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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영 Oct 30. 2022

너는 나의 글이 되고 나는 너의 노래가 되길

로스앤젤레스 3

  여행을 다녀온 해 연말에 ‘라라랜드’가 개봉했다. 그 영화 영향으로 그린피스 천문대는 물론 LA의 많은 명소들은 한국인 여행객들 사이에서는 많이 유명해졌다. 영화의 많은 명장면들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세바스찬과 미아가 그린피스 천문대에서 함께 있던 장면이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이들이 그들의 사랑이 시작되던 밤의 그린피스 천문대를 떠올리겠지만, 난 그들의 사랑이 갈 방향을 잃은 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저 앞으로 나아가고 있던, 낮의 그린피스 천문대 장면을 최고의 장면으로 꼽는다. 그린피스 공원 벤치에 앉아 영원한 사랑, 동시에 이별을 이야기하던 장면 말이다.


  서로를 알아가며 꿈을 이야기하고, 서로 응원해주며 마음이 깊어지고, 더 나아가 서로에게 사랑만큼 중요한 여러 영향을 주던 그들이 각자의 꿈을 좇다 이전과는 다른 현실에 부딪히게 된다. 연기자를 꿈꾸던 미아는 오디션 합격으로 파리로 떠나야 되는 상황이 된다. 낮의 그린피스 천문대 공원에 앉아서 그들은 서로에게 묻는다. 우린 이제 어떻게 되는 거냐고. 서로 갈길 가는 거고,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자고 덤덤하게 대답한다. 세바스찬을 지긋이 바라보던 미아는 “난 언제나 널 사랑할거야”라고 말한다. 세바스찬은 본인도 그럴 거라 대답하고 서로 미소를 지어 보이고 그 장면은 그렇게 끝난다. 낮에 공원 벤치에 앉아 잠재적인 이별을 하는 그들의 대화, 그런 이별을 앞둔 대화 속에서 하는 말이 언제나 사랑할거야 라니. 그 장면을 시작으로 영화가 끝날 때까지 눈물이 났었다. 상영 중일 때 영화관에서만 3번을 봤는데, 그 장면에서 대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그들의 모습이 비치기 시작하면 금세 눈물이 고이곤 했었다. 그 당시의 나에게 너무나 필요한 답을 던져줘서 놀래서 운 걸 수도 있다.


  연기가 자욱한 듯 침침한 카페에서 그가 왜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는지 난 아직도 모르고 그 본인은 기억할련 지도 모르겠다. 간결하지만 공간을 아우르는 디자인이 담긴 그의 가구가 인상 깊었었는데 그는 전공과 다른 음악의 길로 가게 되면서, 어떻게 보면 우리는 그러면서 친해졌다. 단지 어색하지 않기 위해서, 혹시나 있을 침묵이 싫어서 떠들다 보니 그런 이야기들까지 나온 건지도 모르겠다. 마주 보고 앉은 카페에서 그는 꿈이 되기 전까지의 작은 소망부터 본인의 신념,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을 이야기하며 그전에 알고 지낸 8개월을 완전 새로고침 시켰다. 이 새로운 사람은 내가 원래 알던 사람보다 훨씬 더 당당했고 성실했고 이전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그의 꿈은 신념인 동시에 강점이었으나 나에게 내 꿈은 약점이었다. 글이라는 꿈은 나에게 아마 평생에 있을 제일 순수한 꿈이었다. 내 안에 깊숙한 곳, 작지만 언젠가 이룰 거라는 막연함만 있는. 오래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리한 꿈이지만 마지막으로 이룰 거 같다고 생각했던, 어쩌면 제일 중요한 꿈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너무 여린 꿈이라 누가 비웃기라도 하면 상처받을까봐 꽁꽁 숨겨뒀었는데 그에겐 내보여도 괜찮을 거 같았다. 그는 비웃지 않고 그의 꿈만큼 소중히 다뤄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우리 자리에만 투명막이 씐 듯 웅성웅성하는 잡음이 가득한 그 카페에서 나는, 글을 쓸 거예요라고 그에게 말했다. 카페의 이름처럼 그때의 그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흘러갔다.


  “좋아해”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했을 때 그 마음이 더 커지듯, 그는 내가 글을 좋아하도록 시작할 용기를 주었고, 그 용기로 나는 글을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용기가 생기고 마음이 커질수록 아이러니하게 두려움도 같이 커지는 나의 천성은 그대로였으니. 꿈을 품은 모습이 당당하고 매력적이었던 그와 달리 난 들뜨면서도 한 번씩 망설여졌고 자신 없어했다. 홀로 하는 싸움에 외로울 때 그의 말 한마디에 난 누구보다 강해졌고 어려움에 맞설 에너지가 생겼었다. 단지 그의 말이었기에. 현실에 지치고 자신의 재능에 의심을 품기 시작하던 미아는 세바스찬의 말 한마디에 단독 연극을 한다. 본인이 자기를 못 믿을 때 의미 있는 사람이 주는 응원의 힘. 곧 믿음의 힘이다. 믿음이라는 건 사랑이라는 얼굴의 한 표정일 수도 있다.


  언젠가 새벽 3시에 그가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서영이 너는 내가 잘됐으면 하는 사람 중에 하나야. 너를 떠올렸을 때 내 생각은 이게 제일 많았던 거 같아, 진짜 응원하고. 응원하고 아끼는. 내가 너무 아끼는 사람이지. 그냥 너 하는 거 진짜 잘했으면 좋겠고. 응원해주는 사람.”
  나는 ‘가치’라는 말을 좋아해서 내 감정이 힘든 쪽으로 소비돼도 가치를 운운했고 그와의 시간을 ‘가치 있다’고 해왔었는데, 그는 내가 말하는 ‘가치’랑 그가 말하는 ‘응원’은 일맥상통한다고까지 덧붙였었다. 끝이 두려워 시작도 못하는 관계라고 단정하기에는, 나에게는 모 아니면 도의 문제보다 더 가치 있는 관계가 이런 거였다. 결국 난 나를 알아줄, 내 글을 알아줄 단 한 사람이 필요했던 거고, 그 한 사람의 말은 큰 힘을 갖고 있었다. 내가 힘을 받고 위로를 받는 만큼 그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의 좋은 일을 함께 기뻐하고, 나쁜 일 있을 때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서로 응원하는 존재로 일단 성장하고 싶었다. “언제나 사랑할거야”라는 말은 “언제나 응원할거야”라는 말과도 같다. 그가 날 응원하듯 내가 그의 꿈을 응원하고, 그의 꿈이 곧 내 꿈이 된다. 그렇게 그는 나의 글이 되고 나는 그의 노래가 되길 꿈꾸던 날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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