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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바텐더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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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Oct 19. 2015

bartender 11

무전취주에 관하여. 3

그러나 나는 곧 나의 실수를 깨달았다.

인적이 없는 주차장의 검은 공간. 혈혈단신으로 먹튀를 쫓아내려온 나는 막상 그의 앞에서 대적할 어떤 무력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먹튀가 궁지에 몰린 쥐라면 나는 그 쥐를 향해 용감하게 달려드는 콩 벌레 같은 존재랄까. 그 쥐가 나를 물려고 덤빈다면 나는 꼼짝없이 당하고 말 것이다. 


‘너 딱 잡혔어’ 하며 의기양양하던 마음은 순식간에 터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고, 그가 성난 얼굴로 주먹을 휘두르면 어쩌지 하는 공포감에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점차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자 저 한구석, 먹튀의 머리통이 주차된 차량들 사이로 보였다. 나는 그래도 그가 그렇게 무도한 사람은 아닐 거라는 믿음을 가지기로 했다. 두 번이나 그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던가. 나의 안목이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이 사람은 누군가를 해치는 그런 인종은 아니라고 판단하였고 그 것을 믿기로 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것은, 특히나 자신의 잘못을 마주하게 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떻게 돌변하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수치심은 자신을 자신이 아닌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가급적 조심조심, 안전핀이 빠진 수류탄을 다루듯이 그렇게 접근하였다.     

나는 일단 놀래키지 않기 위해서(무슨 야생동물도 아니고...) 일부러 인기척을 크게 내며 다가갔다.     


“오빠...”     


한 번도 그에게 부르지 않았던 호칭도 썼다.(참고로 나는 손님에게 오빠라는 호칭을 잘 쓰지 않고 그리 부르는 걸 좋아하지도 않는다.)     


“오빠, 우리 이러지 말아요. 나도 힘들게 일하는 사람인데......”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있던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남자의 몸이 들썩했다. 조금 더 다정히 그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나직한 음성으로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오빠, 오빠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난 오빠 믿었는데. 일단 우리 여기 있지 말고 올라가서 얘기 좀 해보자, 응? 그럴 거지? 나랑 같이 갈 거지?”     


남자가 굼실굼실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더 그를 독려하고 다정하게 어깨를 쓰다듬으며 일으켜 세웠다. 뒤늦게 나를 따라 내려 온 동료 바텐더 한 명이 가세하였다.

바텐더 두 명의 부축을 양쪽으로 받으며 그는 도살장에 끌려들어가는 소 마냥 억지로 돌아왔다.     


한시름이 놓였다. 가게 안에 들어서면 일단 나는 무적이다. 

공포가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분노가 돌아오진 않았다. 남자는 자신이 앉았던 자리에 다시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귀를 기울여 보니 이런 말들을 되풀이 하는 것이 들렸다.     


“아, 너무 창피하다. 그냥 죽고 싶다.”     


천하의 뻔뻔한 새끼, 여자들 앞에서 비싼 술에 있는 대로 허세를 떨면서 그 허망한 시간을 누릴 만큼 누려놓고 자신이 치러야할 의무에서는 간단히 도망가는 것을 택하는 인간. 그러나 나는 그가 어쩐지 가여워 보였다. 

모든 긴박한 상황이 종결되고, 사장을 전화로 호출한 뒤, 다시 바의 안쪽에 안자 맥이 탁 풀리면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가게 안의 손님과 바텐더들은 우리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단골손님들은 내게 위로와 안부의 말을 물었고, 조심성 없는 목소리로 먹튀에 대한 욕을 바텐더들과 나누었다. 

좋은 먹잇감이 된 그 먹튀는 열 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그의 인간성을 물어뜯기고 산산이 해체당하는 중이었다.       


내가 그런 그에 대해 연민을 가지는 것이 부적절한 것일까?

부끄러움에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하고 죽고 싶다는 말만 되뇌는 저 남자. 찌질 하고 천박하고 무책임한 저 남자에게 쏟아지는 비난에 왜 나까지 기분이 나빠지는 것일까. 

나도 다른 이들과 함께 나의 사냥의 성공을 자축하고, 일 년 전의 것까지 합산하여 그를 있는 힘껏 매도하고 인생 왜 그렇게 사느냐며 그 남자의 가장 본질적인 가치마저 끄집어내어 화형대에 올리고 불을 붙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짧은 시간동안 너무 많은 감정변화를 겪어서 지친 탓인지, 아니면 그냥 이 모든 상황이 구역질나는 탓인지. 나는 그 남자의 앞에서 손을 모으고 앉아 물끄러미 고개 숙인 그의 정수리를 응시하고만 있었다.      

곧 사장이 나타났고, 그의 주머니에서 단 한 푼의 현금도 취할 수 없음을 알게 된 사장은 그를 경찰에 넘겼다. 모든 것이 신속하게 이루어졌으며 내가 그 과정에 손댈 여지는 없었다. 

이 사소한 해프닝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 후, 사장과 독대를 하며 내가 겪었던 두려움과 일어날 수 있었던 최악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네, 그거 이십만 원 아까워서 바텐더랑 먹튀랑 맞짱 뜨게 해보세요. 막말로 우리가 뚜드려 맞고 크게 다치면 가게에서 모두 보상해 주실 수 있습니까? 언제나 오늘처럼 운이 좋을 수는 없어요, 사장님.’     


결국 먹튀의 발생으로 생기는 손해를 바텐더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규칙은 삭제되었다. 새옹지마 격으로 그 날 그의 행동이 나름대로 좋은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바를 운영하는 분이 있다면, 먹튀의 손해를 제발 바텐더에게 전가시키지 말기를 부탁드린다.

바텐더들이 그들을 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고, 하루 일당을 날려먹을 지도 모르는 안타까움에 앞 뒤 생각도 없이 그들을 쫓아갔다가는 더욱 험한 꼴을 당할 수 있다.

인적이 드문 새벽의 거리를 건장한 남자를 쫓아 달려가는 것은 명백한 자살행위이고, 사장들이 먹튀를 두고 바텐더에게 왜 네가 더 신경 쓰지 못했냐며 질타를 하는 것은 그런 자살행위에 등을 떠미는 것과 다름이 없다. 

부디 바텐더들은 바 안에서만 머무르게 해 주시길.     


각설하고, 그 것이 정말로 그 먹튀와의 마지막인 줄 나는 알았다.

두 번이나 만난 것도 많이 만난 것이다. 하물며 세 번째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후 약 반년 뒤, 나는 가게를 옮기게 된다.

새로 옮긴 가게는 전의 가게에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가게였다. 그러나 행정구가 달랐기에 겹치는 손님은 없었다. 거의 다른 지역의 가게라고 봐도 무방하였다. 

때문에 새 마음 새 뜻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 없어서 새로 사람들을 사귀어야 한다는 것은 번거로웠지만 또 그만큼의 설렘도 있었다.     

점차 그 곳에서의 내 입지가 공고해지고, 안녕하면서 가볍게 손 인사를 할 수 있는 단골들이 늘어나는, 그 정도의 시간이 흐른 그런 시기였다.     


어느 저녁.

가게 문을 열고 기운차게 출근을 한 나는 저 구석자리에 앉은 손님의 어떤 익숙한 뒤통수를 목격하게 된다. 물론 그 뒤통수만으로는 그 남자를 알아 볼 수 없었다.

다만 번개처럼 내 뇌리를 때리는 불쾌한 ‘촉’      


‘뭔가 이상한데?’     


그렇게 세 번째 만남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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