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독립을 향한 10년의 여정
일상에서의 모습보다
여행하는 모습에서
그 사람이 더 잘 드러난다.
내가 말하는 사람의 모습이란 입혀진 색이 아닌 그 사람의 배경색을 말한다. 어쩌면 자기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그런 모습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각자가 찾아야 할 진짜 자신의 모습이라고 여긴다.
여행에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는 원리를 이야기하기 전에 소비의 원리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돈, 소비라는 것은 마음의 에너지가 물질화되는 것이다. 즉, 그 사람의 소비를 보면 그 사람의 마음 또는 가치관, 무의식 등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볼 수 있다. 물론 즐거운 마음으로 소비하게 되는 범주 안에서 일어나는 소비를 말한다. 돈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기꺼이 지불하게 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같은 값이라도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소비에는 돈이 아깝게 느껴지니 말이다.
그렇다면 여행에서의 소비는 어떨까.
여행이라는 것은 오롯이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정신적인 만족을 위한 소비 비중이 크다. 일상에서는 생존을 위한 필수 지출, 사회적 관계를 위한 지출, 습관적 지출 등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만, 여행에서의 소비는 대부분 순수하게 내가 원하는 것으로 향한다. 평소에는 커피 한 잔이 아까워서 탕비실에 있는 커피로 대신하는 사람이 여행지에서는 가장 맛있다고 하는 커피숍을 찾아가는 걸 망설이지 않는다. 그러니 여행에 돈을 쓴다는 것은 내가 인생에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로 채우는 행위다.
그런데 이런 자유로운 소비가 가능한 이유는 뭘까.
여행은 단 며칠뿐인 일시적인 소비이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 쓰는 이 돈이 내 삶을 망치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나를 안도시킨다.
하지만 영원히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나는 그게 꿈이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여행에서만 진짜 나로 살 수 있다면, 그건 여행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일상이 나를 억누르고 있다는 뜻이라는 걸.
“여행을 갈망하지 않고 싶어서
여행하는 삶을 택했다.”
20-30대, 나에게 제일 짧은 여행은 2주였다. 길게는 6개월.
정확히 말하면 그건 그냥 떠돌이 삶이지 여행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를 나답게, 내 인생을 나답게 한다는 의미에서는 분명히 여행이었다.
규모가 커질수록 단가가 싸지는 건 자본주의의 원칙이다.
여행 또한 그렇다. 경제적 효율을 따지다 보면 비싼 항공권값을 뽑으려 체류 일수를 늘리게 되고, 연박 할인을 받아야 하고, 마켓 중심의 식사를 하게 된다. 경제적 효율성이 높은 여행은 자연스레 살아보는 여행이 된다. 나는 20대 중반부터 약 10년 간 나그네의 삶을 살았다.
의식적으로는 경제적 효율성 때문에, 무의식적으로는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그때 나 자신에게 물었다.
“여행 가면 어떤 감정이길래, 서울의 편리함을 뒤로하고 삶의 질이 낮아지는데도 나는 왜 긴 여행을 택하는 걸까.”
단순히 다른 나라 문화가 궁금한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는 어디로 가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체류하는 데 얼마가 드는지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대개 선택지는 동남아에 머무른다.
당시 나의 대답은 이랬다.
“내가 여행을 하는 첫 번째 이유는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집단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물리적인 에너지 장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야. 그 영향권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오롯이 나로서 존재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또 다른 이유 하나는, 나만의 공간이 생기니까.”
성장한다는 것은 독립된 개체가 되어간다는 뜻이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가장 먼저 신체적 독립을 하고 그 후에 정서적 독립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신체적 독립에 비해 정서적 독립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인지, 많은 부모들이 그 중요성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서적 독립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만의 공간이다. 그 공간의 조건은 간단하다. 나의 하루가 시작되고 끝나는 모든 과정이 내 손에서 선택되고 결정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정리도, 청소도 타인의 도움이 아닌 내 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공간은 없었다. 내 방은 불쑥불쑥 아무나 언제든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었고, 외출하고 돌아오면 방은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그리고 엄마가 묻는다. “그거 버리는 게 어때?” 아니, 사실 이렇게 물어보시기도 전에 포장지나 껍데기 같은, 버려야 할 것으로 ‘판단되는’ 것들은 이미 알아서 분류되어 버려졌었다.
후에 내가 불편함을 드러내고 서로 몇 번 얼굴을 붉힌 뒤, 엄마가 포기하셨는지 달라졌다. “청소 좀 하지. 더러워서 들어가기도 싫다”라고 하시며 먼저 치우지 않고 내게 물어보시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정리를 못하는 사람, 방을 지저분하게 쓰는 사람이 되었다. 누가 들으면 진짜 돼지우리처럼 하고 사는 줄 알겠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엄마 기준에 집은 항상 모델하우스 같아야 하니까.
이것이 내가 살아보는 여행을 갈구하게 된 이유다.
살아보는 여행이라는 건, 생각해 보면 여행이 아니다. 생활의 범주에 더 가깝다.
그렇게 나의 살아보는 여행은 자연스럽게 내 인생이 되었다.
긴 여행의 숙박은 호텔이 아닐 확률이 매우 높기에 남이 차려주는 아침은 없다. 그래서 아침의 시작부터 내 의지가 개입한다. 아침에 일어나는 이유는 단지 따스한 햇살을 보기 위함이었다. 정말 단순하게 ‘해가 떴네’라고 생각하며 창문 앞으로 나아가거나 마당으로 나간다.
