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쿠키는 주문 건의 대부분이 택배 발송이다. 쿠키에는 버터와 설탕이 들어가서 온도변화에 강한 편이긴 하지만, 택배로 꼬박 하루 이상 이동해야 하니 혹시 문제가 생길까 봐 아무래도 불안했다. 한동안 보냉백과 아이스팩으로 포장하여 보냈지만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배송되는 동안 문제가 없을지 문의를 주시는 고객님들도 계셨다.
판매하는 입장에서도 구매하는 입장에서도 불안하다면 어쩔 수 없었다. 결국 가장 더운 기간, 여름휴가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오픈 3개월 만의 휴가였고 보름은 매우 긴 시간이었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고, 없으면 더 갖고 싶은 법이다.
“안 파니까 더 먹고 싶어!”
쿠키를 팔지 않으니 쿠키가 더 먹고 싶어졌다는 지인들이 속출했다. 처음에는 그 말에 웃기만 하다가, 가게로 찾아가면 쿠키를 먹을 수 있냐고 진지하게 물어보는 친구들이 있어서 생각을 달리 했다. 약속이 있을 때 따로 주문 요청이 들어오면 만나는 김에 직접 배달해주고는 했다.
한번은 얼른 쿠키가 먹고 싶다는 친구에게 서로의 동선이 겹치는 적당한 지역을 정해 007 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지하철역 보관함에 쿠키를 넣어 두고, 친구가 곧 찾아가서 무사히 쿠키를 전달할 수 있었다. 미션 성공! 우리도 우리지만 이 과정을 지켜본 친구들도 즐거워했다.
재정비의 시간 동안 파티셰는 판매용이 아닌 메뉴들을 계속 구워냈다. 쿠키는 질리도록 먹어왔기에, 그 외에 스콘, 머핀, 그래놀라 등등이 우리집 식구들의 입으로 들어갔다. 이때 제대로 느낀 점이 있다. 쿠키 가게를 해서 좋은 점은, 성능 빵빵한 오븐을 백방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전에, 식구들만을 위한 비밀 메뉴도 하나 있었다.
생일 때만 먹을 수 있는 메뉴, 바로 블루베리 머핀이다. 우리 가족은 1년에 딱 네 번 블루베리머핀을 먹는다. 식구들 생일에만 굽는 엄마의 특별메뉴다.(엄마 본인 생일에도 굽는다.) 소보로처럼 바삭한 뚜껑 아래에 포슬포슬한 빵이 자리하고, 이를 가르면 촉촉상큼달달한 블루베리가 드러나는데 비주얼도 맛도 일품이다.
여름휴가 이후 스콘이야말로 심심하면 구워 먹는 주식이 되어버렸다. 방금 구운 스콘 가운데에 버터와 딸기잼을 발라 먹으면 감격에 겨워 이목구비가 확장된다. 이것이야말로 쿠키수저의 특권이다.
이처럼 비매용 메뉴를 열심히 만들어낸 여름휴가는 신메뉴 하나를 탄생시키며 멋지게 끝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9월 추석 연휴였다. 부지런히 송편, 과일을 사 오고 전도 부치고 종일 명절 준비를 하던 엄마가 저녁이 다 되어 집에서 후다닥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엄마 어디 가?”
“차례상에 올릴 쿠키 구우러.”
명절마다 우리 집 파티셰가 꼭 하는 일이다. 쿠키가게를 시작하기로 결심한 그때부터 명절 차례상에 꼬박꼬박 쿠키를 올려 왔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맛보지 못했으니 드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 추석에도 쿠키 올린 상 너머로 절을 올리며, 잘 되게 해달라고 어리광도 부렸다.
누군가에게는 일과 일상이 구분되지 않는 것이 심한 스트레스일 것이다. 과거의 내가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이러한 부분에서 엄마를 걱정하기도 했다. 모 유명 셰프는 집에서 요리하기 싫어한다던데. 다행히 아직 우리집 파티셰는 일과 일상의 경계가 모호한 채로 즐기는듯 하다. 그래서 확장해 보면 엄마에게 가족도 고객이고 고객도 가족인 것이다. 항상 같은 컨디션으로 곱게 구워 나오는 쿠키가 말해준다.
이번 주말에도 여러 이유로 팽팽 돌아가고 있는 열혈사원 오븐에게도 일부 감사를 전한다. 그리하여 휴가에도 휴일에도 쿠키집 공기는 언제나 훈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