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5
숙소에서 제일 가까운 지하철역은 코플리 역이다. 호텔 건물을 나와 길 하나 건너면 보스턴 공립 도서관이었고, 도서관 정문을 지나 모서리를 돌면 코플리역의 출구가 있다. 하지만 난 지하철을 이용 시 코플리역으로는 한 번밖에 안 갔고 다음 역인 하인즈 컨벤션 센터역으로 갔다. 하루 계획을 마치고 돌아올 때도 2분 거리의 코플리역에서 안 내리고 하인즈 컨벤션 센터역에서 내려 숙소까지 10분이 넘게 걸어왔다. 코플리역에서 내리면 각종 학회와 행사로 컨벤션에 참석하기 위해 넥타이를 맨 사람들이 주로 보인다면, 하인즈 컨벤션 센터역에서는 책을 들고 백팩을 멘 사람들, 혹은 기타를 메고 팔에 악보를 한가득 끼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인즈 컨벤션 센터역을 나오면 큰길 건너에 버클리 음대가 정면에 있다.
대학교 4학년 때 힙합 동아리로 활동을 했었다. 고등학교 때 시험 끝나고 친구들과 노래방 가면 랩 파트를 종종 맡고, 그저 즐겨 듣는 정도였지 난 힙합에 있어서 힙합의 ‘ㅎ’도 몰랐다. 그냥 마음에 드는 노래를 듣는 거지, 힙합이라는 장르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힙합 음악을 하겠다는 동기와 뒤늦게 친해지면서 그 친구와 함께 작업하던 타과 선배가 만든 힙합 동아리를 들어가게 됐다. 난 힙합에 대해 아는 건 없지만, 특별한 우연 몇 번으로 동아리장이었던 그 타과 선배와도 친해졌고 동아리 활동을 같이 하지 않겠냐는 그의 제안에 들어가게 된 거다. 내게 맡겨진 부분은 공연 촬영과 sns 홍보였다. 실질적으로 하는 건 회의 같이 하고, 공연할 때 같이 다니면서 영상과 사진 자료를 남기고, 저녁을 같이 먹고 뒤풀이를 같이 하며 동아리라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시간을 나누는 것. 특정 공동체 안에 있다 보니 난 애정이 많이 생겼었는데 힙합에 대한 기본 지식도 없고, 노래도 많이 모른다며 내가 같이 활동하는 걸 못마땅해하고 있던 허세 가득한 어린 동아리원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비딱함과 상관없이 어찌 됐든 내 역할은 분명하게 있었다. 그들과 함께 즐기며 응원하는 것. 힙합 지식을 바탕으로 서로를 평가하려고 모인 곳이 아니라 즐겁게 무언가를 함께 하려고 모인 곳이었고 그 시간들은 꽤나 값졌다. 음악의 한 장르로 모인 곳에서 새로운 문화를 배우며 그들의 열정을 가까이에서 보는 건 생각보다 강한 에너지가, 좋은 영향력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지는 일이었다.
그때 같이 동아리 활동했던 사람들은 현재 다 각자의 시간으로, 각자 나름의 길로 흩어져 있지만 그중에서 내 동기와 동아리장 선배는 내 가까운 지인으로 지내고 있다. 지인이라 부르기엔 서운 할 만큼 이제는 나와 너무나도 가까운 친구들이다. 그들은 그때보다 더 열심히 현실에 맞서며 한결같이 그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있다. 음악도 결과물이 나오는데 시간이 걸리고, 그 시간을 통과하는 게 생각보다 힘겨운 일이라는 걸 글 쓰는 입장이 돼보니 알게 되었다. 금방 툭하고 내놓을 수 없는 결과물에, 길어지는 과정의 시간에 마음이 조급해지고 욕심으로 인해 혼자 지쳐서 나태해질 때면 그 둘을 보며 내 열정을 다시 불태운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그랬듯이 그들도 나를 응원할 때면 그 응원이 부끄럽지 않도록 글을 이어나갈 의욕이, 다시 그 외로운 시간에 맞설 힘이 생긴다.
지하철을 탄 첫날 이후로는 항상 하인즈 컨벤션 센터역을 이용했다. 역에서 나와 길 건너에 버클리 음대를 두고 신호가 5번 바뀔 때까지 길을 건너지 않고 멈춰 서 있다 오기도 했었다. 그냥 잠시 서서 아직 불 꺼지지 않는 창문도 바라보고, 건물을 나오고 들어가는 사람들도 구경했다. 그 사람들은 길을 건너 역으로 내려가고, 역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다시 학교로 들어가고. 음대 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대학교 시절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그 동아리의 시간들이 떠올랐다. 활력 넘치고 용기가 솟던 내가 존재했던 그 시간. 보스턴에서 거의 매일 저녁, 깜빡이는 신호에 길을 건너올 때면 예전의 나를 다시 끌어내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