 나와바리야, 좀 나가 있어 줄래'라고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공은 홀로 들어갔고, 선수는 우승했다. 궁금했다. 왜 저 선수는 저렇게 우승을 많이 할까? 올해만 벌써 5승째다. 그런데. 그런데. 놀랍게도 그 선수가 부동산 사무실로 와서 집을 보고 싶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거 실화야?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체격으로 보아서 그 선수일 것이라고는 더더욱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참고로, 평소 아내는 이런 말을 자주 하곤 했다. (마동석 버전으로 다가) "말 안 해도 형은 다 알 수가 있다~"
자리를 권하며 어떤 집을 원하는지 묻다가 나를 돌아보고 웃는다. 그리고 손님을 보면서 말한다. "혹시 제가 아는 그 유명한 선수 아니신가요?"
"아... 네." 놀란다. 도대체 어떻게 알아보는 거지 하는 표정이다. "프로님 때문에 옷도 다 그 브랜드 입어요!" 하자 그 선수는 많이 좋아한다.
드디어 때가 왔다. 때가 오고 말았다. 근래에 너무나 궁금했던 것을 해결할 순간이 온 것이다. "저기... 죄송한데.... 인터넷에 나와있는 생일이 진짜 태어난 날이 맞나요?"라고 묻고 싶어 입이 건질 건질한다. 박 프로(아내의 별명)가 물건에 대한 브리핑이 끝날 때를 기다리며 주저한다.
에라이. 모르겠다. 물어버렸다. "네, 맞아요. 근데... 왜요?" "경기를 보면서 왜 저 선수는 저렇게 우승을 자주 하는지 늘 궁금했어요. 제가 명리를 공부한 지 좀 됐는데 인터넷에 나와있는 생일을 보면서 이 생일이 진짜라면 그렇겠구나 생각했거든요."
그러자 부친이 말했다. "연습 많이 해요." 내가 다시 말을 받았다. "프로선수들 다들 연습 열심히 하던데요.ㅎㅎㅎ 아무튼 진짜로 다 (이) 기겠어요" 내가 말이 좀 빨랐다.
이 말을 들은 선수의 부친이 말했다. "애가 달리기도 잘해요!" 어리둥절해하는 나를 보며, 그 선수는 다정한 목소리로 이렇게 얘기했다. "아빠, 달리기 얘기가 아니고, 다 이기겠어요.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은데..." 오! 스윗하다. 저런 딸이 하나 있었으면.
오후에 집 보고 바로 계약해서 다음날 잔금 했다. 초초 스피드. 부동산 중개, 이런 매력적인 점이 좀 있지 ㅎㅎㅎ라고 하는 아내에게 한마디 했다. "돈보다 나는 세상 이치를 알아가는 즐거움이 더 큰데~"
"저것도 정상은 아니야..."라고 한 것 같아, 돌아서는 아내에게 “뭐라고?” 했더니, “당신 잘 생겼다고~” 한다.
속담에 '학생이 준비되면 스승이 나타난다'라고 했던가. 나름 다르게 해석해 보면. '내가 준비되면 도움의 손길이 찾아온다.'
혹시 여러분은 준비가 되셨나요?
<세상은 나의 스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