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4
부모님 품에서 떠나 나의 첫 사회생활(?)은 kindergarten(유치원)이었다. 그곳에서 배운 모든 것은 ‘다름’을 바탕으로 시작되었다. 피부색이 다르고 생김새도 다 다른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며 서로의 그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모든 배움은 시작됐다. 미국이라는 환경이다 보니 다양한 인종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갖는 걸 중요시했다. 그 안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이라 여기지 않는 가르침을 배웠다. 그렇게 나도 틀리지 않은 내 생각들을 마음껏 표현하며 존중받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그 전과 많이 다른 생활을 보냈다. 틀린 게 투성인 생활이었다. 시험만 보면 틀렸다는 표시가 반 이상인 시험지를 받는 건 일상이었고, 친구들은 매번 나를 다르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눈초리로 틀렸다고 눈치를 주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어시간이 제일 싫었다. 영어시간만 되면 미국에서 전학 왔다는 이유로 선생님은 매번 발표를 시키셨다. 본문을 큰 소리로 읽게 하시고는 이게 맞는 발음이라고 선생님은 칭찬하시는 듯했지만, 수업이 끝나면 몇몇 친구들이 옆으로 와서는 잘난 척한다고 비난했고 손가락질을 했다. 한국말이 서툴 뿐이지 다 알아듣는데, 한 번은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한 친구에게 화를 냈다. 하지만 내가 화를 내도 영어 아니면 말할 수가 없으니, 화냈다가 진짜 잘난 척하는 재수 없는 애가 되고 말았었다. 나는 그냥 나의 있는 그대로로, 지금까지 해온 대로 하는데 친구들이 놀리니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고,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게 돼버렸다.
‘아, 한국에서는 다른 게 곧 틀린 거구나. 틀리면 존중받을 수 없구나.’
지금은 어린 초등학생이 뭘 알았겠냐고 이해한다마는, 그 어린 나이에 나에겐 너무 충격적이고 큰 상처가 되었다. 다르다는 이유로 외면을 당하다니, 심지어 피부색도 머리색도 다 같은 친구들 사이에서. 생각지도 못한 처음 겪는 일이었다. 반 친구들에서 시작되어 결국은 한국이라는 곳까지 원망하며 지냈다.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라는 표현이 맞다고 가르치지만 현실에 다른 건 없었다. 매번 틀렸다는 거뿐이었고 그 소리가 지겨워졌다. 소외돼 본 적이 없던 나는 내 생각을 굳이 내보이면서 틀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그중 선한 마음으로 다가오는 친구들도 있었고, 더 챙기고 어울리게 하려고 노력하는 고마운 친구들도 있었다. (영아야 고마워, 현수야 고마워, 사라야 고마워). 친한 친구들이 생기면서 나는 외면당하지 않으려고 금세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다. 전학 온 해에는 손가락질받았지만, 그다음 해에는 반장 선거까지 나갔으니, 말 다 했지. (반장은 사라가 됐다).
한국으로 들어간 후 15년 만이다. 그동안 틀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아왔다. 그렇게 시작된 내 10대의 시간은 많이 예민했고 부정적이었다. 대학 입시가 제일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 나라의 교육을 알게 됐고 살아남으려고 노력하느라 많이 힘들었지만 옳은 인생 루트라고 부르는 길을 한 단계씩 밟아왔다. 그 옳은 인생은 일단 고등학교를 졸업해 대학교를 입학하고, 대학교를 졸업하면 취직을 해야 한다. 더 나아가 재능이 아닌 수입을 능력이라 불렀고, 최대한 빨리 자리를 잡아 결혼하는 걸 성공이라 불렀다. 꿈이 무엇이든 간에 일단 이 루트를 밟는 게 성공으로 가는 길인 거고 제일 중요한 거다. 마음속 꿈과 멀어지는 길이라고 해도 상관없고 행복하지도 않아도 어쨌든 그건 성공이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현실이다. 난 다행히 내가 꿈꾸던 꿈의 직장에 들어갔었다. 그리고 오랜 고민 끝에 결국 나와서 그렇게 잠시 멈춰 있는 요즘. 다음 행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위해 멈춰 있는 요즘이다. 조급해하지 말고 느리더라도 정확한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지금도 누군가는 날 틀렸다고, 다시 올바른 길로 가라고 다그친다. 하지만 이제는 그 틀렸다는 핀잔에 주눅 들고 소심해지지 않으려고 한다. 더 이상 다르다는 이유로 불안해하고 싶지도 않다. 애초에 모든 인생은 다르게 시작되어 다양한 루트로 뻗어나가는 것일 텐데. 그 누가 섣불리 판단해서 함부로 틀렸다고 하는 말에 좌지우지될 필요가 없다. 틀렸다는 시선보다는 다르다는 시선이 중요하다고 처음 배운 곳에서, 난 다르더라도 존중받고 싶은 마음을 지키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