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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Jan 26. 2024

미라클모닝 안 하는 워킹맘의 시간관리법

'시간거지(Time poor)'라는 단어만큼 워킹맘의 일상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가 있을까. 복직을 하고 나서 나는 진짜 글자 그대로 단 1분조차 '아무 것도 안 하는 시간'이 없이 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 임무를 끝내고 나면 다른 임무가 찾아오고 그 뒤에는 또 어마어마한 임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날들이었다. 피로를 풀지 못하고 계속 임무만을 미친듯이 처리하고 나니 매일 잠들 때마다 온 몸이 두들겨맞은 듯이 아팠고 면역력도 약해지니 아이가 감기에 걸리면 나도 돌림노래처럼 아팠다. 당연히 연차를 아껴야 하니 아파도 타이레놀 한 알 먹고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살아서 굉장히 생산성이라도 좋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일과 육아로 끊임없이 교체되는 나의 역할 속에서 무엇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무엇이든 집중해서 하지 못하고 얼렁뚱땅 해치우듯이 해낼 뿐이었다. 그야말로 간신히 버티며 살아가는 날들이었다.


주변에 말해봐야 다들 "워킹맘은 원래 다 그러고 사는 거야"라는 답만 돌아왔다. 원래 그런 거라고? 그러니 그러려니 해야 한다고? 사실 주변 워킹맘들을 봐도 다들 비슷한 상황이기에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나마 희망적이라고 할 만한 소리는 "애 크면 좀 나아져" 정도였다. 그러나 그 기약없는 시기만을 바라보며 이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 수만은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가 크고 나면 나 역시 나이가 들 터. 100세 시대라지만 나에게 남은 시간이 너무 빠듯했다.


아이를 낳고 직장생활을 하면 당연히 바빠질 것은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생을 이렇게 버티듯 꾸역꾸역 나에게 주어진 임무만을 쳐내며 사는 것은 지나치다 싶었다. 정말 방법이 없는 것일까? 아이가 다 자랄 때까지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걸까?



워킹맘의 시간관리법을 검색해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방법은 '미라클 모닝'이다. 새벽 4~5시쯤 가족들이 일어나기 전 미리 기상해 운동과 자기계발 등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이가 일어나서 정신없이 등원준비를 하고 출근을 하기까지도 약 2~3시간의 나만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미라클 모닝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아이가 선천적으로 밤잠이 아주 적다는 것이었다. 돌까지는 아예 뜬눈으로 새우기도 일쑤였고, 두 돌까지는 무려 안아서 둥가둥가해줘야 겨우 잠이 들었다. 세 돌까지는 밤수를 하지 않는데도 신생아마냥 두 시간에 한 번씩 깨서 칭얼거리기도 했다. 세 돌이 넘어서야 비로소 어른처럼 쭉 이어서 '통잠'이라는 것을 자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평균 취침시간이 최소 밤 10시 반이었다. 다른 집은 아이들이 8시, 9시면 잠자리에 든다는데 우리 아이는 그 시간에 억지로 데리고 들어가봐야 책을 20권을 읽어줘도 눈만 말똥말똥해질뿐 소용이 없었다. 사실 잠이 안 오는데 억지로 불 다 끄고 누워 있는 것도 얼마나 고문일지 알기에, 굳이 무리수를 두지 않기로 했다. 암막커튼이고 백색소음이고 가족들 다 누워서 자고 억지로 울리는 수면교육도 다 해봤는데 모든 것이 무쓸모였다. '도대체 왜 수면교육을 안 하는거야?'라고만 따져 묻지 말고, 육아는 원래 아이의 기질 따라 가는 것임을 잠 많은 아이 키우는 부모님들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그리고 부럽다).


아무튼 밤 11시가 다 되어 잠드는 아이를 키우는 내가 4시에 일어나는 미라클 모닝을 하면 하루 5시간만 자게 된다. 선천적으로 잠이 없는 '쇼트 슬리퍼(short sleeper)'라면 몰라도, 나는 하루 7~8시간은 잠을 자 줘야 정상적인 컨디션이 유지가 된다. 실제로 하루 4~5시간만 자도 충분한 쇼트 슬리퍼가 있다고 한다. 나는 안타깝게도(?) 롱 슬리퍼다. 굳이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하루 5시간만 자고 하루 종일 비몽사몽한 상태로 지내며 생산성이 떨어지면 결국 조삼모사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아이를 재운 뒤 '육퇴' 후 자기 시간을 갖기에는 밤 11시에는 나도 너무 졸려서 자야 했다. 이 시간에는 뭘 할 체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른 엄마들의 경험담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단 나의 체질과 생활패턴에 맞는 시간 확보법을 찾기로 했다. 그 결과 깨어 있는 시간 중 틈새시간을 최대한 활용키로 했다.

