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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Apr 05. 2024

아이가 빈자리를 느끼지 않게 하려고

일적으로 만난 어느 분과 밥을 먹다 워킹맘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분의 어머님 역시 평생 워킹맘으로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셨고, 자녀가 장성해 사회인이 된 지금도 조직에서 현역으로 왕성히 활동을 하시고 계셨다. 여러모로 궁금한 것이 많아져서 나도 모르게 그 분의 성장과정을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일을 하셔서 힘들거나 빈자리가 느껴진 적은 없으셨어요?"

"전혀요. 그러고 보니 지금 생각해 보면 저희 엄만 입학식이나, 운동회 등 부모님이 오셔야 하는 행사에는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을 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크게 빈자리를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어릴 땐 잘 몰랐는데, 제가 사회생활을 해 보니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돼서 엄마한테 감사하더라구요."

"우와, 진짜 대단하시다. 그 시절에는 육아휴직이나 단축근무 같은 것도 전혀 없었을 거잖아요?"

나는 얼굴 한 번 뵌 적 없는 그 분이 진심으로 존경스러워졌다. 나 역시 워킹맘이자 사회인 10여년차로서, 대선배님 시대에 그게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 일인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양육 관련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워라밸'을 중시하는 요즘 시대에도 개인사정을 이유로 회사에 양해를 구할 땐 그렇게 눈치가 보일 수가 없다. 하물며 장성한 자녀를 키운 수십년 전 시대의 워킹맘들이 겪었을 시간이란, 요즘과는 비교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 겨우 유치원생을 키우는 우리 부부도 맞벌이를 한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빈 자리를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물론 아이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를 일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시간을 내려고 할 뿐이다.

새벽에 열이 났거나, 열이 없어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일 땐 있는 연차 없는 연차 다 끌어서 가정보육을 하고, 방학이나 휴원일에도 가정보육을 하고, 부모 참여 수업이나 학부모 상담일에는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기관을 방문한다. 원에서는 다양한 상황의 부모님들을 배려하기 위해 전화상담, 서면상담 등도 가능하다곤 하지만 될 수 있으면 내 아이가 생활하는 공간을 직접 방문하고 선생님과 눈을 맞추며 아이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이어서다. 틈 나는 대로 아이의 하원 후 놀이터 시간에 동행해 친구 부모님들과 안면을 트고, 내 아이가 친구들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지 유심히 보기도 했다. 물론 우리 부부가 평일 시간이 그나마 자유로운 편이어서 가능했던 측면도 크다. 하지만 어쨌거나 일을 하면서 이러한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언제나 돌발 상황이 생길까봐 마음을 졸여야 했고 아이를 위해 연차를 쓰다 보면 정작 나를 위한 시간은 남아있지 않아 내가 아플 땐 제대로 쉬지 못할 때도 많았다.


나 역시 워킹맘이었던 엄마를 둔 만큼 아이들이 언제 일하는 부모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는 지 알고 있다.

어린 시절 우리 엄마는 바쁜 자영업에 종사하시며 외갓집에 나를 맡기고 종일 일을 하셨다. 유달리 예민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엄마 껌딱지'였던 나는 아침마다 할머니에게 가기 싫다며 떼를 쓰고 울었다 한다. 당장 출근해야 하는 엄마가 얼마나 난감했을지 이제 어른이 된 나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엄마는 결국 내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몰래 도망을 가는 전략을 선택했다. 아마도 '배신감'을 느꼈을 나는 몹시도 울어서 할머니를 더 힘들게 했으리라. 세월이 흐르고 흘러 엄마가 된 나는 육아서를 보면서 아침 출근 길에 엄마를 보내기 싫어하는 아이를 두고 절대 몰래 도망가지 말라는 조언을 수 차례 보게 됐다. 우리 엄마의 시대에는 육아 전문가도 딱히 없었던 만큼 그 시절 생계에 쫓기던 엄마를 전혀 원망하진 않는다. 다만 현 시대의 워킹맘인 나는 아이가 "회사 가지 말고 나랑 놀아"라고 할 때 도망가지 않기로 했다.



대체로 등원거부, 분리불안이 크게 없는 편이지만 우리 아이도 간혹 출근하는 나를 붙잡을 때가 있다. 물론 어린날의 나처럼 울고불고하는 성격은 아니기에 마음은 한결 덜 불편하지만, 그래도 아이의 만류를 들으면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우선 아이의 마음을 보듬어주고 꼭 안아준 뒤 아이가 원하는 놀이를 아주 잠깐 함께해 주거나, 그래도 정 회사를 가지 말라고 하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퇴근 후 아이가 원하는 간식을 사 온다든지, 아이가 원하는 놀잇감을 만들어 준다든지. 9시간의 근무시간이 지나고 저녁이 돼 퇴근을 하면, 아이는 가끔은 그 약속을 기억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잊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든 완수하려고 한다. 하루 종일 근무에 지쳐 눈꺼풀이 절로 감기는 날에도 아이와 약속한 놀잇감 만들기를 하고 잔다. 이는 우리 부부가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하는 항목이다. 아이와의 약속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 부모의 모습에서 자신이 존중받는 느낌을 받을 것이리라고 생각한다. 또, 아이든 어른이든 자신이 내뱉은 일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지키는 사람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아주 가끔 시간이 날 때는 직접 등, 하원을 해 주려고 약속을 하고 그것은 반드시 지키고 있다. 평소 등하원 도우미 선생님이나 남편이 교대로 등하원을 하는데, 상대적으로 부족한 엄마와의 등하원 시간을 갖고 싶어하는 아이를 위한 행동이다. 같이 하원하기로 약속을 했는데 일이 생각보다 늦게 끝나서 피가 마를 것 같은 날도 있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라도 눈썹을 휘날리며 달려가서 등하원 약속을 지켰다. 어느 때보다 밝게 웃는 아이를 보며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고작 5~10분의 등하원 시간이지만 아이에게는 천금을 주겠다는 약속만큼 소중한 것이었으리라.


우리는 완벽한 부모가 아니다. 이렇게 노력한다 해도 아이의 입장에서는 언제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같은 다른 친구의 엄마를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날이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저 "엄마가 나가서 돈 많이 벌어 올게. 그럼 됐지?"라고만 하고 싶지는 않다. 일을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경제적인 것은 맞지만, 아이가 벌써부터 가족간의 시간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가치관을 갖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경제활동을 해야 하기에 엄마아빠가 언제나 함께할 순 없지만, 엄마아빠는 항상 나와 한 약속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소중히 여긴다는 느낌만큼은 가졌으면 좋겠다.


펭귄은 암컷과 수컷이 함께 새끼를 돌보는 동물이라고 한다. 새끼가 막 태어났을 때는 엄마와 아빠가 교대로 아기를 품어주면서 다른 한 쪽이 먹이를 잡아오다가, 아기가 어느 정도 자라면 엄마 아빠가 함께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으러 간다고 한다. 그 동안 아기 펭귄들은 한데 모여서 다른 어른 펭귄의 돌봄을 받으며 엄마아빠 펭귄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아마도 아기 펭귄들은 엄마아빠가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영하 60도의 얼음 바람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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