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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Apr 12. 2024

맞벌이 부모의 방학나기

어린 시절 많은 아이들이 그랬듯이 방학이 오기를 손꼽아 그리던 나였다. 적게는 1달, 길게는 두 달이 넘기도 하는 여름과 겨울방학에 봄방학까지.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마음대로 하루를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행복한 반면 우리 엄마는 "이 놈의 쉬는 날은 왜 이렇게 많은거야. 나는 연휴가 제일 싫어."라고 했다. 어떻게 쉬는 날이 싫을 수가 있지 싶었는데, 어른이 되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엄마의 그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더군다나 그 시절은 어린이집도 돌봄교실도 '배민'도 없고, 심지어 엄마의 '독박육아'가 일반적이었던 시절이었고, 경제활동까지 하셨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맞벌이 육아의 세계로 내던져지고 가장 먼저 든 의문점은 바로 방학 시기를 어떻게 보내는지였다. 길게는 2달에 달하는 긴긴 방학시간, 일반적인 직장인이라면 두 달이나 쉬는 것은 육아휴직 시기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어려웠다. 아이 두 돌까지는 가정보육을 했기에 모르는 세계였지만, 어린이집을 보내기 시작하니 1~2주 정도의 '가정연계학습' 통지표를 받게 됐다. 어린이집은 법적으로 365일 열려 있어야 해서 일주일 방학도 학부모 동의를 받아야만 할 수 있고, 이마저도 피치못할 사정으로 돌봄이 필요한 가정은 긴급돌봄이라고 해서 당직 교사가 출근해 통합반 형식으로 아이를 돌봐 준다고 한다.


맞벌이 부모 입장에서는 솔직히 다행스러운 제도고, 이 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방학도 없이 내내 기관에서 여름과 겨울을 나야 하는 아이들을 무작정 불쌍하다고만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가정 사정이 있고 직장인 입장에서 1~2주를 내내 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니까. 설령 재택근무나 단축근무가 가능하다고 쳐도 여전히 돌봄은 필요하다. 엄마 아빠가 집에서 열심히 일을 하는 8시간 정도를, 밥만 차려 주면 얌전히 시간을 보내는 아이는 아무리 어려도 초등 3학년 이상은 되어야 하지 싶다.


우리 아이의 경우도 처음 다녔던 소규모 가정어린이집을 제외하면 긴급돌봄을 이용해서 방학 없이 내내 등원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비록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어릴 적 누렸던 긴긴 방학의 1/4도 되지 않는 짧은 방학조차 아이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원거부가 딱히 없고 적응을 잘 하는 편인 우리 아이지만 그래도 집에서 뒹구는 것을 더 편하게 여기는 것은 분명했다. 집에서 무의미하게 심심한 하루를 보낼까봐 걱정하는 부모님도 계시지만, 원래 사람은 아이고 어른이고 심심한 시간이 필수적이다.



아이에게 '심심함'을 주기 위해 우리 부부의 '미션'이 시작됐다. 다행히 남편은 교대근무직이라 일주일에 3일 정도는 시간을 낼 수 있었다. 나머지는 우리가 돌아가면서 연차를 소진했다. 빠듯한 연차이지만 전부 다 내지는 않아도 돼서 다행이었다. 양가 모두 일을 하시고 거리도 있는 탓에 '조부모 찬스'는 거의 쓰지 못했지만 엄마가 일을 쉬시는 날 반나절 정도 집에 오셔서 잠시 아이와 놀아주기도 하셨다. 그나마도 안 되는 날은 등하원도우미 선생님께 잠시 양해를 구해서 집에 와주시거나, 시간제 놀이시터를 고용하기도 했다. 아이가 거실에서 깔깔거리며 놀이시터 선생님과 신나게 뛰어노는 소리를 들으니 방에서 재택근무를 하면서도 마음이 좋였다.


방학을 활용해 짧게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물론 방학기간은 대개 극성수기이기에 고급 숙소나 해외 여행은 가지 못했다. 대신 덜 붐비는 국내 숙소를 택해서 다녀왔다. 여름에는 물놀이를 하고, 겨울에는 감기에 잘 걸리는 아이의 컨디션을 고려해서 실내 장소로 주로 다녔다. 또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배변훈련을 시도하거나, 유치원 입학전 봄방학 기간을 활용해서 낮잠을 끊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 습관을 연습하기도 했다. 덕분에 유치원 적응을 좀 더 손쉽게 할 수도 있었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방학은 우리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에게도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이 된 듯하다. 뒹굴뒹굴 누워서 역할놀이를 하기도 하고, 엄마 아빠와 요리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책을 읽고, 때로는 좋아하는 옥토넛 만화를 실컷 보기도 하는 쉼의 시간을 가졌다. 가정보육 기간에는 너무 지쳐버리지 않도록 생활습관도 너무 엄격하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 영상노출도 너무 심하지 않은 선에서 허용하려고 하고 배달음식을 시켜서 아이와 나눠먹기도 한다.


그렇게 여름, 겨울, 봄방학을 알차게 보내고 아이는 5살 형님이 되어 어린이집을 졸업했다. 앞으로 학교에 가면 이제는 더욱 긴 방학기간이 기다리고 있다기에 긴장이 된다. 어린이집 때 우리 부부가 했던 노력 정도로는 이제 통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방학 때도 도시락을 싸서 돌봄교실을 보내야 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공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선택지가 있음에 감사한다. 그러나 그 시기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었다는 데에 먼저 감사하고 싶다.


저출산에 대한 정책으로 맞벌이 부모가 일과 양육을 병행할 수 있도록 공공 돌봄 서비스를 강화하는 데 모든 해결책이 집중된 느낌이다. 물론 각 가정마다 육아관은 다르고 사정도 다 다르기에 이런 식의 정책도 개인적으로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 가정처럼 방학과 방과후만큼은 부모가 직접 아이와 함께하고 싶은 가정도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일과 양육의 병행은 근본적으로 아이와 부모가 모두 가정을 떠나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양육을 하면서도 일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일과 직장이 많아지기를 바라 본다.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도 방학의 느긋함을 만끽할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출산율에도 유의미한 변화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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