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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Feb 14. 2024

사랑받고 싶어

생각편의점

사랑받고 싶어




나와 같은, 그러나

나 아닌 게 분명한

다른 사람이면서, '나'를

남이 아니라고 확인해 줄

남이 필요합니다


혹시, 나는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우기고 있다면

그 표면적 무관심에는

자기 방어 기제가

무의식적으로 작동했을 겁니다


좌우간 그 '너'가 있는 그 욕구로

내가 쉽게 다칩니다

많은 이들이 그 너 때문에

다치는 줄 압니다만,

내가 믿고, 내가 사랑하고,

내가 미워하고, 내가 슬픕니다

내가 사람에게서 입는 상처는

대개 너 때문이 아니라

내 이기(利己)로 다칩니다


들여다보면

세상을 겪는 게 아니라

'나'라는 인간을 겪다가

우리는 죽습니다


흔히 입에 담는 세상은

내가 겪는 너에 관한

나의 이야기로 가득 찹니다


나를 남이 아니라고 인정해 줄

남은 필요하지만, 그럴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나밖에 없는지도 모릅니다

대개의 힐링은 내게 필요합니다




어찌 보면, 힐링은 한 마디로

내가 나를 인정해 주려는 겁니다만,

내게 주는 스트레스 덕분에

나는 애완으로 바퀴벌레도

즐겁게 키울 수 있을 정도입니다


내게 시비 걸지 않고,

나를 판단하지 않고

내게 실망하지 않으며, 무조건

나를 따르는 듯한,

내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말입니다


인형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인공지능이나

내 발에 걸린 돌부리에

마치 친구처럼

말을 거는 '내'가 흔한 것도

자신은 다치지 않은 채,

타인으로부터가 아니면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을

희석하려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도 인정 욕구, 남이 필요한 겁니다


그러면서 나는 어디에나

필요한 존재가 되어

인간의, 세상 모든 것의

의미가 된 자화상을 그립니다


경험에서 얻은 건데,

사랑이 그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사랑 때문에 석 달 열흘을 울다가

기어이 몸이 함부로 망가진 뒤

천이백사십육일 정도가 지나서

사람에 대한 애증이 뚜렷해지면,

당신도 사람을 좀 더 객관 하며

유쾌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 겁니다


마침내 집착에서 벗어나 보니,

사랑이 그 길고 짧음과는 무관하게

삶 자체도 사소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


"사랑받고 싶어"


이 말을 머뭇거리지 않고 쓸 때는 

노랫말로 쓰일 때뿐입니다

마음으로는 구어체이지만

현실에서는 문어체인 모양입니다


그래서 말하지 않아도 누구든

상대가 알아주기를 바라지요

"그걸 꼭 말로 해야 해?"

오히려 몰라 준다고

상처를 입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위로의 말을 덧붙이면, 이 말을

현실에서 아무렇잖게 쓰는 이를

조심해야 할 겁니다

그는 당신의 마음을 갖고 싶을 뿐

당신을 사랑하는 이는 아닐 테니까요)


당신이 말을 함부로

못하고 있는 건 그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사랑받고 싶다'는 건

그냥 ''의 이야기입니다

내게 사랑이라면, 그게

그에게도 사랑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그

내가 사랑하기 전에는

'행인 2'었듯이

나 자신도 그가 지나쳐간

하나의 행인이었습니다


행인에 불과했던 그가

나의 사랑을 올곧이

기만 해 준다 해도,

다시 말해

그저 행인이었던 나의 사랑을

뿌리치지 않고,

그냥 하게 두는 것이 그가

사랑하는 방식인지 모니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명장면으로 불리는 마크의

스케치 북 고백처럼

잠깐의 입맞춤으로 끝난다 해도

사랑은 '해서 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해 보면 알겠지만

하지 않을 때보다 행복할 겁니다

그게 사랑이 맞다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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