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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Mar 08. 2024

잠들기 한 시간 전, 우리의 퀄리티 타임

아이가 세 돌 전까지 육아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있다면 단연코 '잠'이었다. 일단 잠이 참 없던 우리 아이는 돌 전까지는 수시로 깨서 새벽수유를 해 줘도 다 먹고 나면 이제 배가 차니 놀아줘야 한다며 눈이 더 말똥말똥해지는 '환장할' 난이도를 선보였다. 일정한 수면시간, 수면의식, 암막커튼, 백색소음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은 다 동원했지만 원체 잠이 없는 체질에게는 역부족이었다.

수면부족에 1년 가까이 시달리니 밤에만 아이를 봐 주는 시터라도 고용하고 싶을 정도였다. 당연히 그런 서비스는 없었다. 낮에는 기관에 보낼 수라도 있었지만, 나에게 낮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견딜만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굳이 기관에 보내는 모험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밤이 문제였다.


두 돌쯤이 지나니 도중에 깨서 칭얼거리기는 해도 그럭저럭 통잠 비슷한 걸 잤지만, 온 가족이 패밀리침대에서 다 같이 자다 보니 수시로 아이의 발차기와 밀치기를 견디며 새우잠을 자야 했다. 돌 전보다야 훨씬 나은 사정이었지만 그래도 늘 잔 듯 안 잔듯 수면의 질은 형편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십 중 팔구의 사람들은 같은 이야기를 한다. "대체 왜 수면교육을 안 하는데? 요즘은 다들 분리수면한다고."

그러나 우리가 수면교육을 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애초에 우리 아이에게는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아서다.


아이가 8개월쯤 됐을 때였나, 남편이 수면교육 책을 빌려 왔다. 수면부족으로 신경쇠약에 시달리던 나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었다. 잠들 때까지 안아서 둥가둥가하는 게 아니라, 울면 잠시 안았다가 다시 내려놓고 스스로 잠들 때까지 기다리도록 한 것이었다. 보통은 좀 울다가 언젠가는 잔다는데, 우리 아이는 정말로 거짓말 안 보태고 새벽 4시까지 내내 울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3시간 내내 통곡을 하던 아기가 갑자기 깔깔깔 웃는 것이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나홀로 갑자기 깔깔깔 웃는 아기라니...우리 부부는 너무 공포스러운 나머지 그날부로 모든 수면교육을 포기하고 예전처럼 안아서 재우기를 선택했다. 아이는 두 돌이 조금 넘어서까지 엄마아빠 품에서 잠을 청했다. 그 이후로 나는 수백만원 도수치료로도 완치하지 못하는 허리와 골반통증을 얻었지만 딱히 도리가 없었다.



세 돌이 지나니 아이는 비로소 스스로 누워 잠을 청하게(물론 약간의 실랑이는 있지만) 됐다. 요즘 영유아를 키우는 부모님들 중 상당수는 수면교육과 함께 분리수면을 하는 분위기인 듯하다. 워낙 밤잠이 적었던 아이를 키우니만큼 분리수면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게 느껴지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5살 상반기까지는 일단 한 침대에서 온 가족이 함께 자는 걸 택하고 있다. 이제는 한 번 잠들면 오히려 등원 시간에 늦을까봐 깨우는 게 일일 정도로 잘 자게 됐지만, 그래도 아이와 함께 잠든다는 건 썩 편하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와 함께 잠자리에 드는 것은 여러모로 좋다는 생각이다. 맞벌이를 하느라 낮 시간에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다소 적다보니, 퇴근 후 저녁 시간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시간을 오롯이 함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덜 수 있다.

5살인 우리 아이의 수면 전 일과는 이렇다. 저녁식사 후 놀다가 양치와 목욕을 한다. 아빠와 목욕을 한 후 엄마가 로션을 발라주고 새 속옷과 옷을 갈아입힌다. 낮잠을 끊으면서 취침이 다소 빨라졌는데, 9시 전후로 취침 시간이 가까워지면 읽고 싶은 책을 골라서 가져오도록 한다. 침대에 앉아 아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어 준다. 마지막으로 소변을 본다. 시간이 늦어지면 자도록 하고, 불을 끄고 무드등만 켜 둔채 백색소음을 튼다.


