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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Apr 19. 2024

부모의 인생과 아이의 행복이 공존 가능하다는 믿음

투자 시장에는 '어제의 저점이 오늘의 고점'이라는 우스갯말이 있다. 땅 깊은 줄 모르고 계속 하락세를 반복하니 어제만 해도 '망했다' 싶었던 가격이 오늘은 '그 때라도 팔걸' 싶을 정도로 추락한다는 뜻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딱 그 상황이 아닐까 싶다. 우리 아이가 태어나던 2020년 초만 해도, 단군 이래 처음으로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며 난리도 아니었는데 0.9명 가량이던 당시의 출산율은 이제 0.6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이유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유가 있다. 딱 '무엇 때문이다'라고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본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선진국에선 비슷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유독 가파른 감소세를 보이는 데도 분명 이유가 있다고 본다.


혹자는 이를 보고 집값이 너무 올라서, 물가가 천정부지라서 외벌이로는 도저히 아이 둘 셋을 낳아 키울 수 없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결혼도 못 하고, 출산도 못 한다고들 한다. 예전처럼 아빠는 사회생활을 하고, 엄마는 앞치마를 메고 집에서 아이들을 돌봐도 문제가 없도록 경제와 고용이 안정돼야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에 앞서 현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정말 이런 삶을 원하십니까? 라고.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해서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길러졌던 청년들에게, 결혼과 임신 출산을 기점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롯이 육아와 가사만을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과연 행복하겠는지 말이다.

내가 알기로 아마 우리 세대, 심지어 현재 결혼적령기를 맞는 나보다 더 젊은 세대의 절대 다수는 그런 삶을 원치 않을 것이다.


나 역시 5년여 전 임신을 확인했을 때 '내 인생은 끝났다'는 두려움에 펑펑 울기도 했었다. 사회는 엄마가 되면, 내 인생은 완전히 삭제하고 오롯이 엄마로서 한없는 희생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겁을 줬다. 그러나 동시에 또 결혼했고, 나이가 찼으니 얼른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압박도 가했다.
그게 말이 되냐고 따져 물으면, "막상 닥치면 다 하게 돼 있어. 아이 웃는 얼굴만 보면 모든 걱정근심이 다 사라질 정도로 얼마나 행복한데"라는 추상적인 답변들만 할 뿐이었다. 누구도 명확하게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는 상황에서 엄마의 삶이란 그저 두렵기만 했다.

사진출처: pexels



물론 아이를 낳고 첫 3년간은 그것이 그저 기우가 아닌 어느정도 사실이라는 걸 확인하는 혹독한 시간이었다. 유독 잠이 없고 예민한 아기였던 우리 아이를 키우면서 못 먹고 못 자고 못 씻고 못 싸는 시간은 그야말로 다시는 돌이키기 힘든 고통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영원하지 않았다. 우리 부부가 가진 시간과 에너지를 최대한 아이에게 내어주기로 다짐했더니 아이는 점점 안정적으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아이가 스스로 할 줄 아는 것들이 늘어나면서 나의 시간도 생기기 시작했다. 많은 선배 부모님들이 말하듯 아이의 유년기는 생각보다 짧고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이 글을 쓰는 아직은 아이가 유치원생이기에, 여전히 부모의 손이 많이 가지만 아기 시절처럼 기본적인 삶을 모조리 포기해야 할 정도는 아니다. 나는 육아 자체로 엄청난 보람과 벅차오르는 행복을 느끼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처음엔 많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끓어오르는 모정이 아니어도 잔잔한 책임감으로도 아이가 잘 자랄수있다는 경험을 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무엇보다 나를 절대적으로 믿고 사랑해주는 존재가 하나더 생겼다는건 엄청난 안정감을 준다.


이 글은 자신의 의지로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글이 아니다. 다만, 출산과 비출산의 기로 앞에서 임신출산으로 인해 부모, 특히 엄마의 인생이 완전히 종료될까봐 망설이는 과거의 나와 같은 분들에게 이런 사례도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보기에 국내 시중에 통용되는 대부분의 육아 관련 콘텐츠는 여전히 엄마가 주양육자로서 혼자 모든 것을 고군분투하며 해나가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서 깔고 이야기한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은 거부감을 느끼고 비출산을 선택하게 되는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부부가 어떻게 육아를 분담하느냐에 따라, 육아를 하는 삶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리고 싶다. 아이를 낳으면 엄마는 당연히 퇴사하고 육아에 전념해야만 아이가 잘 자란다고 믿는 문화, 혹은 맞벌이를 하더라도 결국 엄마가 주양육자로서 모든 책임을 져야 하고 아이가 잘못되면 모조리 엄마 탓으로 돌리는 문화가 잘못됐다는 건 이미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런 것을 비판한다는 명분으로 자꾸 그런 현실만 토로하고, 되풀이하며 확대재생산하는 건 결국 그런 인식을 강화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원래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따르게 되기 마련이며, 주변에서 자주 보고 들은 것을 좋든 싫든 선택하게 되기 때문이다.


막연한 고정관념과는 달리 우리 세대의 많은 부모들은 육아와 경제활동을 분담하며 힘듦과 행복을 나누고 있다. 역시 부부가 공동책임으로 당연스럽게 아이를 위해 시간을 내고 있다. 아이가 아프면 교대로 연차를 쓰고 1년씩 휴직을 내서 아이를 가정보육했다. 물론 너무 긴 근로시간, 아빠 육아휴직이 곧 퇴사를 의미하는 직장이 태반이라는 현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에 앞서 아빠도 주양육자로 육아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보편화돼야 사회 제도와 분위기도 달라질 수 있다.


엄마와 아빠가 모두 일을 하는 형태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새로운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억지로 회귀시키기보다 맞벌이 여부에 상관 없이 아이를 행복하게 키울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일반 대중의 인식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여전히 맞벌이 육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은 맞벌이 가정의 자녀는 결핍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맞벌이 부모는 돈을 택한 대신 아이들의 행복을 저당잡혔다고 여기는 시선이 팽배하고, 아이의 행복과 부모의 삶은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양성 평등에 동의하는 사람들조차 맞벌이를 할 거면 왜 결혼을 해서 고생을 하냐고 딱하게 여기는 분위기까지 있다. 당연히 육아와 가사가 오롯이 엄마의 몫이라고 여기는 전제 하에서 내리는 오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워킹맘들은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결국 타의적으로 일을 내려놓게 된다.   


출산율 0명대 시대에 그 어떤 출산장려정책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인생과 아이의 행복이 공존 가능하다는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의 인생과 아이의 행복이 어느 한 쪽을 영영 포기해야만 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닌 충분히 양립 가능하다는 용기와 긍정적 비전을 줘야 한다. 그래야 젊은 세대들도 다음 세대를 가질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맞벌이지만 아이는 잘 키우고 싶어> 브런치북의 연재는 이 글을 마지막으로 완결합니다.

그동안 정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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