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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Apr 05. 2024

다시, 다시

생각편의점

다시, 다시



대형 마켓에서 사람과 부딪는 느낌과

전통시장에서 사람과 부딪는 느낌을

달리 받아들이게 되는 건, 오직 사람이

붐비는 정도 때문은 아닐 겁니다


사람마다 자신이 가진 삶의 시계가

다르다는 것을 아는 자로서,

체계적으로 정리된 마켓에서

어쩌다 부딪힌 사람에게서는

싫다는 거부감이 두드러지는 데 반해,

어설프게 정돈된 시장에서

어쩌다 부딪힌 사람에게서는

그래도 될 것 같은 여유를 느낍니다


조작된, 다시 말해

구매욕을 자극하려는 전시보다는

대강 늘어놓은 공연한 환경의

시장 공기가 좀 더

자연을 닮아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좀 더, 왜 그런가 하다 보면,

나를 인식하지 못한 채

자기가 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의

옆모습에서 느끼는 매력처럼,

삶을 잘 모르는 인간의 관심보다 

주름 한 두 줄 더 걸친,

세상을 조금은 앓고, 그걸 건너온 얼굴에

마음을 앗기는 것과 같다 싶습니다


그런 얼굴들을 시장에서 봅니다




시장 안의, 특히

거기 삼거리가 있어

어디로 갈까,

잠깐 여유를 부릴라치면

흔히 느끼는 게 있습니다


치이는 게 사람인

그 안에 서면 그냥 보입니다


'나' 말고도 수많은

마찬가지로 '너' 말고도

수많은 사람이 태어나

세상을 앓고 있음


이런 그림은, 원거리에서 쥐 잡듯

초광각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로 찍어

118인치 스크린으로 보아도, 아니면

그 종목이 무엇이든 관중으로 채워진

스포츠 경기장에서도 보기 어렵습니다


이미지가 가진 피사체의

고정성과 객관성 덕분에

천만이 넘게 모였다는 '촛불'도

그림으로는 많다는 정도일 뿐,

가슴으로 이해하는 데는

조금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별 것 하지 않고

그 거리의 열정에 섞여

상식적인 평범한 염원을 품은 채,

주변 상황을 알지 못해도

어쩌다 옆에 선 몇몇 이들의

외침을 듣는 것만으로도

천만 인이 모아준 듯한 전율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위의 인간에게

소비당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제 잘난 척하며 으스대고

혼자 사는 듯해도, 거꾸로

그 으스댐이 더불어 살고 있다는

방증이 되어 버리는 이 사회에서

소비되는 게 이상할 게 없긴 합니다만

그것을 직접 느끼는 건 다릅니다


우리 역시 누군가를

소비하면서 하루를 삽니다

다만, 그들을 특정한 이미지로

인식하고 흘려보내다가,

그 이미지에 맞지 않을 때만

그들도 인간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되새기는 편이지요


그렇게 우리가 항상

모두를 느끼지 못할 거라면, 오직

하나를 사랑하는 게 현명할 겁니다


인간을 일반화시켜서

왜 모두를 느껴야 하나,

회의를 갖게 하는 동시에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될

누군가, 즉 '너'에 대한 사랑이

아무리 쓸모없는 감정의

소모에 불과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말했다시피, 사랑에 빠지기엔

'내'가 너무 잘난 세상을 사는 듯싶습니다

요즘 우리가 기적인 사랑보다는

일상의 짝을 찾는 이유일 겁니다


사랑은 없어도 삽니다

없어도 살 수 있는

죽음과 마찬가지입니다


없어도 괜찮기 때문에

있으면 좋은 것이

사랑, 그리고 죽음일 겁니다


그러나, 당신의 삶에

사랑은 없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스쳐 지나는 찰나에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해도

사랑을 담을 수 있습니다


그 순간의 사랑이

우리가 하는 사랑 가운데

가장 순수할 겁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그저 마주친 우연과,

나를 엇갈려 지나치기 위해

함부로 다가오는 그 느낌만으로

일궈지는 감정일 테니까요


그 순간이 너무 짧아

사랑으로 여기지 않을 뿐이지요

그 찰나도 우리가

죽음으로 가는 길이란 것을

감추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사랑을 마음이 아니라

시간의 길이로 그 깊이를 재는

관념이나 천박함 덕분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잠깐의 그 행복을 

즐기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데,

우리가 한 삶을 사는 동안의

그 찰나를 채운

사랑의 조각을 모아 보면

책 한 권 쓸 분량은 될 겁니다


그래서 사랑한 적이 없다는

당신의 고백은 항상, 거짓말입니다


우리는 어떤 관계상황을

사랑으로 부르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사랑은 사적인 것으로 내가 합니다

그의 사랑 역시 그에게는 사적인 것이며

나의 사랑과는 별개로, 그가 합니다

그의 사랑이 없다고 해도

내가 하는 게 사랑이 아닐 수는 없지요


'이루지 못한 사랑'이나

'이룰 수 없는 사랑'도 사랑입니다

벌써 잊었겠지만 말입니다


아니면 지금, 이걸 읽고 문득

그때 그 순간 그에게 가졌던 느낌,

사랑일 수도 있지 않았나 싶은

'그'가 머릿속에 떠올라도

이상한 일이 아니란 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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