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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바텐더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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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Oct 23. 2015

bartender 12

무전취주에 관하여. 4

손님은 그 하나였다.

바 위 에는 글렌피딕 18년이 올라와 있었고, 멀리서 그 실루엣을 알아본 나는

‘개시부터 대박인데?’ 하며 내심 흐뭇하였다. 

하지만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준비를 하는 내내 뭔가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 때, 그 어두운 주차장 안에서 보았던 뒤통수를 나는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준비를 마친 후 그에게 다가가던 나는 멈추어 인사하는 대신 그대로 그를 지나쳐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를 완벽히 알아본 때문이다.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왔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어 혀를 찼다가 금세 소리를 삼켰다. 세상에 마상에, 저 새끼를 다시 볼 줄이야. 그러나 이것이 혹시 나의 착각일까 염려되어 가만히 주방의 의자에 앉아 밖의 대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불행히도 착각이 아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대화소리에 섞여 들리는 예의 그 허세, 사람 좋은 너털웃음은 절대 헷갈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1년 만에 스카치블루에서 글렌피딕 18년이라니... 장족의 발전이다. 어차피 지불할 생각이 없으니 가격은 상관없이 주문한 것인가? 참으로 훌륭한 전략이 아닐 수 없다. 금액이 이 십 정도 뛴 탓에 그를 모르는 바텐더들은 그를 황금거위 돌보듯 더욱 친절하고 은근하게 대하고 있으니까.


어쩌면 좋을까. 그가 그 당시의 먹튀라 하더라도 지금도 그러하리라는 확신은 없다. 혹시 또 모른다. 어디서 눈 먼 돈이라도 굴러들어왔던가, 혹은 건실한 일자리라도 잡았던가.

상관없다. 그것이 도둑질한 돈이든, 늙은 부모의 주름진 손에서 갈취한 돈이든, 계산만 된다면야. 

그의 인간성이나, 가게 밖에서의 행적이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돈은 돈일 뿐.

그러나 또한 그가 돈을 얌전히 내어 주리라는 확신도 없다. 지금 그의 앞에서 있는 힘껏 들어주며 그가 원하는 반응을 충실히 표현하느라 애쓰는 저 바텐더들은 아주 큰 확률로 그 보답을 받지 못할 것이다.


나는 대비하였다. 메시지로 동료들에게 그에 대한 정보를 나눠주었고, 도주로를 완전히 차단하였다.

이 가게는 꽤 고층 빌딩의 스카이라운지였기에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던가, 아니면 컴컴한 비상계단을 통해 내려가는 길 밖에 없었다. 일단 가게 문 앞의 배너로 비상계단 입구를 막았고 철문의 위쪽을 잠가 버린 후 엘리베이터를 1층으로 내려놓았다. 


독안에 든 쥐라고 생각하고 그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또 천천히 그를 관찰하였다.

이것은 습관인가? 중독인가?

보통 사람들의 경우에는 수중에 그만한 여유가 없으면 어느 자리에서나 위축되기 마련이다. 아니면 아예 깜냥껏 자신에게 맞는 자리만을 찾아간다. 내가 수중에 만원밖에 없는 인간이라면 김밥천국의 문을 열지, 고급 일식집의 미끈한 자동문 앞에 서지는 않을 것이란 말이다.

더 좋은 것을 탐하는 욕구야 공통의 것이겠지만 그 일시적인 기쁨보다 사회적으로 지켜야 하는 체면이나 자존심 처럼 지속적으로 지켜지는 나의 가치는 저울에 올려놓을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내 관찰이 너무 노골적이었던가, 아니면 그가 먹튀임을 알아챈 바텐더들의 눈에 띄게 식어버린 응대 때문인가. 그는 반 정도밖에 비워지지 않는 술병을 두고 일어났다. 전화기를 손에 들고 슬슬 걸어 나갔지만, 말했다시피 출구는 모두 손을 쓴 상태였다. 손님은 그 하나뿐이어서 네 명의 바텐더들은 배너를 쓰러뜨리고 비상계단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의 안쓰러운 뒷덜미를 쉽게 잡아챌 수 있었다.


