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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Aug 14. 2023

<내일을 위한 시간> : 해치지 않고 자신을 지키다

영화 속 그녀에게 배운 결핍을 껴안는 법

  출근 열차에서 갑자기 숨이 가빴다. 중간에 내려 심호흡을 하고 다시 회사로 향했다. 지하철은 널찍했다. 여유 없는 것은 내 마음이었다. 그 무렵에는 동료를 미워하며 생긴 끈적한 앙금이 목 뒤에 들러붙어 있었고, 좋아서 시작한 일에 더는 설레지 않았다. 불안 장애와 기분 부전증이 슬며시 찾아왔다. 하지 않던 실수를 하고 일정을 자주 까먹었다.


  팀장이 이유를 물었다. 나약한 사람으로 업계에 소문이 날까 무서웠지만 내가 살아야겠기에 마음이 아프다 고백했다. 그는 그만두라는 말 대신, 새로 온 팀원에게 업무를 나눠주고 매주 한 번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가게 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곧 그 시간을 반납했다. 아픈 것은 죄가 아니라지만 1인분을 다 하지 못하는 죄책감은 씻어내기 어려웠다.


  그때 <내일을 위한 시간>(다르덴 형제, 2014)에서 ‘산드라’를 만났다. 쉽게 금이 가는 마음을 가져도 괜찮다고, 약한 사람만이 헤아릴 수 있는 타인의 마음이 있다고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약하지만 단단한 그녀는, 내가 되고 싶던 사람이었다.     


                                                   

[우울증 앓았던 직원은 필요 없나요]

  <내일을 위한 시간>의 산드라는 우울증을 앓는 동안 휴직을 했고 그새 건강을 회복했다. 그러나 복직을 앞둔 주말, 그녀는 돌연 해고통보를 받는다. 사장이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사내에서 산드라의 복직이냐, 나머지 직원에게 보너스 지급이냐를 두고 투표를 열어 그녀의 해고를 회유했고, 다수가 보너스를 택한 것이다. 산드라는 사실을 알고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지만, 곧 마음을 추스르고 사장을 찾아가 재투표의 기회를 얻어낸다. 투표는 다음 주 월요일 아침. 그녀는 주말 동안 복직 대신 보너스를 택한 동료들에게 찾아가 설득해 보기로 결심한다. 영화의 영제는 ‘Two Days One Night’로, 바로 산드라가 동료들을 설득하러 다니는 1박 2일을 담았다.      


  동료 티무르는 수척한 산드라의 얼굴을 보자마자 미안함에 울먹인다. 그는 사장의 회유에 넘어간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고 고백하며 재투표를 약속한다. 그러나 가장 친했던 다른 동료는 문도 열어주지 않는다. 들여다보니 모두에게 이유가 있었다. 이혼 후 새 출발 자금이 필요해, 가족이 실직했어, 주말에 마트에서 일을 할 만큼 형편이 어려워. 그들은 “난 당신 존재를 반대한 게 아니라 보너스가 필요할 뿐, 선택을 강요한 사장이 나빴다”라고 외친다.


  거센 해고의 물결 속에 당장 내가 나뭇가지라도 붙잡고 살아야 하는데, 타인을 구할 손이 남아있을까. 이미 보너스에 마음을 준 동료들과 그 가족을 설득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산드라에게 넘어가서 안 된다’며 동료의 가족들끼리 물어뜯는 모습에 그녀는 자신이 폭력의 씨앗을 뿌렸다며 슬퍼한다. 무더운 여름, 몸도 마음도 점점 허물어져 간다. “사람들이 말하길 복직해도 (아팠던) 네가 예전만 못할 거라고 하던데...” 어느 동료의 말끝에 그녀는 설득을 포기하고, 진정제를 치사량 삼키고야 만다.      


[다른 사람의 자리를 빼앗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보너스를 두고 남편과 다퉜던 동료 ‘안느’가 마음을 바꿔 찾아온 것. 안느는 산드라의 일을 계기로 가치관이 다른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했다며 복직에 투표하겠다고 말한다. 산드라는 다시 힘을 얻고, 병원에서 위 세척을 한 뒤 깨어난다. 한 명의 지지 덕에 불붙은 희망으로 그녀는 남은 하룻밤 동안 남은 동료들을 모두 만나 설득해 본다. 마침내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재투표 결과는 8대 8. 자신을 응원하는 여덟 사람을 얻었지만, 결국 졌다. 동료들과 인사하고 떠나려는 찰나, 사장은 산드라에게 제안한다. 직원 간 감정 해소를 위해 보너스도 주고, 계약 사원과 재계약을 하지 않는 대신, 그녀를 다시 고용하겠다는 것. 산드라는 의외의 답을 내놓는다 “아뇨. 다른 사람의 자리를 빼앗고 싶지 않아요.”      


  두 번의 낮과 한 번의 밤을 지나는 동안 그녀는 다시 태어난 듯하다. ‘믿는 사람’으로. 세상이 다 내게 등 돌린 것 같아도 살아만 있다면, 내가 스스로에게 떳떳하다면, 그 마음을 지지해 주는 사람이 나타난다는 것을 믿는 사람으로. 없다고 단념하면 정말 없지만, 있다고 믿으며 손 내밀면 그 손 잡아줄 동료가 세상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산드라가 타고나길 강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 생을 버리려 했던 사람이고, 나 때문에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을 볼 바에 죽을 결심을 했던 착해빠진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없어 봤기에, 내가 약하기에, 내가 아파 봤기에 안다. 돈에 굴복하고, 인지상정보다는 내 일자리 하나. 보너스 한 푼이 갈급한, 불안한 타인의 마음자리에 대해 알고 있다. 그래서 동료들을 원망하지 않으며, 받은 상처를 모진 말로 되돌려주지 않았다. 그 약하디 약한 마음들을 뚫고 솟아오른 ‘안느’ 한 명의 지지가 얼마나 드물고 소중한 마음인지를 잘 안다. 그렇기에 안느와 같은 사람의 자리를, 나 살자고 다시 빼앗을 수는 없다는 것도. 그 마음이 그녀가 ‘나약하고도 강인하게’ 살아가는 방식일 것이다.      


[“우리 잘 싸웠지? 나 행복해”]

  사장실을 나오는 산드라의 얼굴은 영화 속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완전히 개운하다. 그간 회사와, 동료들과 싸우며 상처 입은 산드라가 그럼에도 그 흉터를 안고 내일을 잘 살아나가리라 믿게 되는 표정이다. 그녀는 환하다. 그녀는 강하다. 사람으로 살아내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데도. 하루하루 아침잠과의 전쟁을 치르고, 우울증 약을 먹고 졸린 잠을 쫓으며 집안일을 하고, 일터에서 잘리지 않으려 애쓰는 하루를 보내면서도. 산드라는 이 비정한 세상에서 나 하나 잘살면 그만이라 말하지 않는다. 다시 찾아온 기회에 기대어 약했던 과거를 잊지 않았다. <내일을 위한 시간>은 그렇게 우리의 지금을, 약함을 응원한다. 씩씩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한 번 무너졌다 다시 시작해도 괜찮다고. 아팠던 만큼 아픈 사람을 이해하는 강인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이다.



[글] 도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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