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와 병행 끝에, 난 지난 8월 경제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몇몇 사람들과 얘길 해보면, 박사 이후에는 연구 활동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듯하다. 그런데, 실상은 전혀 다르다.
우선, 박사학위 졸업자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명함에 박사 학위를 박기 위해서라면, 말 그대로 졸업 이후의 연구 활동은 크게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경제학 연구는 말 그대로 인내의 과정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고, 이 아이디어에 기반하여 모형을 짜고, 그 모형으로 분석을 해야 하고, 게다가 논문도 잘 써야 한다. 논문 작성을 마쳐 저널에 투고하더라도 R&R을 받을지, 리젝트를 받을지 알 수 없다. 설령 저널에 게재하더라도 그 저널은 또 어느 정도 수준의 저널인가를 따져봐야 한다.
내 경우는 어떤가?
난 박사 졸업이 프로페셔널한 연구자가 되기 위한 최소 요건이라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학위 취득이 최종 목표가 아니라, 국내외 연구자들과 경쟁하기 위한 하나의 자격을 갖췄다는 정도의 의미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박사 학위 취득 과정은 당연히 거쳐야 하는 수순으로 봐야 하는 것이다.
한해에만 전공을 가리지 않고 수만 명의 박사가 배출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박사 중에선 흔히들 말하는 '물박사'가 섞여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설령 유명한 대학과 랩에서 연구했다 할지라도 그 졸업 후의 연구 퍼포먼스는 전혀 보장할 수 없다.
난 직장과 병행한 박사과정에 4년 반의 시간을 썼다. 코스워크와 퀄 시험을 제외하면 1년반을 순수 연구에 할애한 것인데, 그 시간 동안 약 8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그중엔 SSCI도 있고, KCI도 있지만, 저널 수준이라는 것이 워낙 상대적이기 때문에 내가 훌륭한 아웃풋을 냈냐의 여부에 대해선 결코 자신할 수 없다.
같은 SSCI급이더라도 논문 투고 과정과 publication period, R&R을 받는 과정이 천차만별이다. 이를테면 일반적으로 많이 보이는 SSCI급 저널과, 전세계 톱 수준의 경제학 SSCI 저널인 American Economic Review의 게재 난이도는 하늘과 땅일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프로페셔널한 연구자로 거듭나는 것은 후자의 수준에 가까운 논문을 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이게 경제학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여느 학문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난이도 높은 공식을 대거 동원하며, 전세계가 주목할 만한 아이디어까지 쥐어 짜내며, 이런 모든 과정을 거치며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이니깐 말이다. 좋게 말하면.
과거 다른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난 국내 박사가 미국 박사보다 간판이 떨어진다는 측면에서 언제나 열위에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설령 누군가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좋은 아웃풋을 내기 위한 지속적인 연구 능력과 인내심이 결국엔 연구자의 기본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박사는 끝이 아닌 시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