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초년생 때 인턴으로 잠시 근무했던 여의도의 한 공기업으로 출퇴근을 하면서 처음으로 '문화 충격'을 받았다. 아침 7시 전에 일어나 오전 9시 전까지 만원 버스, 지하철에 서서 출근을 하고, 저녁 6시 해가 질 때까지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 퇴근을 해서 집에 오면 거의 밤 8시가 되는 매일이었다. 그렇게 주 5일을 보내고 나면 막상 주말이 돼도 침대 밖으로 나갈 기운이 없었다. 당시는 20대 중반, 돌도 씹어먹을 나이라지만 나는 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수십년 동안 이런 삶을 지속하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직장인의 고단한 삶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나는 종종 야근과 주말출근을 하면서 주 3일 퇴근 후 요가를 하러 가기도 하는, 나름대로 능숙한 직장인이 되었다. 주말에는 남자친구를 만나서 여기저기 놀러 다니기도 하고 자격증을 따려고 스터디카페에서 인강을 듣기도 했다. '다들 이렇게 산다'의 '다들'의 삶을 문제없이 감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생은 내가 하나의 시련에 적응하기 시작하면 더 큰 과제를 던져주곤 했다. 이제는 직장생활과 함께 아이를 양육해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가 생겨난 것이다. 직장을 다니는 삶에 그럭저럭 익숙해지니까 이제는 직장생활만큼, 혹은 그보다 더 힘든 또 하나의 정체성이 생겼다. 요가는 가끔 빼먹기라도 하고, 자격증 시험은 떨어지면 떨어졌나보다 하는데, 아이는 대충 키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이 워킹맘의 삶 그 자체였다.
'월화수목금퇼'이라고 할 정도로 주말은 너무 짧았고 눈 감았다 뜨면 사라지는 퇴근 후 시간도 워킹맘에게는 사치였다. 퇴근하면 꼼짝없이 육아 출근이고 주말은 아이를 데리고 방방 곡곡으로 놀러다니거나 주중에 못 쌓은 아이와의 유대감, 생활지도, 인지발달에 쏟아야 그래도 아이가 '내 관할 안에 있다'는 안심이 조금이나마 들었다. 잠이 없는 아이를 키우다보니 아이 재우고 맥주 마시며 영화 한 편 본다는 육퇴 생활도 따로 없었다. 언제나 아이보다 내가 먼저 골아떨어졌다.
이렇게 몰아치는 일상 속에서 워킹맘들은 너무 쉽게 자신을 '후순위'로 두게 된다. 혹은 남의 뒷바라지, 직장 일만 하다가 인생이 저물어간다는 조바심 속에서 자신을 학대하게 되기도 한다. 무리하게 잠을 줄이거나, 끼니를 대충 때우거나, 혹은 반대로 폭식을 하거나 등등. 나 역시 스트레스를 풀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폭식을 하는 습관이 생겼고 그렇지 않아도 임신 출산으로 크게 불어난 몸무게는 더욱 늘어나서 건강을 위협하게 됐다.
이런 식의 생활은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는 두려움이 찾아왔다. 워킹맘을 한두 해 하고 말 것도 아닌데, 지속 가능한 방식을 찾아야 했다. 그러기엔 먼저 내가 건강해져야 했다. 그러면서도 자칫 나만 챙기다가 아이를 뒷전으로 해 결국 아이가 내 발목을 잡는 일 또한 없어야 했다. 아이와의 시간을 최대한으로 가져가면서도 내가 너무 무리하지 않도록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