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보드카, 브랜디, 데킬라, 그리고 우리는... 2
A는 같이 일했던 많은 동료들 중에서도 기억에 날만큼 뛰어난 외모를 지녔던 바텐더였다. 그녀의 생김새를 굳이 분류하자면 매우 세련되고 흔히 요즘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도회적이며 화려한 분위기로 손님들에게도 인기가 매우 좋았다.
그러나 동료들은 그렇지 못하였다. 딱히 A가 모난 성격을 가진 것도 아니었고 요령을 피우는 친구도 아니었는데, 그녀는 언제나 함께 일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겉돌았고 은근한 텃세와 불친절에 힘들어했다.
혹시 여기까지 읽고 단순한 여성들 간의 질투나 알력 다툼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시기 질투가 성별을 떠나 어떠한 단체에서도 흔하게 일어나는 트러블의 주된 원인이기는 하지만, 의외로 바텐더들의 세계에서는, 적어도 내가 일했던 가게에서 만큼은 그것이 표면에 떠오르는 문제가 되었던 적은 없었다. 우리는 동료였고 아군이었기 때문에 A와 같은 좋은 인재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아끼고 반겨야 했다.
단지 아름답기 때문에 그 자리에 앉아만 있어도 남성 손님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흔쾌히 그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바텐더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 동료로써 얼마나 도움이 되는 존재인가. 설혹 그런 이들 중에는 본인들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구실삼아 업무에 불성실한 친구들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들 같은 재능을 타고 나지 못한 바텐더, 나와 같은 이들은 그것에 큰 불만도 가지지 않았다. 그들은 내게 불가능한 일들을 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다른 친구들은 나처럼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A가 동료들과 겪었던 불화는 질투가 그 원인이 아니었음을 확신한다.
그렇다면 왜 A는 배척당하고, 끝내는 섞이지 못하고 두 달도 채 못 채우고 가게를 그만둬야 했던 걸까.
아름다운 A는 도도해 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자신에 대한 말들을 늘어놓기를 좋아했다. 손님이 없는 한가한 시간, 가게의 새로운 동료를 맞이한 친구들은 그녀에게 호기심을 가져 모였고 A는 신이 나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아니요, 처음은 아닌데 바는 그냥 성형수술비 만들려고 나오는 거예요. 엄마아빠가 용돈은 많이 주는데 성형은 반대하셔가지구요.”
해맑게 웃으며 그 뒤로도 A는 손님에게나 바텐더들에게나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았다.
서울의 부유한 지역에서 부모님과 함께 산다는 A. 왜 이리 동떨어진 곳에서 일을 시작했느냐고 하니 아는 얼굴을 마주치는 게 두려웠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새벽에 일을 끝내고 돌아가자면 택시비만 족히 2만원이 넘는 이곳을? 의문점을 무시하면서 그녀는 늘 자신이 사는 지역을 어필하며 결코 자신이 어떤 금전적인 문제로, 또는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하지 않음을 강조하였다.
브랜드의 로고가 큼직하게 박힌 가방을 들고 출근하는 그녀는 언제나 환한 웃음으로 티끌만큼의 어둠도 없다는 듯,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즐겁고 화려한 것인지 알리지 못하고는 못 배기겠다는 듯 행동하였고... 마치 인스타그램을 실체화해 놓은 것 같은 그런 모습으로 바를 돌아다니며 무언가 석연찮은 행복감을 뿌리고 있었다.
“아니 부모님이 교수고 엄격하다는 집에서 딸이 새벽 퇴근을 하고 문신을 덕지덕지 하고 다니는 걸 가만히 둬?”
A가 출근하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다른 바텐더들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출근이 느린 A가 나타나기까지 모여서 담소하던 바텐더들은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약속이나 한 듯이 입을 다물었고 A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갑자기 바쁜 체를 시작하였다.
집이 먼 그녀를 배려하는 듯 먼저 돌려보내고 A가 빠진 뒤풀이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때까지는 그저 은근한 따돌림이었을 뿐이었다. 다만 그녀가 불편했을 뿐이라고, 아무리 같이 일하는 사이라도 모두와 친하고 잘 맞을 수는 없지 않느냐며 변호할 수 있는 단계였다.
하지만 언제나 멈추는 법이 없는 감정의 치달음은 속도를 더하여 A와 다른 바텐더들과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었다.
A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분위기를 감지하였고, 동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눈치 챈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왜, 그녀들이 그렇게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진 못한 듯하였다.
A는 관계회복을 위한 노력이 아니라 이해 불가능한 악수를 두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