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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바텐더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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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Oct 08. 2015

bartender 8

인센티브

언젠가 한 손님 테이블에서 위스키가 두 병째 열렸다.

좋은 매출, 자리에 앉은 바텐더들의 머릿속에서는 자동적으로 두 병의 합산 금액이 올라가고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그 날은 전체적으로 가게에 손님이 많았었고, 영업시간이 반도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다른 날의 평균을 훌쩍 뛰어넘겼던 은혜로운 날이었다.


어차피 사장의 주머니로 들어갈 돈이지만 일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가게의 매상이 좋으면 힘이 나고 분위기가 상승하게 된다. 나 역시 신나게 이 손님 저 손님, 단골들에게 인사하며 간간히 장부의 매출도 확인하고 들떠 있었다.


그 때, 나의 단골(이라고 하기엔 우습지만 그래도 확실히 나를 보고 찾아오는 손님이었기에) 손님이 두 병째 위스키 뚜껑을 땄고, 다른 손님들 때문에 바쁘게 돌아다녔던 나도 그 자리에 안가 볼 수 없게 되었다.


오늘은 왠일로 술을 이리 많이 마시냐고, 마음에도 없는 가벼운 농을 던지면서 두 번째 병을 어느정도 축낼 준비를 하고 있는 내게, 그 자리에서 서브를 보던 어린 바텐더가 불쑥 이런 질문을 던졌다.


"언니, 근데 이 자리 인티는 언니거에요, 제꺼에요?"


나는 그 질문을 한 번에 이해했지만 너무도 부적절한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인지라 맞는 답을 금새 찾지 못하고 되는 대로 답하고 말았다.


"음? 인티는 다 지명 우선이야."


"네? 그럼 너무 불공평한거 아니에요? 그럴거면 내가 여기서 이렇게 애쓸 필요 없었죠. 괜히 힘뺐네."


머릿속이 하얘진 나는 우선 고개를 돌려 손님의 안색을 살폈다. 나의 오랜 단골이자 스스로 점잖은 술꾼임을 자처하는 초로의 신사는 배려심을 발휘하여 마치 자신과 우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있는 것처럼 안들리는 듯 딴청을 피워 주었다.

그러나 당황하여 붉어진 내 얼굴은 숨기기 어려웠으며, 난감한 표정으로 억지 웃음을 짓는 손님을 위해 나는 그 어린 바텐더를 다른 자리로 보내 버렸다.


그녀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지 내내 뾰루퉁하게 굴었고, 그런 그녀를 보고 역정을 내지 않기 위해 나는 엄청난 노력을 해야만 했다.


그 날 최종 매출은 최근 한달 동안의 매출 중 최고를 찍었고 나는 여느 때 같다면 매우 의기양양한 기분으로 장부의 합계란에 숫자를 휘갈길 수 있었을 것이다.


"내 솔직히 기분 좋게 앉아있다 간다고는 못하겠네."


그렇겠지. 누군들 상대가 자신을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있다는데 기분이 좋겠는가.

 

물론, 이곳은 영업장이고 손님과 직원의 관계가 그들이 지불할 재화와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바꿀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바텐더들은 최대한 그 사실을 가려야 한다. 손님과 공감하며 그들에게 호감을 주는 말투와 표정, 친근함으로 무장하여  둘 사이에 끼여있는 '돈'이란 존재를 가능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만드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나는 사죄의 뜻을 밝혔지만 그는 그저 계산을 하고 언제나 주고 받던 인사도 없이 문을 나섰다. 최악이었다.


위의 이 사단은 바로 인센티브란 놈 때문에 생긴 것이다.

가게에서 매출의 증대를 위하여 직원들에게 '보상금' 형태의 동기를 주어 영업을 부추기는 것.

우리는 이것을 줄여서 '인티'라고 말한다.


'지명'이란 것은 다른 말로 '콜' 혹은 '지인'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데, 손님이 특정 바텐더를 지목하여 연락을 하고 가게로 찾아오거나, 바텐더 본인이 손님에게 연락을 취해 가게로 오게끔 만들었을 때 그 손님이 발생시킨 매출의 10%를 바텐더에게 지급하는 것이 '지명인티'이다.


그 외에도 한달 총매출이 목표액만큼 달성되면 기여도에 따라 보상금을 주는 '매출인티', 맥주를 마시던 손님에게 솜씨좋게 양주를 따게 했을 때나, 두 병 이상의 양주를 손님에게 주문하게 만들었을 때 주는 '테이블 인티' 등이 있다.

가게마다 각자 조금씩 다르지만 거의 비슷비슷한 형태의 인센티브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물론 인센티브 제도가 아예 없는 가게도 있다.


그 어린 바텐더의 불만은 이것이었다.

문제의 손님은 나에게 연락을 취하고 오는 분이었고, 그 날은 가게가 너무도 바빠 비록 내 단골이었지만 내가 그 분의 자리에 매여 있을 수는 없는 날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그 단골의 서브를 보게되었는데 그 날따라 둘의 대화가 쿵짝이 잘맞아 이야기는 한이 없이 길어지고 화기애애해졌다. 그 분위기의 파도를 타고 한 병의 양주를 뚝딱 비우고, 둘은 아쉬운 마음에 또 한병을 주문하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두 병의 양주를 팔아치운 것은 분명 그 자리를 지킨 그녀의 공로가 틀림없다.

