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들어와 산 지 몇 개월 지난 때였다. 그때는 부임하고 얼마 안 돼 이 교회의 유초등부 성경학교가 어떤 모습인지 알지 못했다. 그날따라 야근하고 집에 왔는데 남편은 집에 없었다. 캄캄한 우리 집과 대조적으로 건너편 교회에서 환하게 빛나던 노란 불빛을 잊을 수 없다. 아, 겨울 성경학교 시즌이구나.
그땐 집에서 교회까지 5미터 남짓한 거리인데도 50미터쯤으로 느낄 때였으므로, 남편에게 우선 전화를 했다.
“어디야?”
“교회. 식당에서 애들 야식으로 떡볶이 먹는다는데 너도 같이 가자.”
아직 좀 어색해서 남편 뒤를 졸졸 따라 식당으로 내려갔다. 챙겨 입은 하얀 패딩이 너무 튀는 건 아닌가 걱정도 했다. 이전 사역지에 이 패딩을 입고 갔더니, 성도 한 분이 “어우, 사모님 옷이 완전?” 물음표만 남기고 그 뒤에 말을 잇지 않으셨기 때문에. 하얀 패딩을 의자 등받이와 허리 사이에 구겨 넣다시피 하여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유초등부 성경학교인데 온 교회의 집사님, 권사님, 중고등부 아이 들까지 총동원한 자리였다.
누군가와 눈만 마주치면 아이가 아니고서야 고개를 연신 숙여대며 떡볶이 몇 개를 먹었다. 다 먹을 때쯤 남편 앞에는 여러 물컵과 리필되는 음식이 가득했다.
“목사님, 이것 좀 드셔보셔요.”
“목사님, 많이 드셨어? 더 드셔~”
“목사님, 물도 마셔가며 드셔.”
유독 목사님 앞에 물컵이 여러 잔 놓일 때 중고등부 학생 하나가 다가왔다. 그리고 말없이 내 앞에 물컵을 '탁' 소리가 나게 놓고 갔다. 그때 내 앞에 물컵이 없는 게 나만 이상한 게 아닐 수 있다는 묘한 안도감과 그 학생에게 표현하지 못한 고마움을 느꼈고, 대체로 주변인으로 사는 사모의 삶에 대해 짧게 생각했다. 나는 교회 안에 살지만, 남편 주변에 살고 있구나.
문제는 이후 내가 주변인으로 여겨질 때 정말 괜찮았나. 생각해보면 상황을 인식하고, 분노하고, 수용하는 단계를 여러 번, 동일하게 반복하며 겪었던 것 같다. 때로 주변인도 아닌 투명한 존재가 되기도 했는데, 가령 나와 남편이 함께 수고한 현장에서 ‘목사님 수고하셨어요’라는 피드백이 나 빼고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고, 모든 일원이 돌아가며 생활 나눔을 하는데 나는 가뿐히 넘어간다거나 하는 경우다(‘여기 사람 있어요’라며 손을 흔들 수 있는 시의적절한 내공이 내게는 없다).
이렇게 때때로 투명해지는 순간이 모여 지금 내 안에는 몇 명이 살고 있다.
투명해야 하는데, 투명하고만 싶지는 않아서. 결국 투명할 건데도 잠깐 나를 아껴주고 싶어서.
‘왜 나는 사모인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나?’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안고 잠수 중인 애도 있고, 혼자 소녀시대 데뷔곡을 틀어놓고 춤 연습해보는 애도 있다. 직장인 친구들에게 평일 예배를 피해 ‘월요일에 보자’고 민폐를 끼치는 애도 있고, 민폐가 미안해 한 달에 한 번은 금요 기도회를 빠지겠다고 선언하고 약속 잡는 애, 삶의 모든 영역에서 교회를 생각하는 애, 어느 날은 세상 먼 나라로 도망치고 싶은 애 등 다양한 애들을 내 안에 소장하게 됐다.
다행인 건 그중에 ‘남편 주변인’이라는 애도 제법 소장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어쩔 땐 걔가 애초에 나라는 사람이 주변인으로 태어났다고 자부하기도 한다. 제자리에서 자신의 모난 구석구석을 사포질하며 사람들을 관찰하는 자리로 초대하기도 하고, 무리 속에서 벗어나 모서리로 뒷걸음질 치는, 나와 닮은 사람을 알려주기도 한다. 열심히 쓸고 닦은 방에 성도 누구 하나 들어가면 “지금 별이가 저 방에서 공부하고 있어!”라며 귀띔해주고, 맛있는데 양도 많은 과자를 사다가 교회에 가져가라고 소리치기도 한다. 그러다 내가 안쓰러워하면 종국엔 ‘나 까짓것 신경 쓰지 마, 네 중심엔 하나님만 계시지’라고 정곡을 찌르기도 한다.
입이 솔직하면 누군가 시험이 들까 걱정이고, 적절히 감추자니 스스로 괴리감이 생기는 게 사모 생활이다. 지향하는 바가 같고, 배울 게 많은 교회에서도 ‘이것도 지향해야 하나, 지양해야 하나’ 모든 걸 의심하고 고민하는 다중이. 교회에 살고 있는 보라매동 다중이는 오늘도 종일 성도들과 강화도로 야유회 다녀온 남편에게 살금살금 다가가 오늘 하루 어땠냐고, 권사님들은 좋아하셨느냐고 물으며 사진 구경하고, 권사님들이 사주신 아귀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잠시 마음만 야유회에 함께 다녀온다. 주변에 사는 다중이의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