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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Jan 05. 2024

우리에겐 더 많은 성공담이 필요하다

지금은 잘 들어가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맘카페를 밥먹듯이 드나들었다. 임신을 알게 되면서부터 아이가 네 살이 될 때까지, 초보 엄마에게 맘카페 정보는 그야말로 백과사전과도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태어나서 두돌 까지 정도만 맘카페발 정보가 제법 유용했고, 그 이후로는 솔직히 매번 올라오는 시시콜콜한 글의 재미에 중독이 돼서 자주 들어갔던 게 사실이다.


맘카페에 자주 들어가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가장 '핫'한 주제는 바로 워킹맘과 전업맘의 대결구도다. 개인적으론 이게 무슨 인종이나 성별같은 절대적인 기준도 아니고, 워킹맘이었다가 일을 그만둘 수도 있고 전업맘이었다가 취업을 하는 경우도 많아서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한데, 아무튼 맘카페에서는 (누가 갈라치기를 의도적으로 하는 건가 의심이 들 정도로) 매일같이 이런 글들이 올라오고 댓글도 엄청나게 많이 달린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유자녀 가정의 맞벌이 비중은 약 50% 내외라고 한다. 정확하게 절반인 것이다. 예전처럼 맞벌이 20%에 태반이 외벌이 가정이거나, 아니면 아예 서구 사회처럼 80%가 맞벌이라든지 한 쪽으로 '대세'가 확실하게 정해진 상태라면 모르겠는데, 2020년대의 한국은 아직까지 워킹맘과 전업맘 어느 쪽도 '대세'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하게 반반인 만큼 갈등도 많은 것 같다.


아무튼 워킹맘과 전업맘의 육아를 논의하는 글에는 항상 나오는 레퍼토리가 있다. "워킹맘은 돈 번다고 아이들을 일찍부터 기관에 보내고, 퇴근해서 아이 보는 시간도 몇 시간 안 되는데, 아무래도 아이들이 방치가 되니 문제가 있는 애들도 많아 좋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반박하는 글들도 많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워킹맘들은 알게 모르게 이런 시선과 말들을 들으면서 '셀프 가스라이팅'이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사진출처: pexels


요즘도 육아휴직이 되지 않아 출산휴가 90일이 끝나면 바로 복직을 해야 하는 경우가 제법 있긴 하지만, 육아휴직 1년을 다 쓰고 가정보육을 한다는 전제하에서는 사실 워킹맘이나 전업맘이나 실질적으로 기관에 보내는 시기가 크게 차이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앞선 글에서 얘기했듯이 우리 집의 경우는 부모가 각각 1년씩 휴직을 내 두 돌까지 꽉 채워 가정보육을 했는데, 돌이 지나니 주변 또래 아이를 둔 부모님들(맞벌이든 외벌이든)이 왜 어린이집을 안 보내냐고 '별종' 취급을 하는 얘기들을 제법 들었기 때문이다. 주변을 돌아보니 대부분의 아이들은 12~18개월 사이에 몇 시간이든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어린이집은 필수 교육기관이 아니라는 생각이지만, 각 가정의 육아관 차이의 문제니 넘어가기로 하자. 아무튼 우리 집의 경우 운이 좋게도 부부 모두 육아휴직을 낼 수 있었기에 적어도 요즘 시대 기준으로 아주 빠르게 아이를 기관에 보낸 편은 아니긴 하다.


워킹맘의 육아가 '망할 수밖에 없다'는 선입견에는 가장 큰 맹점이 있다. 바로 육아의 주체가 오로지 '엄마' 밖에 없다는 착각이다. 시대가 빠르게 변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육아의 주체를 엄마(여자)에 국한해서 보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가 전업으로 육아를 하면 그나마 '합격'이지만, 일을 하면 감히 그깟 돈 몇푼에 자기 아이를 내팽개치는 모진 엄마가 되는 것이다. 물론 아빠에 대해서는 아무런 평가도 매겨지지 않는다.

물론 우리 윗세대 워킹맘들은 대부분 '육아는 엄마가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 속에서 홀로 오롯이 일과 육아를 담당하느라 힘든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 세대는 그때보다는 공동육아의 개념이 많이 확산됐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아이는 아빠와 아빠의 직장 동료들의 자녀들(즉 보호자들도 모두 아빠들이다)과 함께 키즈카페에 갔다. 나는 컨디션이 좋지 못해 함께하지 못하고 대신 오랜만에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 이제는 외출을 해도 아빠가 아이를 단독으로 챙기는 가정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평일 낮에 열린 유치원 설명회에도 우리 남편을 비롯한 아빠들이 제법 와 있었다. 시대는 이미 빠르게 변했고, 많은 아빠들이 육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려 하는데 육아의 주체를 엄마로만 제한하는 낡은 고정관념은 육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려는 아빠들도 소외시킨다.


