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토요일이었다. 2년 만에 교회 아이들과 모임을 시작했다. 우선 야외 소풍을 다녀왔다. 돗자리 4개를 이어 붙여 오순도순 앉아 치킨마요를 먹고, ‘스피드 게임’ ‘몸으로 말해요’ 등 그때 그 시절 가족오락관 게임을 했다. 단체로 OX게임과 선물 추첨을 하고 모바일 치킨 쿠폰을 쏘며 마무리했다. 끝나는 게 아쉬운지 자리에 남은 아이들과 연이어 박자 게임을 했다. 이 기세를 몰아 굳이 벌칙으로 또 모일 작당을 꾸몄다.
벌칙은 부서 게시판을 꾸미는 일이었다. 벌칙에 걸린 아이는 중1 여자아이. 대부분 중1 아이들 마음은 6학년, 몸만 중학생이다. 말인즉슨, 여전히 달란트 시장이 그리운데 같이 뛰놀던 언니 오빠들은 요지부동, 세상의 모든 중력을 엉덩이에 끌어 모았는지 좀처럼 움직이질 않으니 영 재미가 없다. 지금은 6월이니 제법 적응할 법도 한데, 코로나 덕분에 아이들은 마스크 너머 적절히 섞일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소풍날, 꽃봉오리가 ‘톡’ 움직이듯 아이들 마음이 살짝 움직였다. 내 눈엔 그게 보였다. 벌칙에 걸린 아이(동생 1)는 친구 한 명(동생2)을 불렀다. 부서 담당자인 남편은 ‘언니들’을 소환했고 언니들은 한없이 노곤한 표정으로 토요일 오후 교회에 모였다. 잠깐 도와주고 갈 요량으로 언니 1은 모자 푹 눌러쓰고, 언니 2는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었는데) 밥 실컷 먹고 왔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모이니 숨만 쉬어도 웃기기 시작했다. 언니들 품이 그리웠던 동생 1,2는 들숨날숨마다 “언니, 여기 뭐 써?” “언니가 쫌 써줘” 하며 언니들을 귀찮게(?) 했고, 언니 1,2는 펜 하나씩 들고 도와주기 시작했다. 이 언니들을 말할 것 같으면, 오징어 게임을 패러디한 적도 있고, 갑분 호랑이 해를 기념해 한가운데 호랑이를 그리는 등 게시판을 힙하게, 매달 꾸미던 경력자들이었다. 거기에 모든 그림을 애니메이션처럼 그려내는 동생 1이 나타났고. 이번에는 귀여운 디저트와 풍선, 순정만화 주인공 얼굴들이 그려졌다.
부대찌개를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점심을 이미 먹고 와서 배부르다는 언니 2에게 다들 “가지 말고 같이 있자” 고 했다. 결국 언니 2는 어느새 보글보글 끓는 부대찌개 앞에 앉아 있었다. 국어 교사인 성도님께 '요즘 아이들은 실용적이지 않은 순간을 견디기 힘들어한다'는 얘길 들어서, 먹지도 않을 부대찌개 앞에 앉은 아이에게 정말 고마웠다. 나와 남편은 보통 아이들 틈에 섞여 앉지만 이번에는 따로 앉았다. 살짝 거리를 두고 앉으니 아이들이 더 잘 보였다.
언니 1은 언니 2에게 “남아줘서 고마워, 덕분에 편하게 먹고 있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에 앉은 동생 1, 2를 엄마 미소를 띠며 바라봤다. 동생 2는 손으로 입은 가리지만 다 들리게 “라면 하나 더 어때?” 하며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고, 동생 1은 의자 끝에 앉아 라면과 육수와 소스 리필을 기꺼이 했다. 배부른 언니 2는 끝까지 라면 한 줄 먹지 않았지만 오고 가는 말들에 잘 웃고 반응해줬다. 마스크 끼고 눈 마주쳤을 땐 대면대면하더니 마스크 벗고 라면을 무한 리필하면서 아이들은 하나가 됐다. 사이가 ‘다시’ 좋아졌다.
우리는 골목을 나란히 걸으며 아이스크림 하나씩 입에 물었다. 나는 노란 망고 아이스크림을 들고 아이들을 뒤따라 걸었다. 아이들 웃음소리 틈으로 간간이 보이는 형형색색의 아이스크림은 향기로웠다. 이런 날을 꿈 꾼 적은 없는데, 지금이 간절했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리고 아무도 집에 가질 않았다. 동생 1이 애착 인형처럼 품에 끼고 온 돌고래 인형을 던지기 시작했다. 나도 남편도, 아이들도 인형을 토스하며 아이스크림을 위에서 장으로 밀어냈다. 그러다 점점 토스가 세지더니 언니 1은 테니스 코트 같은 데서 울릴 법한 돌고래 소리를 냈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리를 옮겼다. 더 넓은 방으로.
남편은 적절한 타이밍에 일어나 사무실로 돌아갔다. 나는 타이밍을 놓쳤지만 좋았다. 집은 5미터 이내에 있고, 당장 들어가도 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이 배구에서 피구를 할 때까지, 물 마시러 로비에 나왔다가 교회 마당에 잠시 앉아 쉴 때까지도. 다시 방으로 들어가 ‘몸으로 말해요’를 할 때는 나도 껴달라고 했다. 구경하며 웃기만 하다 막상 같이 움직이니 금세 힘들어졌다. “얘들아, 우리 잠깐 쉴까” 했지만 아이들은 “아니요, 이 텐션 계속 높여야 해요”라며 랜던 게임을 하자 했다. 더 이상 할 게임이 없을 때쯤 수완 좋은 동생 2가 과자 몇 개를 얻어와 우리는 동그랗게 모여 앉았다.
“이제 집에 가자!”며 동생 2의 부모님이 교회에 찾아올 때까지 교회에서 놀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내가 집에 들어올 때, 나머지 아이들은 여전히 함께 윗집으로 올라갔다. 타닥, 타다다닥 계단 올라가는 소리가 청아하게 울렸다. 다음 날, 우리는 성경 필사 모임에서 또 만났다. 모임 시작 전 “지난 한 주 가장 인상 깊은 순간을 이야기해볼까” 했더니 어제 모인 아이들은 모두 ‘어제’라고 했다. 실은 내게도 정말 놀랍고 치명적인 토요일이었다. ‘내 몸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피로한데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맑았다. “가끔 어제처럼 정신없이 놀고 동네를 걷자” 했더니 아이들이 박수를 쳤다.
교회는 모든 사역을 다시 시작했다. 시작하면서 내가 가장 안전하다 느끼는 영역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영역이다. 몸은 좀 피로하지만 마음은 무해하고, 헤어지면 그렇게 고맙다. 재미없는 나랑 놀아줘서. 자꾸 '라떼(나 때)'를 찾는 나를 받아줘서. 몸 아픈 것만 나으면 자녀 없는 지금만 할 수 있는 것을 기꺼이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중에서 제일 중한 건 교회 아이들과 같이 잘 노는 것. 이 시절을 함께 몽글몽글하고 재미난 순간들로 채우는 것. 그래서 훗날 아이들이 힘들 때 교회를 생각하면 한없이 웃기고 행복한 것.
지난 토요일은,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 때문에 왠지 뽐낼 수 없던 여전한 마음이 폭죽처럼 터진 날이었다. 팡! 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