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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영 Oct 30. 2022

Tell me your story

샌프란시스코 6

  미술관을 갔다가 기념품샵에서 판매하는 책을 한 권 샀다. 샌프란시스코에 대한,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짤막한 글들과 함께 일러스트 그림으로 가득 꾸며진 책이다. 그림체도 예쁘고 상징적인 책이라 기념품으로 샀는데, 작가의 머리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이 책은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졌다. 드로잉은 내가 그렸지만 글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살고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각각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대화와 관찰을 통해 그 사람들을 알고 그 장소, 역사를 알기 위해서 나는 24시간에서 4주 동안 어디에서든 머물렀다. 모든 것을 그리면서 난 깨달았다: 가끔은 사진을 보며 작업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일상생활을 보며 그렸다. 그 장소에서 그림 그리는 것은 내가 그러지 않았다면 못 보고 지나쳤을 것들을 알아차리게 했고, 거기서 그림 그리고 있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을 소개해주곤 했다. 사람들은 종종 동네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낯선 이로부터 방해를 받는다. 하지만 누군가가 길 모퉁이에 서서 종이 뭉치 위에 펜으로 그림 그리고 있는 것을 보면 멈춰 선다. 그들은 내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었고 그렇게 대화는 시작된다. 각자의 이야기로 나와 대화를 나눈 스무 명에서 서른 명 되는 사람들은 각자 다른 그들의 소속을 대표하는 하나의 목소리로 결합된다.”


  이런 머리말을 읽고 있으니 내 핸드폰 배경화면을 한번 켜서 보게 됐다. 오랜 시간 동안 내 핸드폰 배경화면을 차지하고 있는 사진이 있다. 폰을 새로 바꿔도 결국 배경화면으로 설정되는 사진. 인도(人道)의 모퉁이 맨바닥에 마주 보고 앉은 남녀는 대화를 나누고 있고, 그들 사이에는 박스 뚜껑으로 만들어진 안내판이 있다. 그 안내판에는 매직으로 투박하게 이런 글이 쓰여 있다.


  “Tell me your story. I’ll give you $1.”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 내가 너에게 1달러를 줄게’. 무언가를 팔 듯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남자는 ‘나의 이야기를 팔게’가 아닌 ‘너의 이야기를 살게’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앉아 있는 것이다. 이 사진을 어떻게 접해서 저장하게 됐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출처를 알 수 있다면 원본을 받아서 액자로 두고 싶은 사진이다. 그 정도로 내 마음에 무언가가 깊이 와닿고, 더 나아가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한 사진 같다고나 할까. 언젠가 나도 꼭 하고 싶은 모습까지 그 사진이 담고 있다.


  낯선 이의 이야기. 어쩌면 그게 여행에서 자연스레 따라오는 요소 중 하나라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주변이의 이야기도 좋지만 낯선 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나의 익숙함에서 벗어난 이야기가 많기에 더 새롭고 흥미로운 경우들이 있다. 그런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고. 하지만 그 이야기 끝에는 결국 우리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이야기를 나누는 건 결국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서로의 이야기를 계속 나누길 원하는 것은 다른 이를 통해 나의 이야기를 새롭게 깨닫게 돼서 아닐까. 그런 이야기들이 평범한 듯 하지만 결국 제일 중요해서가 아닐까.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결국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고 위로를 주고 용기를 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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