실제로 내 주변에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아이의 주양육자로서 책임감을 갖고 정서적, 발달적, 건강적 측면을 모두 잘 보살피는 엄마들이 많다. 맘카페와 주변의 말을 듣고 내 육아가 정말 잘못된 건가, 내 아이는 결국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을까 걱정이 될 때는 의도적으로 '워킹맘의 성공사례'를 찾아 봤다. 일을 하면서 만나는 분들 중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우신 워킹맘들을 만나면서 힘을 얻었다. 다행히도 대부분 아이들이 별 탈 없이 잘 자라고 있었다. 비단 학업적인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부모와의 관계, 정서적 건강적 상황을 모두 말한다. 직업상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 어렵거나 주변에 워킹맘 동료가 없다면, 온라인도 좋은 창구가 된다. 내 아이보다  연령대가 있는 자녀를 둔 워킹맘의 사례를 주기적으로 찾아보면서 참고를 하고, 자극을 받기도 한다.

이제는 맘카페의 '워킹맘 아이는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글을 찾아보며 상처를 받지 않는다. 커뮤니티에 발을 끊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주변과 온라인의 성공적으로 육아를 하면서 커리어를 지켜낸 사례를 찾아본다.


부부가 함께 동등하게 아이에게 관심을 갖고 챙긴다면 아이는 엄마가 일을 한다는 이유로 잘못될 수 없다. 나 역시 누구보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고, 인생의 어떤 가치관보다 아이가 소중한 한 엄마이니만큼 일을 그만두는 것이 맞을까 수도 없이 고민했었다. 물론 여러 가지 상황과 아이의 기질적 이유 등으로 경력을 접고 육아에 전념하는 어머니들은 그만큼 또 가치있는 선택을 하셨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어떤 선택이든 아이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일하는 엄마의 아이는 결손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가치관이 최근의 저출산 시국을 부추기는 데 영향을 줬다고도 생각한다. 우리 세대의 젊은 여성들은 대다수가 결혼과 임신출산으로 자신이 힘들게 가꿔 온 커리어를 내려놓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결국 아이를 낳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올 초 대학 동아리 동문 모임에 갔는데, 그 자리에 있던 내 또래 30대 후반~40대 초반 여성들 중 아이가 있는 여자는 나밖에 없었다. 남자들은 대부분 자녀가 있었는데 말이다. 30대 후반의 기혼 무자녀 여성이었던 이들은 아이를 낳았을 때 커리어와 육아 중 한 쪽을 선택해야 하게 될까봐 두렵다고 했다. 모두들 국내 주요 기업에서 일하는 인재들이다.


당연히 육아는 힘들다. 특히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건 정말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디어에서 다소 이런 이미지를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번 브런치북을 연재하기 전 '워킹맘의 육아'를 주제로 이미 나온 책이 있는지 검색해봤다. 생각보다 몇 권 없는데다, 있다 해도 아이와 일 사이에서 힘들게 땀을 뻘뻘 흘리며 어쩔 줄 몰라하고 괴로워하는 이미지들이 태반이었다. 성공적으로 일과 육아를 모두 해낸 사례는 '책으로조차도' 찾기 어려웠던 것이다. 물론 절대적인 수가 적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금 우리는 그 소수의 사례라도 찾아서 부각시켜야 하는 시대가 아닐까 싶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성공담이 필요하다. 물론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녹록치 않은 현실에 대한 지적과 비판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례와 롤모델도 함께 제시되길 바란다. 그리고 육아는 더 이상 엄마와 할머니만 희생하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빠를 비롯한 다른 가족 구성원들도 함께한다는 인식을 다시 세워야 한다. 어차피 우리가 자랄때만 해도 대가족이나 이웃이 함께 아이를 키우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어린이집이나 시터가 없더라도 육아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측면이 있었다. 또 아이의 작은 단점조차 모두 '엄마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도 위험하다. 엄마가 일을 해서, 엄마가 신경을 못 써서, 알고 보면 엄마도 '금쪽이' 기질이 있기에 애도 저 모양이라고 손가락질하는 분위기 탓에 요즘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자기검열하다 애 낳지 않는 삶을 선택한다. 이제는 일과 양육 사이에서 홀로 외줄타기를 하다 '경력단절'이라는 정해진 미래를 선택해버리는 '눈물의 워킹맘 현실' 말고, 일과 양육 모두 문제없이 해나가는 가정의 긍정적 사례가 더 많이 공유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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