하지만 그 손님은 내가 없었다면 가게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가게는 그것을 기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인센티브를 지급할 때 무조건적으로 '지명'을 우선하여 해당자를 가린다.


애매한 일이다. 어린 바텐더의 반발은 당연한 일이고, 할 법한 질문이었고, 그녀가 손해보았다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어차피 너희의 업무가 술을 파는 것인데, 한 병 더 판 것은 본분에 충실하였을 뿐 보너스를 강제로 요구할 일은 아니지 않는가. '


결국 업무가 끝나고 사장과 그녀의 면담 때 사장이 그녀에게 반박한 말이다.

그러나 저 말은 인센티브란 것이 없을 때나 먹힐 이야기이다. 이미 어떤 행동에 대한 보상이 인지되었고, 그것이 실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씨도 안먹힐 요구이다.


이것이 바에서 인센티브를 행할 때의 '암'이다.

'명'은 확실하다. 판매액의 10%는 무시 못할 금액이다. 한 손님에게서 20만원의 매상을 뽑았을 때 그가 만약 자신의 인센티브에 해당하는 손님이라면 내게 2만원이 떨어진다. 간혹 두 병 이상을 마시게 되면 4만원 이상의 인센티브를 챙길 수 있다.

이것이 한달이 되어 쌓이면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 된다.


영업에 시큰둥한 바텐더일지라도 한 두번, 요행히 인센티브를 받게 되거나, 나와 같이 일하는 바텐더가 그렇게 챙겨가는 것을 보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욕심이 생기고 안하던 영업에 열을 올리게 된다.

아주 능동적으로 행동하진 않더라도 기회가 생기면 놓치는 일은 없게끔 만드는 것이다.

당연히 가게의 매출에 도움이 된다. 확실한 효과이다.


그러나 그 단점은 이보다는 훨씬 복잡하다.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이익'과 '경쟁'이 끼게 되면 어떻게 될까.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비단 우리 가게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니까.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비일비재하게 겪는 일이니까.

불화가 생기게 된다.


자, 어떤 손님이 있다. 그는 뭐, 다른 모든 개성은 제쳐두고라도 일단 돈이 된다. 조금만 재미있게 해주고 기분을 맞춰주면 양주를 기본 두 병은 마시는 손님이다. 모든 바텐더가 그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맥주를 마시는 그저 그런 손님이 두어명 있다.


어느 바텐더가 어느 손님을 서브해야 하는가?


또, 어떤 손님들이 왔다. 바텐더 두 명이 서브를 보다가 다른 손님이 와서 한명이 자리를 옮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 자리에서 두 병째 양주를 시킨다.


자리를 옮긴 바텐더에게는 어느만큼의 보상이 있어야 하는가? 딱 반을 가르자니 옮기지 않은 바텐더에게 억울한 일이 될 수도 있고 그렇다고 시간을 계산해 나누자면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옮겨야 했던 바텐더에게 억울한 일이 될 수 있다.


지명으로 오는 손님이 다른 바텐더가 마음에 들어 그 후에는 새로이 마음에 든 바텐더와 연락을 취하고 온다.

그 둘 바텐더의 사이는 여전히 돈독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

나는 내 앞의 손님을 두고 10%를 계산하지 않으며 영업에 대한 조바심 없이 편한 마음으로 그에게 만족스런 시간을 제공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많은 문제들 때문에 그동안 나는 인센티브 제도가 없는 바를 선호해왔다. 그러나 근래에는 거의 모든 바들이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보상이 확실하고 눈에 보이는 만큼 바텐더들의 영업이 활발하여 매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동네 어느 한 귀퉁이에 작고 소박하며 푸근한 웃음으로 단골을 맞이하는 여유로운 주인장과 인간미 있는 조금 예쁘장한 바텐더가 당신을 맞이하는 그런 바는 없다.


지금은 모두 돈과 전쟁을 하고 있다. 경쟁가게는 넘쳐나고 한달만 장사를 공쳐도 인건비에 허리가 휘청하는 것이 바의 경영이다. (게다가 바는 장사가 안된다고 높은 인건비의 바텐더를 줄일 수 없다. 바텐더가 없으면 더욱 장사가 안되는 게 이 곳의 생리이기에)


바텐더들끼리 서로를 흰자위로 쳐다보면서 '그건 내 손님이잖아!'라고 머리를 쥐어뜯던, 손님 앞에서 '나는 너에게서 돈을 좀 뜯어야 겠으니 비싼걸 마시란 말이야' 라며 노골적인 티를 내고 그를 불쾌하게 만들던... 가게 입장에서는 매출만 올라가면 그만이다.

이 곳 역시 돈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우리는 작은 눈 앞의 이익에 누군가를 불쾌하게 하고 상대를 판단하고

화를 내며 작은 거짓말로 관계를 쌓아 나간다.


그러나 또 이곳은, 자본의 목줄에 묶여 허우적 거리며 개처럼 끌려다녀도, 그래도 이 곳은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곳이고, 수 많은 의미 있고 의미 없는  대화들이 떠돌아 다니는 곳이다.

그리하여 그 수렁 속에서 어느 순간 작은 연꽃 한 송이를 피우기도 하는 곳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ps : 결국 그 어린 바텐더와 나는 인센티브를 반반 나누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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