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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영 Oct 26. 2022

Don't Worry Be Happy

하와이 6

  내가 죽음을 제일 처음 접하게 됐던 건 대학교 2학년 때라고 할 수 있다. 1학년을 마치고 군대 간 남자 동기들 중 한 명이 백혈병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그때까지 그렇게 많지 않은 그 동기와의 시간들이 떠올랐다. 재수생들끼리 친하게 지내야 된다며 그 동기는 여러 번 자리를 만들어 불렀지만 난 당시 타과 남자친구와 비밀 연애하느라 남자 동기들과 어울릴 생각이 없었던 거 같다. 사실 그렇게 친하게 지냈던 동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막상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철렁했다. 내가 인식하는 백혈병은 죽는 병인데, 한 동안 수업을 같이 듣던 그 동기를 볼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건가. 무서웠다. 내가 알고 지낸 사람이 죽는 건 그때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으니, 혹시나 그런 상황이 닥칠까봐 막연하게 두려웠다. 날 챙긴다고 동기들과의 밥자리, 술자리에서 여러 번 나에게 연락했던 게 떠올랐고 얼굴을 비춘 날보다 자리에 안 나간 그날들이 더 많은 게 떠올랐다.


  동기에게 연락해서 한번 찾아가도 되냐고 물어보니 당연히 와도 된다고 했다. 친한 친구가 부산에서 지내고 있어서 부산을 자주 갔었는데, 동기 소식 들은 후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내려가 친구를 만나기 전에 동기가 입원한 병원부터 찾아갔다. 병원을 들어설 때부터 괜히 긴장되는 나와는 반대로 병실을 들어서니까 동기는 너무나 밝고 반갑게 날 맞아주었다. 통통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핼쑥해져 있었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넓게 펼쳐진 야외 테라스로 나왔다. 동기는 잘 지냈냐고 물으며 학생회 들어간 거 들었다고, 이제 우리 과는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거냐며 짓궂은 장난을 쳤다. 다른 동기들의 소식도 떠오르는 대로 물으며 학교를 많이 그리워했다. 몸은 좀 어떠냐니까 자기는 생각보다 괜찮다고, 사실 그렇게 아프지 않다며 강한 모습을 보였다. 긍정적인 성격 때문이었을까, 실제로도 아픈 사람 같아 보이진 않았다. 신기할 정도로.


  햇빛을 쬐며 한참 수다를 떨다가 병실로 돌아와서 또 오겠다고 작별 인사를 하고 나왔다. 병원을 나오면서 속이 조금씩 울렁거리더니, 제일 가까운 버스정류장 와서 앉으니 참았던 눈물이 마구 흘렀다. 거기 앉아서 한참을 울었다. 부끄러움과 미안함이었던 거 같다. 그냥, 알고 지내던 사람이 잘못될 생각에 겁나고 내 아쉬움이 떠올라서 난 나를 위해 찾아간 마음이 컸던 거 같은데, 사실 친분이 그렇게 크지 않던 내가 보러 온다는 게 불편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걱정과 달리 동기는 날 너무나 반가워했고 병문안 온 것에 대해 많이 고마워했다. 그 후에도 난 부산 가면 그 친구를 만났고 강인한 그의 모습에 매번 내가 되려 자극을 받고, 또 위로를 받고 돌아오곤 했다. 6인실을 쓰던 동기는 그 병실에서 제일 건강하게 퇴원했고 지금까지 쭉 아주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자기가 책을 내게 된다면 제목은 ‘암이 제일 쉬웠어요’로 할 거라고 농담도 할 정도다.


  그때의 시간들로 이제는 정말 친한 동기가 됐다. 자기 친구들한테 병문안 오려고 부산까지 왔던 친구라고 나를 소개하기도 하며 아직도 그때 얘기를 가끔 꺼낸다. 내 마음 편하고자 갔던 부산행이 날 대단한 인성의 사람으로 만들어놔서 좀 부끄럽다. 난 대단한 일 아니었다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동기는 말한다, 네가 쉽게 온 거였던 아니었던 간에 꼼짝도 못 하고 병원 안에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의미는 다른 거라고. 정말 고마운 말이다. 참, 그게 뭐라고 그의 친구들도 날 자기 친구의 학교 동기가 아닌 그냥 본인들의 친구처럼 대한다. 난 강인한 동기 덕분에 그때 위로를 받았었고 좋은 사람 이미지를 얻었고, 덤으로 좋은 친구들까지 얻었다. 고마운 게 참 많은 동기에게 바라는 건 그저 건강하게 즐거운 날들 계속 함께 하는 거. 그 친구의 좌우명대로, 걱정하지 말고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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