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고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도 나는 내가 모성애가 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남들은 아이가 웃는 모습만 봐도 피로가 사르르 녹는다는데 나는 여전히 힘들기만 했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도 즐거이 하는 다른 부모들이 부러웠다.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아이에게 성의없이 대꾸하거나 혹은 짜증을 내고 나면 엄청난 죄책감이 몰려왔다. 아이를 낳아놓고 무조건적인 사랑만 줘도 모자를 판에 상처를 주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 괴로웠다. 엄마로서 실격인 것만 같았다.
단순히 엄마로서의 짐을 내려놓고 내 몸이 편해지는 길만을 선택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나는 엄마로서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책임감으로 메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감정으로서의 '모성애'와 이성으로서의 '책임감' 모두를 갖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천성적으로 감성이 부족한 나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아직 어린 아기에게 그걸 기다려달라고만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휴직을 내서 아이 옆에 있어줬다. 휴직 기간 중에는 내내 아이와 한몸처럼 붙어 있으면서 물리적인 시간을 제공했다. 복직을 하고 나서는 나만의 시간을 다소 포기하고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은 대부분 아이와 함께하기로 했다. 육아서를 찾아보고 아이 월령에 맞는 정서적, 발달적 자극을 주려고 노력했다. 지치고 피곤하고 때론 휴식이 간절했지만 천성적인 모성애가 부족한 내가 할 수 있는 이성적인 노력을 최대한으로 하려고 했다.
혹자는 '애정이 부족한 엄마가 아무리 노력하는 척을 해도 아이들은 다 알고 결핍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내 노력은 결국 부질없는 것인가 싶어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