이번에는 경찰을 부르지 않았다. 귀머거리인 양 우리의 항의에 아무 반응도 없이 고개를 처박고 자는 척하는 그 얄미운 모습에 동료 한명이 그의 전화기를 빼앗아 ‘엄마’라고 뜬 통화목록을 눌렀고, 삼사십 분이 지났을까, 백발의 나이 든 여인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녀는 죄인처럼 쭈그리고 앉아있는 아들을 발견하고, 다시 우리를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를 드리면 될까요?”


빗질도 되지 않은 그녀의 머리 매무새, 자그마하고 새처럼 빈약한 어깨, 남자의 것 같은 몸에 맞지 않은 투박한 감색 점퍼, 그리고 낡아 헤진 운동화가 내 눈에 들어왔고, 도저히 계산서의 금액을 불러 줄 용기가 나지 않았다.

흥분에 휩싸여 잔뜩 독이 오른 동료들도, 그의 어머니가 문을 열고 두리번거리며 걸어올 때부터 이미 그 모습에 모든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우리는 악마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바텐더였고, 돈을 받고 일하는 직원이었고, 가게의 룰은 명확하였다.


사십만 원에 가까운 금액에 그녀의 깡마른 목울대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나는 보았고, 마른 나뭇가지처럼 바싹 마른 거죽만 남은 손가락으로 신용카드를 건네면서 젖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하는 것을 나는 들었다.


“삼...아니 육 개월로 해주세요.”


카드 전표가 뽑혀 나오는 기계적 소음이 그날따라 내 귀청을, 가게의 빈 공간을 메웠다. 우리는 우리의 임무를 완수하였으나 누구도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지 못하였다. 취하고 풀죽은 아들을 데리고 나가는 어머니는 그래도 비틀거리는 그의 발걸음을 부축해 주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첫 번째 만남에서, 그리고 두 번째 만남에서도 느끼지 못한 강렬한 분노에 미칠 것 같았다. 그를 알아본 나의 기억력이, 그의 도주로를 차단한 재기가, 그와 만났던 모든 순간이 모두 분노할 거리였다.

왜 이렇게 화가 나는가. 왜 나에게 이런 죄책감을 심어 주는가. 


술 한 병, 누군가의 인생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 저 잉여로운 한 바가지의 물 값으로 우리는 사 십 만원을 받습니다.


변변한 신발 하나 못 사 신는, 그 여인에게는 그 사 십 만원이 어쩌면 한 달 생활비로 족한 값일지 모른다. 당신 아들이 두어 시간을 의미 없이 축내고, 그의 뇌세포를 죽이며 간이든 위든 썩어 병들게 하는 그 가격이 어쩌면 한 나이 든 여자를 한동안 절망 속에 밀어 넣을 그런 크기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새파랗게 어린 여자들 앞에서 당하는 그 수모는 어쩌란 말이냐. 그녀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그렇다고 우리의 잘못도 아닌데. 

왜 수치와 죄의식을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감당해야 하는가?


연민? 동정? 다 날아가 버렸다. 나는 이를 갈았다. 대가를 받았기에 그를 미워할 모든 이유는 사라졌지만 그 어느 때 보다도 그 먹튀가 미웠고, 그것은 나만의 감정은 아니었다.

동료 바텐더들은 내내 그들이 분명히 알아낼 수 없던 죄책감에 괴로워했고 의기소침하게 그 날의 장사를 마감하였다. 

그 뒤로 한 동안 우리는 그 먹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시간이 지나 죄책감이 조금씩 희석되면서 우리들은 편한 마음으로 그를 욕하고 그의 가련한 노모를 관람객의 시선으로 마음껏 동정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아들을 그렇게 키운 부모 탓도 있지, 어쩌겠어?”


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우리는 잘못이 없어. 돈도 없이 들어 온 그가 잘못이지. 집에서 소주나 처먹을 것이지, 대접은 받고 싶어서 거지새끼 주제에 분수도 모르고......


그렇게 나는 그를 잊고 싶었다. 그 노모의 떨리는 손에서 카드를 낚아채어 자비 없이 금액을 누르고 무표정하게 카드와 전표를 돌려주던 나의 모습까지 함께 잊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나와 그의 만남은 세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에게 무엇을 깨닫게 해주고 싶어서 운명이 나를 또 다시, 아니 그 먹튀를 또 다시 내가 일하는 가게로 이끌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아직 그와 두 번이나 더 만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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