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거 먹자.” 선배는 많은 말 대신 자주 그 한마디만 했다. 대학에 온 뒤 처음 맞은 생일, 향수병에 빠져 수업도 못 나가던 내게 손수 미역국을 끓여 찾아와 준 사람. 두 번째 해 생일에는 동아리 방에서 팬케이크를 부쳐 사람들을 불러 외롭지 않게 해 준 사람.
상처 입은 사람들은 식재료를 들고 자주 그녀의 부엌에 둘러앉았다. 음식을 함께 만들고 나누며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다. 결국 헤어졌어, 11년 키웠던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어, 최종 면접 때 울어버렸어…. 각자 눈물은 털어놓고 부른 마음으로 돌아갔다. 그 시간을 지나온 내가 타인에게 가끔이라도 다정한 면을 보일 수 있는 건, 그녀의 밥을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 걸쭉하고 따뜻한 음식은 그것만으로 둘도 없는 위로다. 삶에서 중요한 것을, 혹은 사람을 잃어 차가운 슬픔에 담가져 있을 때는 따뜻한 음식과 은신처가 필요하다. 핀란드에 있는 사치에의 식당은 그런 곳이다. 주인공 사치에는 두 번의 이별을 겪는다. 고양이 나나오, 그리고 이상하게 덜 슬펐던 엄마와의 이별. 이후, 그녀는 핀란드로 날아가 일식당을 연다.
작은 식당에서 그녀는 무언가 잃은 사람들을 아무런 질문 없이 받아들인다. 그 속단 않는 눈빛을 받은 방문자들은 이내 함께 식당을 꾸려나가는 동료가 된다. 첫 번째 방문자는 미도리. 지구본을 돌려 아무 데나 점찍은 곳이 핀란드여서 오고 말았단다. 떠나오기 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사치에가 차려준 밥을 한입 먹고 그만 울컥해 버렸다는 데서 그녀가 무엇을 잃고 도망쳐왔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다음으로 식당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마사코다. 오랫동안 간병하던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TV에서 핀란드 사람들의 에어 기타 (마임처럼 기타를 치는 모습을 흉내 내는 것) 대회를 보고 그만 마음이 빼앗겼다고.
마지막 방문자는 리이사. 이들의 화목한 식당 생활을 가만히 노려보기만 하더니 어느 날 대뜸 식당에 들어와 술을 마시곤 쓰러진다. 마사코가 그녀를 간호하는데, 그 귀찮아하지 않으며 너무 극진하지도 않은 섬세한 태도에 리이사는 감동하며 속을 털어놓는다. 남편이 문득 자신을 떠나버렸다고.
각자 다른 무언가를 잃었지만, 다시금 잘 채워 넣고 싶다는 마음으로 카모메 식당을 찾은 여인들이 둘러앉는다. 이들은 커피를 내리고, 메뉴판을 꾸미고, 서빙하는 등 자신의 몫을 하며 서로에게 용기가 된다.
그 용기의 중심에는 식당 주인 사치에가 있다. 아무도 없는 핀란드에 홀로 식당을 차린 사람. 매일 밤 합기도를 하고, 매일 아침 수영을 하며 몸과 마음을 단련해 온 그녀다. 계속 손님이 들지 않는 식당을 보고 미도리가 걱정하자, 그녀는 담담히 말한다. “매일 열심히 하다 보면 손님이 조금씩 늘 거예요. 그래도 안 되면 그땐 문 닫아야죠.” 사치에에겐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는 것이다. 매일 자신을 단련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겸손하지만 단단한 확신. 그런 사치에의 눈빛을 보며 카모메 식당의 여자들은 모두 씩씩할 수 있다.
카모메의 여자들은 씩씩하다. 칼단발을 하고서 단호히 자전거 페달을 밟는 미도리의 씩씩함, 처음 본 취객(리이사)이 청한 술잔을 선선히 받아들여 대작하는 마사코의 씩씩함. 식당을 함께 꾸려나가는 사치에, 미도리, 마사코 셋은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는 카모메 식당의 손님들에게 씩씩한 인사를 건넨다.
정성 어리고 산뜻한 사치에의 “어서 오세요~” 터프한 미도리의 “어서 옵쇼!” 정중한 마사코의 “어서 오십시오.” 그런 인사를 받고 따뜻한 음식을 먹는다면, 다음 날 어떤 싸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든 팔을 걷어붙일 준비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