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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Feb 09. 20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서를 보는 이유

임신을 막 알게 됐거나 갓 태어난 아기를 키울 때, 부모들은 처음으로 육아서라는 것을 접하게 된다. 그 옛날 전화번호부 같은 노란색 '임신출산육아대백과'라든지, 아니면 '베이비 위스퍼'나 '똑게육아' 같은 수면교육이나 이유식 같은 육아 방법을 알려 주는 책 등등. 또 TV에 나오는 유명한 육아 전문가, 박사, 의사들이 쓴 책을 읽으면서 육아에 대한 다양한 결심을 한다. 미디어를 최대한 늦게 보여 준다든지, 무슨 일이 있어도 모유수유를 한다든지, 아이에게 마음 읽기를 하면서 소통하는 부모가 될 거라든지 등등.


하지만 아이가 자라서 돌이 지나고, 부모들도 육아를 하는 삶이 익숙해지면서 이런 책들은 점점 책꽂이에서 먼지 쌓인 상태로 방치된다.

우선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육아 라이프를 수행하느라 책을 읽을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 전에 육아는 우아한 '이론'으로만 할 수 없다는 걸 체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가 없을 땐 공공장소에서 마구 떼를 쓰는 아이와 어찌할 줄 모르는 부모를 보면서 '제 자식 하나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다니, 저럴 거면 그냥 나오질 말지'라고 속으로 혀를 끌끌 차던 사람들도, 막상 자기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나 역시 별 수 없음을 뼈저리게 실감하는 게 현실이다. 크면 클 수록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육아서 속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전문가들의 조언이 내 아이에게 늘 적용되지 않음을 알고, 점점 책을 멀리하게 된다. 유명 양육 전문가들의 강의를 봐도 '저 전문가들도 결국 자기 아이는 할머니가 키웠을 걸' 하는 냉소적인 반응이 먼저 나온다. 렇게 육아서들은 '당근마켓'에 저렴한 가격으로 올라온다.


나의 경우 임신을 확인하고 나서부터 다양한 육아서와 유아 심리 관련 책들을 찾았다. 여러 번 거듭 찾아보게 되는 책도 있었고, 반쯤 읽다가 도무지 공감이 가지 않아서 중단한 책들도 있었다. 그래도 만 세 돌 전까지는 선택지가 넓었는데, 신기하게도 만 세 돌을 넘으니 우리 아이의 연령대에 맞는 육아서가 갑자기 드물어졌다. 서점에는 아주 어린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육아서 혹은 초등 입학을 앞두고 학습 및 학교생활을 대비하는 책들이 주를 이뤘다. 부모들도 이젠 육아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고, 혹은 육아가 이론대로 되지 않음을 깨닫고 책을 덜 찾게 되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이 때쯤 둘째를 갖는 가정도 많지만 통상 둘째를 키울 땐 첫째 때처럼 책을 찾아보고 이론에 맞춰 육아를 하지는 않는다.



아이가 네 돌이 지났고 드디어 우리 부부가 일거수 일투족을 챙겨주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됐다. 나 역시 임신 전과 아기 신생아 때처럼 육아서에 나오는 이론을 절대적인 진리로 믿고 따르지는 않는다. 육아에는 상상도 못할 만큼 변수가 즐비하며, 부모의 양육방식 이상으로 그 외의 여러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아이의 모든 문제를 전적으로 부모, 그것도 엄마 탓이라고 손가락질하는 분위기에 대해서도 굉장히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육아서를 찾는다. 물론 이제는 육아서가 모두 그대로 적용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육아서를 읽는 것은 여전히 효용이 있다.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크게 소모하는 육아라는 노동을 끊임없이 하면서, 더군다나 일을 병행하면서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몸과 마음이 편한 대로만' 하게 되기 쉽다. 물론 요즘은 육아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내가 편한 것이 최선'이라는 게 대세인 분위기인 듯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언제나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소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나도 모르게 '나의 편안함'을 우선시하게 될 때가 있다. 특히나 천성적으로 사랑이 넘쳐나지 않고 다소 이기적인 내 성향상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 같다. 귀찮고 피곤한데 오늘은 하루 종일 영상을 보여줘도 되지 않을까, 날이 추워서 나가기 싫은데 바깥놀이는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바쁘게 집안일을 하는데 귀찮게 질문을 퍼붓는 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무성의하게 대답을 하게 될 때 말이다. 하지만 육아서를 읽으면서 내가 무심코 했던 행동들이 아이에게는 결코 좋지 않음을 상기하고 조심할 수 있게 된다. 지나친 영상노출이 아이에게 주는 폐해를 보면 2시간 영상 보여줄 것 1시간으로 조절하게 되고, 날씨가 너무 심하게 춥지 않으면 한 번 정도는 바깥놀이를 시켜주고,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고 들어와 피로에 절어 있는 상태라도 아이와 눈을 맞추고 성심성의껏 이야기하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완벽하지 않다.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을 다잡고, 잘 하려고 노력하게 되는 데 의미가 있다.


워킹맘으로서 육아서를 읽을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다. 처음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들고 다니며 읽기도 했는데, 들고 다니기 너무 무거울뿐 아니라 반납 기간에 맞춰 도서관을 방문하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전자책을 이용하고 있다. 전자책 앱을 통해 원하는 책을 구입 후 출퇴근 시간과 이동 시간을 활용해 수시로 읽는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가능하기 때문에 무겁게 책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전자책 앱에는 북마크나 형광펜으로 체크하는 기능도 있어서 새겨두고 싶은 부분은 따로 메모도 가능하다. 최근에는 육아서가 아닌 내가 읽고 싶은 책들도 함께 다운받아서 읽고 있다.


아이는 이론으로 자라지 않지만, 검증된 이론을 아예 배제한 즉흥적인 감정만으로 육아를 하는 것 또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부모가 되면 육아를 할 수 있다지만, 육아를 '잘'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고 상당한 노력이 수반된다. 나 역시 완벽한 엄마는 아니다. 하지만 어제보다 오늘 더 잘 하려고 노력하는 엄마는 되고 싶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도 올바른 표현법을 거쳐야 비로소 아이에게 효과적으로 와닿을 수 있다. 나같은 평범한 엄마로서는 그게 '자연스럽게' 되기 어렵다. 그래서 책 속 수많은 멘토들로부터 건강한 자극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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