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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바텐더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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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Oct 28. 2015

bartender 13

무전취주에 관하여.  마무리.

정확히 말하자면  그 두번의 '만남'이 실제의 만남은 아니었다.


마지막 그를 본 날로부터 수개월이 지난 후, 어느 한가로운 휴일의 밤이었다. 그 날은 쉬는 날이었기에 한껏 게으름을 피우며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졸다가를 반복하는 사치스런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돌연 가게의 전화번호가 내 폰에 뜨기 전까지 말이다.


쉬는 날 근무처의 전화를 받는 것만큼 빡치는 일은 없다. 굳이 받아줄 의무도 없기에 이것을 무시해 버릴까 하는 갈등도 생겼다. 하지만 벌써 시간은 밤 11시, 이 시간에 나를 가게로 부를 리는 없으니 조금 주저한 끝에 받기로 했다.


- 언니, 큰일 났어요!


통화버튼을 누르자 마자 같이 일하는 바텐더의 격양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 전에 혹시 언니가 말했던 먹튀가 그, 젊고 덧니있고 글렌 마시던 그 놈이에요?


저 말을 듣자마자 나는 모든 사태를 알아챘다. 확인을 해보았다.


- 연예계 얘기 하디? 자기가 뭐 작곡 작사하고 음반업계에서 일했다고.


- 네! 맞아요! 그 사람이요.


- ............놓쳤어?


- 네....


- 뭐 먹었는데?


- 글렌 18년이요.


- 사장한테 얘기 안했으면 일단 사장한테 전화해서 얘기하고...... 아니, 너무 걱정하지마. 신고하고 잡으면 되지. 괜찮아. 니 잘못은 아니야. 작정하고 먹튀하는 새끼를 니가 어떻게 잡아. 일단 내일 가서 얘기하자.


전화를 끊고 눈을 감았다. 참, 대단하다고 할까, 뻔뻔함도 이정도면 존경해줘야 하지 않을까. 이 놈은 애초에 잡히던 말던 상관이 없던 게 아닐까.

도대체 이건 어떤 인종인가.


짧게 놈에 대한 고찰을 끝내고 나는 이 녀석을 잡을 방법을 떠올렸다.

쉽다. 이미 이 전에 그의 어머니가 가게에서 카드로 계산을 한 적이 있다. 아마도 그 정보만 있다면 경찰에서 쉽지 않게 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CCTV도 있고...


실제로 내 생각이 맞아 떨어졌다. 사장은 놈을 고발하였고 그 먹튀의 신상은 아주 간단히 밝혀졌다. 다만 그것이 신용카드의 정보로 추적한 결과가 아니라 이미 그 먹튀 놈이 이 일대의 모든 바로부터 고발을 당한 상태였기에 경찰에서 아주 쉽게 '아하 그 사람이요.' 하며 척, 찾아 줄 수 있었던 것.


그를 고발한 가게는 거의 이십 여개가 넘었다. 갈 수 있는 곳은 모두 간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똑같은 얘기,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 한 것이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2년이 넘은 시간동안. 지긋지긋한 놈이다.


경찰이 알려준 그의 위치는, 수도권의 어느 정신병원이었다. 알콜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고 들었다.

그가 정확히 우리 가게에 온 그 놈인지 확인하기 위해 당사자 대면을 해야 한다는 경찰로부터의 연락에, 당시 그의 서브를 보았던 바텐더와 내가 병원으로 직접 가기로 했다.


정오에 점심을 먹고 사복경찰의 소형차를 얻어타고 간 정신병원. 그런 장소에는 처음 가보는 것이었기에 약간 긴장했고, 또 기대도 하였으나 실망스럽게도 병원은 외관상 아주 평범한 현대적 건물이었다.

핏발이 선 눈으로 울부짖는 사람도, 벽에 머리를 박고 음침하게 중얼거리는 사람도 없었다. 그냥 병원이었다. 아주 한산한 병원.

창구에서 면담 예약을 확인받고 우리는 3층으로 올라갔면담 장소는 대학교 구내식당처럼 실용적이고, 깔끔하며 인간미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테이블 한 쪽 구석에 그 남자가 앉아있었다.

사복경찰은 우리를 멀찍이 세우고 얼굴이 맞는지만 확인하라고 했다.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경찰은 남자에게 다가가 몇 마디 말을 건냈다.

그때 그 남자가 고개를 들어 우리를 보았다. 순간 나는 내가 아는 그 남자가 맞는가 잠시 의심을 하였다.

텅 빈 동공과 수척한 뺨. 이목구비는 그가 맞았으나 마치 같은 몸에서 그의 영혼만 빠져나간 듯 모든 개성과 생기가 사라진 듯 하였다. 내부에서 부터 다 타버리고 껍질만 남은 나무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우리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에게 무어라 짧게 대답도 하였다. 경찰은 그렇게 그 남자와 몇마디를 나누고 우리에게 다시 다가왔다.