잠들기  전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날 있었던 일 중 아이에게 다소 유쾌하지 않은 일이 있었다면 최대한 좋은 쪽으로 해소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면 기관에서 친구와 다툼이 있었다든가, 엄마 아빠가 혼을 냈다든가, 아이의 입장에서 마음에 걸릴 만한 것을 물어보고  공감해주며 타이르려고 한다. 적어도 잠에 들 때 만큼은 편안한 마음이기를 바라서다. 


그리고 마지막으론 자리에 누워 엄마 옆에서 '이야기'를 듣는다. 늦은 시간까지 잠들기 어려워하는 아이에게 아무말로 이야기를 지어내서 들려줬더니, 그날 이후부터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엄마의 창작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천일야화를 지어내는 세헤라자데의 심경으로 매일같이 즉흥 이야기를 아이에게 지어내고 있다. 이야기 등장인물은 일단 우리 아이가 주인공이고 같은 기관에 다니는 친한 아이들이나, 아이가 좋아하는 '옥토넛' 등장인물, 그때그때 책에서 본 동물이나 인물들, 가족 등이다. 갑자기 바닷속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지진이 나기도 하고 몬스터가 나타나기도 한다. 아무튼 끝은 해피엔딩이다. 만족스러운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그제서야 편안하게 잠이 든다.


물론 분리수면을 하면서도 이러한 수면의식은 충분히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도 아주 가끔이지만 엄마, 아빠가 옆에 없을 경우 깨서 찾기도 하는 우리 아이의 성향상 잠을 자면서도 옆에 부모가 있다는 건 잠재적으로 큰 안정감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 가정불화와 일로 바빴던 엄마 대신 외조부모님 댁에서 자랐던 나는, 엄마가 쓰던 베개에 코를 박고 엄마 냄새를 맡으며 잠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엄마 아빠의 체취를 맡으면서 잠자리에 든다는 건 아직 연약한 아이에게 큰 위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다행히도 아이가 자라면서 나의 수면의 질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이제는 자다가 깨는 일도 거의 없다.


아이와의 '취침 전' 시간을 사수하기 위해 왠만해서는 일찍 귀가를 하고 있다. 저녁 약속은 가급적 잡지 않으며 회식 등 불가피한 일정이 생길 때도 양해를 구하고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한다. 엄마가 늦으면 늦는대로 잠에 들지 않고 귀가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와, 늦게라도 꼭 인사를 하고 책 읽어주기와 이야기 들려주기를 하고 함께 잠이 든다. 


비록 분리수면을 하지 않았지만, 그 취지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부분도 있다. 아이가 태어났다고 해서 '아이 위주'의 삶이 아닌 '부부 위주'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아이를 낳으면 (주로 엄마가) 아이에 매이고, 부부 사이가 멀어지는 걸 당연하게들 여겨 왔다. 부부관계에 대해서도 '가족끼리 그런 걸 왜 해'라는 농담이 통용되는 분위기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란 우리 세대는 소원해진 부모님 사이를 바라보면서 결혼에 대해 냉소적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적절한 시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적어도 만 3세가 되기 전까지는 부부가 아이 위주로 생활하는 것이 결코 고리타분하지도, 비합리적이지도 않은 선택이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어린 아이에게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를 쏟지 않아 아이가 정서적인 문제를 겪으면, 이는 결국 후일 부부 사이를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가 일정 이상 자라면 다시 부부 중심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역시 아이가 유치원생 형님이 되는 올해부터 아이 방을 꾸미고 분리수면을 연습시킬 예정이다. 5살이 됐든 15살이 됐든 아이는 언젠가 우리 부부의 품을 떠난다. 그때는 우리 부부가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어야만 한다. 그 시기가 오기 전까지는 우리가 내어 줄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를 최대한 아이에게 내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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