편도 1시간 반이 넘는 출퇴근 시간, 업무 중 점심 시간, 업무를 끝내고 남는 휴식시간 등이다. 이 시간을 무리하지 않고 생산적으로 활용하면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시간을 비생산적인 것으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의미없이 맘카페와 커뮤니티를 눈팅하면서 올라오는 시시콜콜한 신변잡기 글을 구경하기, 나랑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흥분하고 때론 기분 나빠하기, 유튜브 알고리즘에 올라오는 자극적인 영상들을 생각없이 몇 시간동안 계속 보기, 정보를 얻는다는 핑계로 각종 단톡방에 들어가 하루에도 몇백번씩 올라오는 알람에 정신 뺏기기 등을 하고 있었다. 그런 것들을 하면서 숨을 돌린다고 생각했지만 알게 모르게 더욱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대부분의 콘텐츠가 부정적이고 자극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커뮤니티 관련 앱을 모두 삭제했다. 유튜브 영상은 필요한 것만 검색해서 보기로 했다. 불필요한 단톡방은 모두 정리하고 꼭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알림을 꺼 둔 채 필요할 때만 이용했다. 가뜩이나 정보가 중요한 직업인데, 게다가 아이를 키우려먼 꼭 필요한 정보들도 많은데 혹시 뭔가 중요한 걸 놓치면 어떡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렇게 살아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내가 정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사실상 내 인생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별 것 아닌 시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들을 모두 삶에서 배제하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남았다. 그동안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아무 짓도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쓸데없는 것들만 하지 않아도 나에겐 여전히 많은 시간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남은 시간에는 커뮤니티의 잡담 대신 전자책과 신문을 읽었다. 보다 정제되고 객관화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더 자주 글을 올릴 수 있었다. 워킹맘으로써 블로그와 브런치에 매일같이 콘텐츠를 올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틈새 시간을 이용하니 1일 1포스팅도 꾸준히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정체돼 있던 블로그가 성장했고 소기의 성과들도 달성했다. 점심시간에 업무 미팅이 있는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간단하게 먹고 30분이라도 걷기 운동을 했다. 아이를 낳고 4년동안 운동을 전혀 하지 못해서 건강이 많이 나빠졌는데 틈새시간을 활용함으로써 운동도 할 수 있었다.

또 왠만한 회사 업무는 업무 시간 내에 끝내도록 노력했다. 이 역시 멍하니 습관적으로 바라보던 SNS와 커뮤니티 눈팅을 끊으면서 가능할 수 있었다. 업무를 다 마치지 못한 상태로 집에 귀가하면 아이와 충분히 집중해 놀아주지 못하고 자꾸 머릿속으로는 회사 업무를 걱정하는 상황이 생긴다. 엄마가 퇴근하기만을 기다렸던 아이를 쫓아내고 다시 노트북을 켜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정리하자면 아이가 자는 시간에는 특별한 일이 있는 게 아닌 이상 나도 같이 잠자리에 들었다. 뭔가를 하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그냥 잠을 충분히 자며 컨디션을 극대화하기로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깨어있는 시간을 보다 밀도있게 사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컨디션이 나쁠 때는 깨어 있는 동안이라도 무리하지 않고 모든 계획을 내려놓았다. 충분히 쉬지 못해서 오랫동안 아픈 것보다는 빠르게 회복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물론 내가 한 방법이 모두에게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분할된 시간보다는 새벽 시간 등 일정한 시간에 집중해서 모든 것을 하는 게 나을 수 있다. 요지는 사람마다 가장 적합한 시간관리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별 생각 없이 낭비하고 있는 시간을 찾아내 이를 최소화하는 것이 그 첫번째다. 매 순간 바쁘게 산다고 생각하지만, 매 순간을 효율적으로 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 방법을 찾아내 시간의 노예, 의무의 노예로서 쫓겨 살다 번아웃이 오고 마는 워킹맘의 삶이 아닌 시간의 주인으로서 살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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