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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영 Oct 30. 2022

따로 또 같이

샌프란시스코 5

  여행에서 숙소를 정할 때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숙소가 얼마나 청결한지, 조식은 어떻게 준비되는지, 교통이 얼마나 편리한 곳인지, 이러한 것들도 중요하지만 호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처럼 공용으로 사용하는 공간들이 있는 숙소의 경우 휴식 공간이 나에게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휴게실이 따로 있는 경우에는 보통 저녁을 먹은 후, 혹은 하루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여행객들이 그 공간에서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거기서 하루 정리를 하기도 하고, 숙소로 돌아오며 사온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낯선 여행자들과 서로의 하루를 공유하기도, 우연히 알게 된 맛집을 서로 추천해주기도 한다. 내가 보고 느낀 것도 중요하지만 낯선 이의 경험은 나에게 또 다른 여행을 선사해 주기도 했다.


  2012년에 처음으로 혼자 가는 여행을 파리로 가게 됐다. 혼자이기 때문에 누군가와 소통이 필요할 거 같아서 처음으로 게스트하우스를 가게 됐다. 중심지에서 가까운 숙소를 나름 힘들게 찾아냈는데, 며칠 지낸 그 숙소에서 급하게 공사를 하게 돼서 다른 숙소를 알아봐야 했다. 중심지와 가까운 숙소를 두고 난 중심지에서 30분이나 떨어진 동네에 있는 숙소로 옮겨야 했다. 기존에 있던 숙소는 거실도 휴게실도 따로 없었는데 중심지에서 30분 떨어져 있는 그 숙소에는 거실 겸 다이닝룸이 있었고 지하실 전체는 휴게실로 꾸며져 있었다. 저녁을 먹고 방에서 좀 쉬다가 그 지하실로 내려가면 다음 날 일정을 정리하는 사람도 있고, 오늘 다녀온 곳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날은 다 각자 사 온 술을 갖고 내려와 모여서 새벽까지 술자리가 이어지기도 했다. 그런 자리에서 남은 일정을 공유하다가 다른 일행과 같이 여행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한 시간 이상 걸려서 가야 하는 베르사유 궁전을 혼자 가기 싫어서 미루고 미루다가 그 지하 휴게실에서 알게 된 친구와 함께 가게 됐다. 파리에서의 시간을 하루 남겨두고 마지막 일정으로 가게 됐는데, 언제든 꺼내보고 싶은 그런 특별한 하루를 보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모든 휴게실이 꼭 그런 소통의 장이 되는 건 아니다. 그렇게 시끌벅적하고 쾌활한 분위기의 휴게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분위기도 많다. 샌프란시스코 숙소의 휴게실은 정말 휴식을 취하기 위한, 차분히 하루를 돌아보고 내일을 다시 계획하기에 좋은 조용한 분위기의 휴게실이었다. 그 분위기도 나름 매력 있어서 좋다. 오늘 다녀온 곳에 대한 일기도 쓰고, 가고 싶은 곳들의 리스트를 다시 훑어보며 내일에 대한 설렘을 키우기도 하고, 낭만 없이 남은 여행비용을 계산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의 마무리를 하다가 한 번씩 휴게실을 둘러보게 된다. 소파에 엉덩이를 앞으로 빼고 편안히 앉아서 무릎에 얹은 노트에 뭔가를 끄적이는 사람도 있고, 노트북으로 바쁜 업무 처리하는 듯한 사람도 있다. 친구와 조용히 속삭이며 하루를 되돌아보는 사람도 있고, 이어폰으로 음악 감상과 함께 맥주 홀짝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도 있다. 한 공간에 모여 각자의 시간을 갖는, 그런 공간의 분위기가 좋다. ‘따로 또 같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그 말을 대변해주는 공간으로 볼 수 있겠다. 적당한 자리 하나 차지하고 앉아서 하루 동안 찍은 사진들과 남겨놓은 메모들을 정리하다가 괜히 한번 휴게실을 둘러보며 사람 구경을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렇게 둘러보다 보면 낯선 이와 눈이 마주치게 되고 그러면 미소를 띠며 눈으로 ‘굿 이브닝’ 인사하는 다정한 이도 있고, 손에 들고 있는 맥주를 살짝 들어 올리며 ‘치얼스’ 인사하는 친근한 이도 있다. 그렇게 낯선 이들과 따로 또 같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내 여행의 또 다른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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