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엄마. 나의 할머니는 어릴 적 학교에 가라 하니 과수원에 갔다고 했다. 학교 대신 과수원에 숨어 살구나 앵두를 따먹는 게 좋았다고 했다. 아버지, 어머니, 당신과 동생 이름이 붙은 나무 중에 할머니가 숨은 나무는 어느 나무였을까.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던 할머니는 왠지 수수하고 반듯한 청년의 집에 시집을 갔다. 없는 살림 중에 '참 이상도 하지, 이런 집도 있네' 하며 그냥 그렇게, 원망이 아니라 신비로 살았노라 했다. 그리고 자녀 네 남매를 한 알 한 알 소담하게 키워냈다. 나의 외가는 할머니가 놀던 과수원처럼 향기롭고 무엇이든 자연스러웠다. 과하지 않은 볕과 바람, 물과 토양이 우애 좋게 나무들을 키워내는 것처럼.
할머니는 주말에 놀러 온 손주들에게 고봉밥을 먹였다. 밥상에 소고기 뭇국, 윤기 나는 반찬들이 끼니마다 가득했던 '할머니 밥'은 토요일 하교 후 겸허하게 목욕 세례를 하고 찾게 되는, 귀한 맛이었다. 그리고 밤이 되면 할머니는 우리 몸보다 무거운 솜이불을 깔았다. 아니 펼쳤다. 방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그리고 그 밤마다 몽달귀신 이야기를 해줬다. 그때 내 기억에 몽달귀신은 하얗고 동그란 계란에 가까웠다. 중간중간 내용이 끊기다가 할머니가 먼저 잠든 적도 많았고, 우리도 정해진 차례 없이 잠들었다. 새벽녘, 우리는 서로 코 고는 소리에 번갈아 깨어 눈 비비며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자석처럼 할머니 곁에 모여 잠이 들었다. 지금도 온 몸을 누르는 목화솜 이불과 까슬까슬하게 풀 먹인 시원한 여름 이불이 그리울 때면, 할머니 농을 열면 된다. 그곳엔 여전히 다 있다.
할머니는 이제 귀도 잘 들리지 않고, 눈도 잘 보이지 않는다. 등이 많이 굽어 펴는 게 더 아픈 지경이다. 경도인지장애와 치매 그 사이 어디쯤에 계셔 오늘을 기억하지 못하고, 지금은 재처럼 순간순간 사라지는 중이다. 아무리 내가 미미여도 원조 미미는 우리 할머니일 거다. 결국 엄마는 친정 아랫집으로 할머니를 모셨다. 휘청하지 않으려면 뭐든 잡아야 하는 할머니를, 몸 한쪽 신경이 무딘 엄마가 돌본다. 나의 엄마가, "어쩌면 할머니가 아랫집으로 올 수도 있어"라고 했을 때 나는 먼저 엄마를 걱정했다. 이미 엄마가 호되게 아팠던 적이 있어, 할머니를 돌보다 다시 몸이 기울면 나는 누구를 원망하게 될까. 아무도 원망하고 싶지 않은데 혹여 그렇게 될까 무서웠다. 그러다 이내 아흔 가까이 된 할머니의 여생이 딸네에 있다는 건 안심되는 일이구나 했다. 훗날 나도 당연히 엄마와 함께하고 싶을 테니까.
얼마 전 할머니 댁에 며느리와 딸, 손녀, 손주 사위가 예정 없이 모였다. 친정과 숙모네 반려견 녹두와 콩이까지. 우리는 갑작스런 만남에 '어떡해? 모이니까 너무 좋아!' 연신 외치다 함께 옥상에 올라갔다. 할머니가 이사 오며 챙겨온, 절반이 빈 장독들을 살피자는 핑계로, 실은 할머니의 1일 1산책을 위하여. 우리는 반려견들이 허공에 대고 코를 큼큼하는 것이 귀여워 웃었다. 건물과 건물, 좁은 틈 사이에서 20년 동안 살아 남아 옥상까지 자란 목련이 대견해서도 웃고. 할머니는 앉기보단 계속 걷자 했다. 우리는 각자 이곳저곳을 살피며 걸었다. 그리고 뒷짐 지고 살살 걷던 할머니가 조용히 고꾸라졌다. 순간 겁에 질린 할머니 표정이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그리고 내심 할머니를 즉시로 잡아드리지 못한 미미한 내 몸뚱어리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할머니를 부축하고 몸을 살폈다. 내가 "할머니 진짜 괜찮아? 아픈 데 없어?" 물을수록 할머니는 일부러라도 더 씩씩하게 괜찮다 했다. 나는 더 묻지 못하고 실눈을 뜨며 계속 살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이 없어 보였다. 아마도 아주 천천히 걷고 있던 터라 몸이 충격을 덜 받았던 것 같다. 그곳에 있던 모두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의자에 앉았다.
