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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Mar 15. 2024

워킹맘, 나를 소중히 대하기

사회 초년생 때 인턴으로 잠시 근무했던 여의도의 한 공기업으로 출퇴근을 하면서 처음으로 '문화 충격'을 받았다. 아침 7시 전에 일어나 오전 9시 전까지 만원 버스, 지하철에 서서 출근을 하고, 저녁 6시 해가 질 때까지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 퇴근을 해서 집에 오면 거의 밤 8시가 되는 매일이었다. 그렇게 주 5일을 보내고 나면 막상 주말이 돼도 침대 밖으로 나갈 기운이 없었다. 당시는 20대 중반, 돌도 씹어먹을 나이라지만 나는 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수십년 동안 이런 삶을 지속하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직장인의 고단한 삶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나는 종종 야근과 주말출근을 하면서 주 3일 퇴근 후 요가를 하러 가기도 하는, 나름대로 능숙한 직장인이 되었다. 주말에는 남자친구를 만나서 여기저기 놀러 다니기도 하고 자격증을 따려고 스터디카페에서 인강을 듣기도 했다. '다들 이렇게 산다'의 '다들'의 삶을 문제없이 감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생은 내가 하나의 시련에 적응하기 시작하면 더 큰 과제를 던져주곤 했다. 이제는 직장생활과 함께 아이를 양육해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가 생겨난 것이다. 직장을 다니는 삶에 그럭저럭 익숙해지니까 이제는 직장생활만큼, 혹은 그보다 더 힘든 또 하나의 정체성이 생겼다. 요가는 가끔 빼먹기라도 하고, 자격증 시험은 떨어지면 떨어졌나보다 하는데, 아이는 대충 키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이 워킹맘의 삶 그 자체였다.


'월화수목금퇼'이라고 할 정도로 주말은 너무 짧았고 눈 감았다 뜨면 사라지는 퇴근 후 시간도 워킹맘에게는 사치였다. 퇴근하면 꼼짝없이 육아 출근이고 주말은 아이를 데리고 방방 곡곡으로 놀러다니거나 주중에 못 쌓은 아이와의 유대감, 생활지도, 인지발달에 쏟아야 그래도 아이가 '내 관할 안에 있다'는 안심이 조금이나마 들었다. 잠이 없는 아이를 키우다보니 아이 재우고 맥주 마시며 영화 한 편 본다는 육퇴 생활도 따로 없었다. 언제나 아이보다 내가 먼저 골아떨어졌다.


이렇게 몰아치는 일상 속에서 워킹맘들은 너무 쉽게 자신을 '후순위'로 두게 된다. 혹은 남의 뒷바라지, 직장 일만 하다가 인생이 저물어간다는 조바심 속에서 자신을 학대하게 되기도 한다. 무리하게 잠을 줄이거나, 끼니를 대충 때우거나, 혹은 반대로 폭식을 하거나 등등. 나 역시 스트레스를 풀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폭식을 하는 습관이 생겼고 그렇지 않아도 임신 출산으로 크게 불어난 몸무게는 더욱 늘어나서 건강을 위협하게 됐다.


이런 식의 생활은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는 두려움이 찾아왔다. 워킹맘을 한두 해 하고 말 것도 아닌데, 지속 가능한 방식을 찾아야 했다. 그러기엔 먼저 내가 건강해져야 했다. 그러면서도 자칫 나만 챙기다가 아이를 뒷전으로 해 결국 아이가 내 발목을 잡는 일 또한 없어야 했다. 아이와의 시간을 최대한으로 가져가면서도 내가 너무 무리하지 않도록 해야 했다.



아이가 잠들면 별 일이 없는 한 함께 잠자리에 들거나 쉬었다. 집안일은 깨어있는 시간에 틈틈이 했다. 설거지는 식기세척기를 이용하고 밑반찬 등은 반찬가게나 배달반찬을 이용하고 있다. 그나마 낮잠을 자지 않게 되면서 밤 취침시간이 9시로 당겨졌는데, 2시간 정도는 나를 위해 사용하고 늦어도 12시가 되기 전에는 나도 잠자리에 들도록 했다. 물론 그 전이라도 몸이 몹시 피곤하거나 졸리면 무리하지 않고 지체없이 8시든 9시든 잠자리에 들었다. 일단 건강해야 내 시간도 있는 것이니까.


작은 것이라도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요소들을 일상 속에 마련했다. 틈틈이 향을 맡으며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아로마 오일을 들고 다닌다. 아이 샴푸를 같이 대충 쓰는 대신,  다소 가격대가 있더라도 좋은 향이 나는 바디 용품을 오로지 내 전용으로 쓴다. 잠깐이라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규칙적으로 먹는다. 패스트푸드나 튀긴 음식 등 고칼로리, 몸에 나쁜 음식을 최소화하고 최대한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음식으로 적당량 먹기로 했다. 저녁식사 시간 이후에는 아무리 작은 간식이라도 입에 대지 않도록 야식을 먹지 않는 습관을 들이기로 했다. 다만 식이조절 때문에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으려고 한다. 하루에 한 끼 정도는 금액이나 건강에 크게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먹으려고 한다. 결혼 전 체중감량을 위해서는 다소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까지 식단을 조였지만 이제는 그보다는 나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더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나를 힘들게 하는 관계들, 나를 힘들게 하는 말들로부터 나를 지키기로 했다. 꼭 필요하지 않으면서도 나와 맞지 않아서 만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과는 억지로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다. 혹은 적정 거리를 유지한다. 나이가 들 수록 가족 혹은 아주 가까운 사람들 외에는, 의무적인 인맥 확장을 위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득보다 실이 많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잡다한 모임에 나가기보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린다. 그렇지 않아도 언제나 아쉬운 아이와의 시간을, 퇴근후와 주말에라도 최대한 가져가려고 한다. 모임에 나가지 않아 인간관계가 줄어든 것 같지만, 함께 육아를 하는 지인들과의 모임으로 오히려 체감 인간관계는 더 풍성해진 느낌이다.


차별과 혐오의 말들이 수시로 쏟아져 나오는 온라인 매체, 커뮤니티의 글을 멀리하고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기로 했다. 맘카페에서 매일같이 싸움이 벌어지는 고부갈등, 남녀갈등, 워킹맘과 전업맘의 갈등, 강남과 비강남의 갈등 등으로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하지만 휴대전화를 끄면 내 인생에 아무런 영향력도 줄 수 없는 공허한 말들에 불과하다. 이런 말들로 나의 정신건강을 위협할 이유가 없다.


육아가 힘들 때 선배맘들이 늘 하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육아는 단기 경주가 아닌 장기 마라톤이니,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맞벌이 육아 역시 하루이틀 할 것이 아닌 장기간에 걸쳐 지속돼야 할 나와 우리 가족의 생활 방식이다. 그렇기에 단기적인 스퍼트를 올리기보다 오랫동안, 건강하게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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