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7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이 결정되고, 날이 밝자마자 난 가까운 옷 매장으로 갔다. 그 전날 밤에 그냥 제일 먼저 손에 잡힌 찢어진 청바지를 주워 입고 갔던 터라, 검은색 바지 아무거나 사 입고 병원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상복으로 갈아입으면서도 내가 몇 시간 전에 본 할아버지의 모습은 믿기지 않았다. 그 모든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영정사진도 제대로 못 보겠고, 장례식장 입구 앞에 어딘가에 멍하니 서있다가, 정신을 좀 잡고 상황을 둘러보니 아빠 엄마를 비롯해서 친척 어른들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다 어디 연락하시느라고 바쁘셨다. 너무 급작스러운 일이라 더 정신없었을 거다. 몇 시간 지나니까 한두 명씩 찾아왔고 장례식장은 금세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친구가 곧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고 입구 쪽에서 서성이시던 큰고모는 친구의 얼굴을 보자마자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어린아이처럼 우셨고 친구분은 달려와 안아주시며 같이 우셨다.
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나는 어찌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나도 누군가에게 연락해야 하냐고 엄마한테 물어보니까 엄마도 잘 모르겠다고 하시고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네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라고 하셨다.
진짜 몰라서 물어봤던 건데 그 말을 듣고 나니 친구들에게 연락이 하고 싶어졌다. 내가 너무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거지 않나. 아직 받아들이지도 못할 만큼 너무 큰 슬픔이 나에게 일어났다. 핸드폰에 저장된 연락처를 열고 생각할 것도 없이 난 바로 떠오르는 친구 5명에게 서스름 없이 연락했다. 고민 없이 내가 바로 떠올릴 정도의 친구들이니 내가 할아버지랑 얼마나 친한지도 당연히 알고 있는 친구들이었고, 내가 제일 의지하고 있는 친구들인 거 같다. 가까이 있던 친구는 당일에 달려왔고, 또 다른 친구는 다음날 바로 찾아왔다. 올 수 없는 상황의 친구들은 미안해했고 장례식이 끝난 후 계속 연락하며 날 걱정해줬다. 부산 사는 친구는 다음날 첫차로 올라왔는데, 그 친구가 왔을 때 그렇게 눈물이 났다.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 기억이 났던 건데, 부산에서 온 친구는 할머니가 몇 년 전에 돌아가셨었다. 그때 친구는 어학연수로 외국에 있었고, 소식을 듣고 한국으로 최대한 빨리 올 방법을 찾았지만 그렇게 와도 장례식은 이미 끝나 있을 때라 할머니께 마지막 인사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타지에서 아무것도 못하는 답답함과 실제보다 더 크게 느껴질 그 슬픔을 오롯이 혼자서 느끼고 있을 친구 대신 나는 장례식장을 갔었다. 가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남은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거뿐이었지만, 그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거라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어떤 마음으로 나에게 한걸음에 달려왔을지를 아니까, 잠깐이라도 마주하고 있는 친구들의 얼굴을 보고 있던 시간이, 시간이 지나면서 지날수록 더 큰 힘이 됐다.
친구들이 와서 같이 있으면서 별말은 안 한다. 사실 할 말도 없지. 뭐라도 먹으면서 나도 한 숟갈이라도 먹게 하고 나의 슬픔을 함께하려고 내 얘기를 조용히 듣고 손을 따뜻하게 잡아줄 뿐이다. 간절할 때 달려와줬다면 아무 말하지 않아도 된다. 슬픈 감정, 힘든 감정은 옆에 있어주고 가까이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큰 에너지가 쓰여 같이 힘들기도 해서 쉬운 일이 아니다. 함께 있어주는 게 덜 외롭게 느끼게 해주는 거뿐 아닌가, 특별한 도움이 되는 건 아닌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 눈물에 같이 슬퍼해주는 것, 손 한번 잡아주는 것, 따듯하게 안아주는 것, 나에게 애정 있는 사람이 나의 슬픔을 알고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실질적인 도움인 거다. 내 슬픔을 함께 해준 고마운 친구들 덕분에 내 슬픔은 조금이나마 덜 슬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