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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Mar 22. 2024

한 워킹맘의 사교육에 대한 솔직한 심정

아이를 낳기 전, 그리고 돌이 되기 전까지 나는 사교육이라는 것에 대해 꽤나 부정적이었다. 아이는 그저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만 자라면 되지 뭘 저렇게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노후자금을 쏟아붓나, 저게 다 '저출산의 원흉'이요, 가정을 병들게 하는 주적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백일 잔치도 하기 전에 천만원짜리 몬테소리니, 프뢰벨이니, 영어 전집 등을 들이는 집들도 주변에 꽤 보였지만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그런 신념은 아이가 돌이 지나고 '발달지연' 판정을 받으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미디어 노출 한 번 안 하고 키운 나의 아기가 전반적 발달지연에 언어지체가 심각하다는 검진 결과를 받아들고 난생 처음 사교육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한 시간에 10만원을 줘야 하는 발달센터에 등록한 것이다. 천 만원짜리 전집을 사들이는 주변 부모들과 별다를 바 없는 돈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발달센터 수업을 사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선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겠지만, 일단 공교육은 확실히 아니고, 내가 경험한 바 발달센터는 학원의 느낌이 강했다. 어쨌든 내 나름대로는 적지 않은 돈을 들이며 주 2회 언어치료를 받았다. 여기에 매주 집으로 찾아와서 오감놀이를 해 주는 방문교사 서비스도 등록했다. 코로나로 인해 문화센터 수업도 줄줄이 폐강을 맞으면서 아이에게 최대한 다양한 자극을 주기 위한 방침이었다. 다행히도 아이는 '사교육의 힘' 덕분인지, 그냥 때가 되어서인지는 몰라도 6개월여 만에 말이 완전히 트여 치료를 종결할 수 있었다.


본의 아니게 사교육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나의 관념도 많이 달라지게 됐다. 모든 사교육 소비자들이 단순히 '욕심'때문에 돈을 쓰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우선 부부 모두 일을 하게 되면 퇴근시간까지 돌봄을 위해서라도 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실제로 주변 맞벌이 부모들은 하원 후 돌봄을 위해 태권도 학원이나 영어 학원 등을 보낸다. 태권도장에서는 태권도뿐 아니라 간식과 돌봄, 심지어 방학시즌에는 이벤트성으로 주말에도 영화관람 행사 등을 열어 부모에게 자유시간을 제공한다고 한다. 유치부 학원은 사실상 돌봄 기능까지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출처: pexels


아이가 세 돌이 지나고 아기에서 유아가 되니 주변에서는 하나둘씩 본격적인 사교육을 시작했다. 아직 말도 다 트이지 않은 것 같은데 한글 학습지를 하는 같은 반 친구도 있었고, 한두 살 더 먹은 아이들은 태권도 학원이나 미술 학원, 축구 교실 같은 예체능 학원부터 초등 입학에 대비한 영어 학원, 연산 학원 등 '공부' 학원도 꽤나 보내는 분위기다.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이러한 것들이 부모의 과도한 욕심에 따른 일종의 학대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요즘 부모들은 아이의 요구에 맞춰 학원 스케줄을 조율하고 아이들도 나름대로 그 곳에서 친구를 사귀거나 즐거운 시간을 배우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맞벌이 부모 입장에서 사교육은 현실적으로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옵션이다. 먼저 하원이나 하교 후 집에서 '엄마표'로 섬세하게 공부를 봐줄 수 있는 시간적 여력을 내기가 어려울뿐더러, 양가 부모님 도움을 받지 않는 상황이면 퇴근시간까지 돌봄을 부탁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공간이 학원이기 때문이다. 늘봄이나 돌봄 등이 있다고 해도 친구들이 대부분 떠난 교실에서 조용히 앉아 몇 시간이고 기다리는 것은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쉽지 않을 수 있다. 시간 운용의 측면에서도 비효율적이다.


나 역시 아이가 세 돌을 넘기고 나서 '엄마표'로 영어노출을 시도하려고 했었다. 엄마표 영어라고 해 봐야 영어 그림책을 읽어주고 영어 영상과 노래를 자연스레 노출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우선 아이의 수준에 맞춰 적절한 교재나 영상을 고르는 것도 일이었다. 영어교육에 대해 딱히 전문적 지식이 없는 내가 이를 선별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고 온라인의 도움을 받아 대충 유명한 책, 영상 등을 구해 노출한다 해도 이게 과연 맞는 방향인지 혼란스러웠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책을 고르면 내용이 나도 이해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난이도가 높았고 쉬운 책을 고르면 아이가 보질 않았다. 시간과 체력이라도 넉넉했다면 충분히 공부했을텐데 워킹맘이라 시간도 늘 부족했다. 무엇보다 하원 후 몇 시간은 아이와 밥을 먹고 씻기고 약간의 놀이를 하는 것만으로도 빠듯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집으로 교사가 찾아와 영어 수업을 하고, 제공되는 교재 등을 주중에 틈틈이 아이에게 노출시키는 '사교육'의 도움을 받게 됐다. 적어도 교재 선택, 방식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앞으로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의 영향력이 아이에게 가해질 수 있는 범위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 엄마, 아빠에게 배우는 것보다는 학교나 학원에서 배우는 것들이 더 많아질 것이고 가정의 영향만큼 또래 친구들에게 받는 영향도 커질 것이다. 특히나 맞벌이를 지속한다면 더욱 그러할게다.

모든 것을 '엄마표'로 다 해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기로 했다. 외주화할 수 있는 것은 외주화를 하고 나보다 우리 아이를 더 잘 가르치고 지도할 수 있는 분들을 믿기로 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우리 가족이 있어야겠지만, 긴 맞벌이 육아의 레이스는 적절한 외주화가 필수적임을 지난 경험에서 배웠다.


사회는 사교육 시장을 종종 '부모의 탐욕이 쌓은 바벨탑'처럼 악마화하고, 사교육 기업들은 부모의 막연함과 불안함을 종용하며 '이 나이에 이걸 안 하면 당신의 아이는 영영 뒤처진다'며 협박을 한다. 이런 모순된 구도 속에서 자기만의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무작정 사교육을 백안시하는 것도, 그렇다고 마케팅에 넘어가 형편에 맞지 않는 과한 소비를 하는 것도 모두 우려스럽다. 


아직 본격적인 사교육 레이스에 오르기 전인 미취학 아동을 키우는 입장에서 다소 조심스럽지만, 아이의 연령이 몇 세고 간에 결국 가장 중요한 주체는 아이 스스로라고 생각한다. '할 놈은 돈 바르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한다'는 말도 있지만, 아직 미성숙한 자녀의 입장에서 전적으로 '자기 주도 학습'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어느 정도 강제력은 필요할 수밖에 없다. 낮 시간에 아이를 밀착 케어하기 어려운 맞벌이 부모는 아이에게 적절한 강제력을 행사하기 어렵다. 사교육을 이용함으로써 아이가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보내도록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반대로 그렇다고 해서 부모의 불안을 투영시켜 과도한 학업의 짐을 짊어지게 하는 것도 좋지 않다. 한국은 자녀 사교육비 때문에 노후 빈곤이 사회문제로 불거진 거의 유일한 나라다. 사교육 뿐만이 아니라 육아 전반에서, 더 나아가 인생 전반에서 방향타를 스스로 단단히 잡고 거친 풍랑을 헤쳐가나고 싶다. 그러한 태도에서 아이가 배울 수 있는 것도 더 많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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