"전부 인정한답니다. 이제 다 끝났어요."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짧은 여정에도 나는 몹시 지친 심정이 되어 조각조각 떠도는 감정과 함께 두서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다.


모든 것을 제쳐두고 한 인간으로 보았을 때, 그는 제법 매력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남자였다.

호감이 가는 외형에, 일방통행 같은 자기자랑이지만 제법 말도 잘하였다. 어휘도 풍부하였고, 매너도 갖추었다.

그는 충분히 아름답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의 인생을 모른다. 개인적으로 어떤 끔찍한 불행이 그를 덮쳐 그의 마음을 망가 뜨리고 재기불능의 상태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사지육신이 멀쩡한 젊은 청년이 알콜중독에 빠져 일대의 가게를 돌아다니며 공짜 술이나 먹으려고 하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할 것이다. 한심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나도 그들 중 하나이다. 실제 그에게 피해를 당했기 때문에 나는 더욱 더 그에게 돌을 던질  뚜렷한 명분이 있다. 그 남자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질문하고도 싶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왜?"


주정뱅이의 별의 주정뱅이처럼 그도 잊기 위해서, 술마시는 부끄러운 자신을 잊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지 모른다. 많은 주정뱅이들이 망각을 위해 술을 택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자신을 잊고, 정말 자신이 되고 싶었던 모습으로 단 몇 시간 만이라도 살고 싶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가 원했던 모습, 성공한 작곡가, 누구나 부러워 할만한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그 어떤 인생. 혼자만의 상상에서 그치기에 너무 아쉬운 그것들을 공유하기 위해 그는 바를 찾아다녔을 것이다.


우리는 들어준다. 누군가가 손님으로 자리에 앉는 이상, 그가 말하는 것이 아무리 허무맹랑한 것이라도 참을성 있게 들어주고, 동조해주고, 맞장구를 쳐 주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그는 혼자만의 연극에서, 바텐더들을 배우로 섭외하여 그 공상을 더 더욱 다채롭고 입체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그가 중독이 되었던 것은 술보다도 그러한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물론 술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겠지만.


하지만 비정한 자본주의는 이러한 즐거움에도 가격을 매긴다. 그의 상상의 세계 안에서도 현실은 여전히 그를 주시하고 있었고, 그는 그를 쫓는 현실에서 말 그대로 도피를 택하였다.

모든 행위에는 댓가가 따르고, 그 지불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가혹한 이자가 붙는다.


병원에서 본 그는 좀비처럼 보였다. 그를 가두고 있는 것은 병원의 자물쇠가 아니었다. 그럴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이미 그에게서는 모든 의지, 희노애락, 그를 인간으로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진 듯 보였으니까. 하루하루를 의미없이 숨만 쉬면서 사는 기계처럼, 인생의 가장 좋은 나이, 찬란한 청년기를 무색의 환자복을 입고 유령처럼 부유하며 지내겠지.


그가 이런 결과를 예상하고 상습적인 먹튀 활동을 한 것은 아닐것이다.

무전취주가 그렇게나 가혹한 벌을 받을 만큼 큰 죄냐, 라고 물으면... 나는 그렇다 라고 답할 것이다.

그것은 얼마간의 금전적 손실을 본 업주나, 일을 하는 종업원에게가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 그 만큼 죄가 된다는 말이다.


대게 먹튀든 배째라든, 그들은 모두 현실을 잊고 싶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삶의 가혹함에서 도망치고 싶고, 어쩌면 될 수도 있었을 다른 모습을 꿈꾸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도망을 택한다. 자신의 인생과, 자신이 치루어야 할 계산서에서 무책임하게 등을 돌린다.

모두가 도망치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만일 그것이 내가 감당해야 할 댓가라면 받아들이고 감내한다.


그것은 법이 무서워서도 아니고, 사람들의 손가락질 때문도 아니다. 그것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가치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유기적으로 얽힌 인간 사회에서 서로를 신뢰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확실한 방법이다. 이것은 비단 금전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을 파괴하고 도망을 택한 그 남자는 결국 자신을 잃었고, 인간사회를 잃었다.


그의 인생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앞서 말했지만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런 길을 택해서는 안되었다. 그 자신을 위해서 아무리 힘들더라도 자신의 행위에 착실히 통행료를 지불하고 한 발 한 발 느린 발걸음을 옮겼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그는 비록 그가 꿈꾸는 그런 모습은 되지 못했을 지언정, 다른 건강한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때때로 가게에 와서 가장 싼 맥주 한 두병을 시켜서 '사실은 내가 작곡가가 되고 싶어서...'라고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그런 모습으로 나와 만났을 지도 모른다. 술을 마시는 내내 불안함에 입구를 흘끔거리지도 않고 말이다.

그래, 그는 그런 인생을 살며 나를 지나쳐간 수많은 손님 중 하나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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