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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ish Aug 17. 2023

박사 한 것을 후회하세요?

지난 해 경제학 박사를 취득한 지 딱 1년이 되어간다. 1년 사이 난 본업을 유지하면서 적지 않은 연구를 수행했다. 논문을 투고해야 하는 저널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논문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투고한 논문의 리뷰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도 길어졌다. 박사과정을 통해 경제 분석 역량을 키우고, 다양한 문헌을 이해하는 시각을 길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경제학자가 되는 것은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이미 많은 통계가 증명하고 있지만, 10년, 혹은 20년 전에 비하여 박사의 인기는 예전 같지 않다.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고 해서 여느 전문직군처럼 고소득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개업할 수 있는 자격증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미국 박사라고 출세길이 된 것이 아닌데, 나와 같은 국내 박사라면 더더욱 상황이 안 좋을 수 있다. 근래 들어 국내이든 해외이든 한국 학생들의 경제학 박사 진학률이 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가장 큰 주범(?)은 로스쿨이 아닐까 싶다. 


문과 학생들에게 LEET 시험은 이미 학부 '졸업시험'으로 변질되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문과 최고의 전문직이고 다른 직군에 비해 소득도 높고 정년이 따로 없으니 충분히 도전할 만 하다. 경제학 박사는 유수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하더라도 국내 리턴 시 '결국' 취업해야 하는 건 매한가지이고 모두가 교수직을 하는 건 아닐테니 비용 대비 투자가 다소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경제 전문가가 되는 건 꽤나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여느 전공에 비해서 사고방식에 기술적인 측면을 가미하는 능력이 배가 된다는 것이다. 대개 경제학 석박사과정들은 연구를 진행을 하며 수많은 replication을 훈련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나의 독립적인 연구 아이디어를 키우고 이를 그대로 분석해내는 역량을 키우게 된다. 다시 말해, 사회에 진출하여 똑같은 현상을 관찰하더라도 경제학 박사는 큰 그림 안에서 요소 간의 인과관계를 추측한 뒤 이 관계(혹은 경로)를 기반으로 논리적인 생각을 짜는 훈련이 잘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학위 과정을 하다보면 데이터 분석 능력이나, 수학 능력을 키우는 것도 좋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내가 나만의 논리 설계를 통해 현상을 진단하는 훈련을 할 수 있으며 이것이 실전에서도 응용 가능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박사 학위가 고소득이나 사회적 지위를 보장하진 않더라도, 내가 독자적으로 상황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자신에게 남는 것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비해 경제학에 관심을 갖는 주위 후배가 줄어드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지만, 난 경제학이 배울 것과 응용할 것이 많은 학문이며, 졸업 이후에도 논문을 꾸준히 읽는 등 자기 훈련을 통해 끊임없이 발전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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