반려견 녹두가 할머니 무릎 앞에서 안달이 났다, 지 안아달라고. 할머니는 "얘가 누구네 강아지지?" 하며 얼떨결에 녹두를 품에 안았다. 그러더니 "언제 나랑 친해졌나 보네" 했다. 나는 할머니 앞에서 달랑거리는 녹두가 그날따라 고마웠다. 할머니는 저를 쉬이 잊어도, 녹두는 할머니를 기억하겠지. "이제 집에 가야지" 하는 할머니 말에 다들 일어섰다. 그리고 할머니는 할머니 집 앞에서 무해하고 천진한 얼굴로, "여기가 어디냐" 물었다.
그런 의미에서. 매일 아침, 할머니 댁에 차 마시러 가는 엄마가 있어 참 다행이다. 엄마는 어느 날은 반려견 녹두를 안고, 때로 아들이나 남편을 보내기도 하며 그렇게 할머니와 살아갈 거다. 우애 좋은 엄마 형제들이 아부다비에서, 상암동에서, 대방동에서 매일 안부를 묻고 주말이면 할머니께 찾아올 것이고, 어떤 날은 고봉밥 먹고 자란 큰 손주가 우리 엄마 몫까지 초밥을 사올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할머니가 좁아진 집 때문에 갑자기 역정을 낼까 걱정이 된다. 요즘 때로 역정을 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들기 전, '그래서 여기가 어디지?' 할까 걱정이 된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모르는 방에 혼자 있다면 나라도 무서울 것 같다. 그러다 생각 한편에서 친정엄마가 망토를 두르고 짠 하고 나타난다. 보통의 영웅들이 한쪽 팔은 곧게 뻗고, 한쪽 손은 허리에 둔 채 선 것처럼. 할머니가 당혹할 그때 엄마가 문을 활짝 열며 환기하겠지. 할머니가 넘어졌을 때도 '아이고 괜찮다'고 가장 크게 외친 건 우리 엄마였으니까.
그러다 나는 갑자기 엄마 걱정을 한다. 안 그래도 작은 엄마가 요즘 더 작고 야위어 가는 것 같고, 운동은 않고 자꾸 부황만 뜨는 게 속상해서. 주변 모두를 통솔하는 대장이 된 엄마가 대단하기도 하면서 실은 그 심정은 그다지 무딘 사람이 아니란 걸 알기에 걱정이 된다. 작은 보조가방을 몸에 매달고 씩씩하게 계단을 오가는 엄마가 다람쥐 같아 귀엽다가도 무릎에 다시 물이 차면 어쩌나 싶고.
실은 이렇게 친정 식구를 향해 걱정과 안도가 교차하는 어지러운 마음은 나만의 것이다. 아무도 내게 전가하지 않은, 오롯이 일방적인 마음. 나는 언제나 가족과 친척 들을 몰래, 참 많이 좋아한다. 조부모의 정서적 안정까지 아무도 내게 맡기지 않았고, 엄마의 곁엔 지금 동생과 아빠와 녹두가 있음에도 두 사람의 일일 드라마가 궁금하다. 내가 왜 이러나 싶다가, 웃음이 픽 난다. 나는 가족을 사랑하고, 걱정하고, 돌봐주고, 애쓰는 어른들 틈에서 자랐다. 내게는 외가에 모이는 주말과 명절이 어린 시절 가장 따뜻한 기억이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졸업식마다 외가 식구들이 함께였다. 지금 글을 쓰는 중에도 이모들과 숙모와 삼촌, 사촌 들이 보고싶다.
나는 그래서 오늘도 손주라는 객체로 미미하게 그러나 꼼꼼하게 엄마와 할머니 주연의 일일 드라마를 기다리다 시청한다. 그러다 혼자 짠하고 혼자 마음에 새긴다. 아마 할머니는 엄마와 함께하는 매일은 잊고, 제일 사랑하는 외삼촌 '어빠'가 오는 주말만 기억할 거다. 그럼에도 엄마는 내일 아침도 보조가방에 돋보기를 넣고 할머니 집에 내려갈 거다. 그리고 '엄마, 나 왔어.' 하겠지. 할머니는 이곳이 어디인지, 집엔 언제 가는지 물을 거다. 그러면 엄마는 잠시 쉬러 온 거라고, 곧 집에 간다고 하겠지. 실은 이 이야기는 우리 엄마 주연의, 지고지순한 엄마 사랑 이야기. 평생 소장하고픈, 내가 찜한 영화이기도 하다. 제목으론 뭐가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