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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바텐더 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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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Jul 05. 2017

bartender 27

위스키, 보드카, 브랜디, 데킬라, 그리고 우리는... 4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가게는 십 수 년 간 주인이 세 번 바뀌었다.

처음 가게를 연 사장을 제외하고는 둘 모두 이곳에서 직원으로 일하다 물려받게 된 경우이며, 오래된 단골들은 그런 사정들을 모두 알고 있었기에 마치 당연한 전통처럼 차기 주인장이 현재 일하고 있는 나, 그리고 다른 동료들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추측에 아주 흥미가 동하는 듯하였다.


“모란, 네가 이어받으면 되겠네.”


몇 번이고 되풀이 해 듣는 저런 농담에 나는 웃으면서 대꾸해준다.


“저는 그럴 깜냥이 못돼요. 바 사장은 아무나 하는 줄 아세요.”


담담히 대답하였지만 속으로는 사실 비명을 지를 만큼 싫은 것이었다. 직원으로 일 하면서도 받는 이 스트레스, 그 몇 배의 부담을 더 얹고서 사장이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바텐더로서 시작하여 자신의 가게를 연 모든 사장들을 존경한다. 그들이 좋은 사장이건 나쁜 사장이건 상관없이 존경한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필시 보살이 들어있거나 아니면 그 반대의 것이 들어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런 병신 같은 씨발 새끼가 진짜....”


어느 날 나는 가게의 주방에서 나도 모르게 격한 욕을 입 밖으로 내 뱉었고, 뒤 따라 들어온 어린 바텐더가 깜짝 놀라 나를 보며 말하였다.


“언니, 왜 그래. 무섭잖아.”


그녀의 말에 나는 나 자신의 언동을 상기하고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오히려 뻔뻔하게 대답했다.


“뭘, 욕 좀 한걸 가지고, 자기들은 매일 하면서.”


“언니가 하니까 뭔가 이상해. 언니 입에서 욕하는 건 처음 듣는 것 같아. 안 어울려. 이상해. 이제 하지 마.”


그제야 나는 내가 욕을 제대로 할 줄 몰랐던 사람이었던 걸 깨달았다. 어린 철부지 시절을 제외하고는, 나는 욕을 하는 것도 듣는 것도 몹시 싫어했다. 유년의 이런 저런 경험들로 인하여 모든 폭력적인 언동을 극도로 혐오했고 그것에 물들지 않고자 늘 자신을 점검하였으나 바텐더인 나는 내 스스로 무엇을 하고 있다고 깨닫기도 전에 아주 자연스럽게 거친 욕을 뱉어내고 말았다. 

그러나 욕 따위는 문제도 되지 않을 정도로 내 머릿속은 방금 그러한 행동을 유발한 원인이 된 어떤 손님에 대한 무시무시한 증오심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 증오가 지나쳐 터져버리기 전에 마치 댐의 한 부분을 개방하여 물을 빼듯이 나도 모르게 욕을 쏟아낸 것은 아닐까.


그들이 그냥 시시한 인간이고 다만 외로울 뿐이며 불행하기 때문에 우리 바텐더들에게 그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창을 들고 있는 병사가 사실 순박한 농부였고 강아지 한 마리 죽이지 못하는 마음 따뜻한 소년에서 자라나 전쟁터의 잔인한 논리에 등 떠밀려 그 창을 내질렀을 뿐이라고 해도, 창에 찔린 나는 피 흘리며 쓰러져 죽어간다.


손님들은 그들의 투정, 넋두리, 마음의 상처, 그로 인한 잔인한 말들과 행동들, 우리들을 한낱 노리개, 생식기로 취급하는 그 모든 행동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고 그 스트레스를 덜고 위안을 얻기도 하고 간혹 상처를 치유하기도 하지만 바텐더들은 그로 인해 받은 상처를 스스로 치유해야 한다. 

그에 더해 우리는 우리가 비도덕적이고 손님들에게 속임수를 쓰고 그들을 다만 돈, 매상, 호구로 바라보며 거짓 사탕발림과 헛된 희망을 팔아 돈을 버는 죄의식도 떠안아야 한다.


“니들이 몸을 파는 것들 보다 왜 나쁜 줄 알아? 니들은 침 흘리는 개 앞에서 주지도 않을 고깃덩이를 흔들고 그 개의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 같은 거야. 바텐더라고 잘난 척 하면서 고상 떨고 앉아들 있지만 니들이 룸싸롱 애들보다 더 질이 나쁜 것들이야. 정신적인 창녀나 다름없다고.”


저러한 이야기를 눈앞에서 들으며 우리는 그저 웃고만 있었다. 감정을 죽이고 흥분하지 말고, 저보다 더한 이야기도 실컷 들었는걸 뭐, 괜찮아. 어차피 눈앞의 사람도 저 술을 다 마시면 사라질 거야. 내 인생에서 상관없는 사람인 걸. 그냥 흘려버려. 싸움이라도 냈다가 돈도 안내고 가면 어쩌려고 그래. 괜찮아. 괜찮아.


웃고 있는 가면 속으로 거짓된 대화와 관계가 켜켜이 쌓여간다. 

순한 어린아이가 들어와 몇 개월 안에 교활해졌다. 남성을 혐오하게 되거나 우습게 보는 것이 예사였다.

주방에서 큰 울음소리가 나서 뛰어 들어가 보니 바텐더 한 명이 주저앉아 꺼이꺼이 울고 있는 것이다. 이유를 물으니 그냥 기분이 좋아서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녀의 경우는 극단적인 것이었지만 많은 바텐더들이 조울증의 초기 같은 모습을 많이 보이기도 했다. 감정이 시소를 타며 오르락내리락하였다. 일하기 위하여 먹는 술을 이제는 취하기 위해 먹었다.


“난 좀 취해야지 일하기가 편해. 언니는 안 그래?”


그렇게 힘껏 술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조언에 나이 어린 바텐더가 대답한 말이다. 오픈하고 한 시간도 되지 않아 그녀는 얼근하게 취하여 명랑하게 손님들과 대화하고 가게에 웃음소리를 채우고 활기차게 돌아다니다가 마감이 되면 술이 머리끝까지 올라 잘 돌아가지 않는 혀를 굴려 회식을 하자고 졸라대곤 하였다. 그리고 회식 자리에서 그녀는 늘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자신의 인생은 실패했다고. 모든 게 끝장이 났다고. 언제나 언제나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 하며 울었다. 

그녀는 겨우 스물 네 살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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