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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바텐더 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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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Jan 16. 2017

bartender 24

위스키, 보드카, 브랜디, 데킬라. 그리고 우리는...1

처음 바텐더 일을 시작한 그 즈음에는 손님들의 양주에 대한 지식은 참혹한 수준이었다.

그들은 헤네시와 발렌타인의 차이점을 몰랐고 잭 다니엘을 스카치위스키라 불렀으며 앱솔루트가 보드카인 것을, 호세꾸엘보라는 데킬라는 알았지만 그것들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설명하였다. 위스키와 브랜디의 차이를, 잭 다니엘의 고향을, 보드카는 감자로 데킬라는 선인장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자신들이 꽤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마시는 것들에 대해 더 잘 알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고, 직업적 전문성을 과시하고 싶기도 하였다. 


“모란 씨는 가끔 쓸데없이 아카데믹하다니까.”


얼마 전 손님이 내게 이야기 했다. 그 날도 분위기 파악 못하고 가벼운 농담거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나도 모르게 주절주절 설명을 하던 중이었다. 저 작은 핀잔이 불현 듯 그때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손님들에게 술에 대해 가르쳐 보려고 했던 일, 그들이 즐거워 할 것이라고 착각했던 그 때의 나. 사실 대다수의 손님들은 그 비싼 한 잔의 술이 어떤 종류이건, 어디서 태어났고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 가는 흥미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술을 수단으로 하여 발생시킬 수 있는 다른 것들에 목적이 있었다. 나는 순진하게도 그것을 몰랐고 나의 바보짓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이 올라오는 인터넷 사이트에 한 여성이 모던 바에 취업을 고민하는 글을 올렸다. 그녀는 그 일이 과연 사회적으로 멀쩡한 시선을 받으며 다닐 수 있는지 궁금해 하였다.

답글 들을 추려 읽으니 대체적인 여론은 이러했다.


“터치 없고 대화만 한다고 술을 파는 여자가 술집여자가 아닌 것은 아니지요.”


반론의 글도 몇 몇 눈에 띄었으나, 나 역시 저 노골적인 반응에 상처를 받지 않은 것은 아니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 합리화를 꾀하여도 나는 부정할 수 없었다. 내가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것을, 나 자신의 여성성을 팔아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묶어 놓은 ‘술집 여자’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가 없음을.


밤의 출근과 새벽의 퇴근이 이어지는 나날동안 많은 동료들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젊어서 아름답고 처량하고 개성적이며 강하고 부드러운, 봄날의 꽃처럼 덧없이 화려한 나의 동료들. 

언제나 그녀들은 내게 와서 그네들의 인생을 이야기해 주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마치 고해성사 하듯이 술김에 털어놓는 이야기들은 하나 같이 ‘특별’하였다. 쐐기풀로 옷을 자아내었던 다난했던 그 공주처럼 그녀들도 자신들의 인생을 각자의 고난으로 한 올 한 올 엮어내어 화려한 화장 속에 몰래몰래 입고 다녔던 것이다. 맨살을 찔러대는 가시의 고통에 언젠가는 둔감해 질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부모들의 이혼은 흔한 것이었다. 많은 바텐더들이 편부모 가정이었고, 대부분 홀로 살았으며 가족과의 연락을 일체 끊고 사는 친구들도 적지 않았다. 

편견을 조장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그냥 단순하게 풀어서 물어보겠다.


자신의 딸이 밤과 새벽의 시간에 남자들과 마주앉아 술을 마시며 때로는 언어의 희롱을 감수해야만 하는 직업을 선택하였을 때 어떠한 ‘평범한’ 부모들이 흔쾌히 반겨할까. 혹은 승낙할 수 있을까.


나의 소중하고 유쾌하며 ‘평범한’ 친구들은 내가 바텐더라는 사실을 밝히면 마치 쇼윈도에 진열된 희귀하고 쓰임새를 유추할 수 없는 장식품을 본 것처럼 호들갑 떨며 물어본다.


“와, 멋있다. 그럼 칵테일 같은 것도 잘 만들겠네.”


그들은 바텐더로서의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편견의 만화경으로 뽑아낸 이미지로서 나를 이해할 것이다. 

한번은 시도해 본 적도 있다. 

친구에게 생일선물을 건네주고 기뻐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술과 웃음 팔아서 산거야, 잘 써라.”


그저 자조적인 유머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한바탕 웃었다가 이내 슬픈 표정으로 내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녀의 표정을 보며 저 생각 없는 농담을 매우 후회하였다. 나는 나를 비하하였고 나와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도 함께 묶어서 처연함의 대상이 되게 하였다. 찰나였지만 친구는 나를 동정하였다. 


나는 동정 받을 존재인가, 바텐더라는 것은 비난과 동정과, 적극적인 손가락질과 그래도 어떠한 마지노선 앞에서 그 한 발자국을 못 나갔을 뿐인 어정쩡한 술집여자로 묶여야 하는가. 우리가 어떠한 일을 하던, 이 일에서 무엇을 얻어가던, 내가 나눈 무수한 대화들이, 인정이, 만남이, 사실 밖의 사람들에게는 안중에도 없는 일이고 가볍게 판단하기 좋은 겉모습만이 남아서 통째로 묶여 불릴 수밖에 없는 것일까.


특별히 독한 알코올의 도수 덕분에, 그 안에 깔려있는 향과 개성을 쉽사리 찾아낼 수 없고, 그저 취하기 위한, 혹은 돈 자랑과 대접의 상징으로 ‘양주’라는 이름 하나에 묶여있는 저 다양한 종류의 모든 술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닐까.


나는 궁금했다. 바텐더, 나의 아름다운 동료들은, 그 인생들은 어디서 시작되어 어떻게 이곳까지 흘러들어오게 되었을까. 그들은 이 일을 진심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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