일상을 벗어난 여행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움을 찾아 나서는 일탈을 누리기보다 삶과 인생, 존재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것이 나의 일과였다.
아침 햇살을 보며, 낯선 거리를 걸으며, 혼자 식사를 하며 나는 계속 물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살아간다는 건 무엇일까.”, “행복, 성공, 결혼은 뭘까. “ 등…이런 질문들로 자연스럽게 하루를 채워갔다.
젊은 날,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여유를 부린다는 건 분명 사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겐 사치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쌓이면서 깨달았다.
이 시간은 절대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많은 것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세상과 나만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있었다.
생각을 하면 깜빡깜빡 뇌신경이 자라나듯, 가슴으로 자연과 하나하나 교감하는 동안 세상은 내게 확신의 의지를 보내주고 있었다.
나는 그때 내 그릇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느꼈고, 큰 그릇일수록 그 시간 또한 오래 걸릴 거라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다 34세에, 장기간 여행이 갑자기 의미가 없어졌다.
여행 스타일이 변했다면
갈망하던 무언가를 충족했다는 뜻이다.
그 계기가 된 건 ‘독립’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미국에 있던 남동생이 급하게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집을 나가야 하는 상황이 왔다. 우연처럼 찾아온 독립이었다.
2주 만에 집을 알아보고 이사까지 마쳐야 했다. 매우 갑작스러운 일정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막막하지 않았다. 오히려 명료했다. 평소에 내 공간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터라 집을 고를 때 조건들이 저절로 정해졌다. 인적이 드문 조용한 곳, 창문 앞을 가리는 구조물이 없어서 시야가 넓거나 자연 풍경일 것. 지역이 대략 정해지니 거기서 나오는 물건을 기다렸다. 원래 물건이 잘 안 나오는 곳인데 하나가 나왔길래 바로 방을 보러 갔다. 분리형 원룸, 큰 베란다, 분리된 주방, 작은 화장실. 게다가 넉넉한 주차. 집이 나온 지 2시간 만에 계약이 이루어졌다.
나를 잘 안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삶에서 무언가를 선택할 때 망설이지 않게 되는 것. 효율적이고 의미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는 것. 그래서 기회도 잡을 수 있는 것. 그동안의 여행이 내게 준 건 단순한 경험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이해였다.
그리고 그 이해가 드디어 일상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본가에서 쓰던 가구로 꾸며야 하는 한계가 있었지만 즐거웠다. 그리고 인테리어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집이라는 공간을 제대로 구성하려면 내 일과 여가생활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는 것.
집은 단순히 잠을 자고 쉬는 곳이 아니다.
내 삶을 받쳐주는 물리적 구조다. 효율적인 동선은 내 하루의 패턴에서 나오고, 각 공간의 기능은 내가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의 성격에 따라 결정된다. 침실은 휴식을, 책상은 일을, 소파는 여가를 담당한다. 이 구분이 명확할 때 집은 삶의 터전으로 기능한다.
문제는 당시 내게 이 구분이 없었다는 것이다.
고정된 일이 없었기에 일하는 시간이 정의되지 않았다. 일하는 시간이 불명확하니 쉬는 시간 역시 정의될 수 없었다. 일과 여가의 경계가 사라지자 집안의 공간들도 제 역할을 찾지 못했다. 책상 앞에 앉아도 일인지 여가인지 모호했고, 소파에 누워도 휴식인지 나태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경계 없는 일상은 집이 삶의 터전으로서 구실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방 배치를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1년마다 바꾸게 되었다. 정해진 일정이 없는 나의 일상처럼 자리를 못잡는 가구들. 어떻게든 일상을 만들어보겠다는 고군분투의 의지가 가구에 온전히 투영된 것이다.
독립을 통해 나는 정서적 안정과 평안을 찾았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안정 속에서 나는 새로운 갈망을 발견했다.
자유로운 삶이 아니라 정의되는 삶을 원하게 된 것이다.
자유롭다는 것은 모든 시간을 내 의지대로 쓸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모든 시간이 불확정 상태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아침에 눈을 떠도 오늘 무엇을 할지 정해진 게 없고, 저녁이 되어도 오늘 무엇을 했는지 명확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유 이면에 숨겨진 아주 무서운 그림자였다.
자유는 내게 마음의 평화를 줬지만, 정의되지 않은 시간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깨달았다. 내게 필요한 건 완전한 자유가 아니라 구조 있는 일상과 삶에 대한 책임이라는 것을.
일이 정의되고, 여가가 정의되고, 하루의 리듬이 만들어지는 삶. 그 안에서 비로소 나는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내게 더 이상 긴 여행은 필요 없게 되었다.
대신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일상을 정의하는 것.
여행을 통해 나를 찾았다면, 이제는 그 나를 일상에 안착시켜야 했다. 내 인생을 책임지는 법을 배워야 했다.
하루의 구조를 만드는 일. 그것이 시급해졌다.
그런데 새로운 니즈는 단순히 미래를 향한 계획만 만들어내지 않는다. 과거에 대한 후회도 함께 동반한다.
‘왜 진작 이걸 몰랐을까.’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깨달음은 언제나 뒤늦게 오고, 그 뒤늦음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지금이 타이밍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독립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온전한 홀로서기가 가능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