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당김의 법칙'이라는 걸 알게 된 건 우연히 10년 전에 쓰다 방치한 블로그 계정을 발견하면서였다. 그 때 나는 네 살 짜리 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다니는, 그야말로 눈코뜰 새 없이 몰아치는 의무들 속에서 겨우겨우 숨만 쉬며 이리저리 떠밀려가는 삶을 살고 있었다. 와중에 연말을 맞아 또 한 살 먹을 걸 걱정하니 앞날이 보이지 않았다. 사실은 양가 도움 없이 맞벌이를 하면서 현재 하고 있는 일조차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갑자기 그럴 때가 있다. 오래도록 잊고 있던 무언가가 불현듯 생각날 때. 예를 들면 오랫동안 입지 않고 옷장에 처박아 둔 옷 주머니 속에 예전에 넣어둔 현금이 들어있다는 게 생각난다든지. 나의 경우 아쉽게도 그런 건 아니었지만, 갑자기 내게 N모 포털 블로그 아이디가 하나 더 있었다는 사실이 갑자기 생각났다. 당시로부터 딱 10년 전, 다니던 초 소규모(직원 수가 나 포함 5명 미만이었다) 매체를 그만두고 언론사 공채를 준비한답시고 뒤늦은 백수생활을 시작했을 무렵이다. 어찌 보면 지금보다도 훨씬 더 앞이 깜깜한 상황이었다.
블로그에는 2013년 새해를 맞아 목표가 비밀글로 포스팅돼 있었다. 당시 기준으로 어찌 보면 허무맹랑한 수준이었던 세 가지의 목표는, 지금 와서 떠올려 보니 모두 아무렇지 않게 이뤄져 있었다. 특히 세 가지 목표 중 지금 생각해도 다소 신기했던 건 '해외 출장 가기'였다. 출장은커녕 직장도 없는 당시의 나로서는 실현 가능성이 낮은 목표였다. 여행도 아니고 출장이 목표라니, 아마도 드라마나 영화 같은 데서 회삿돈으로 해외를 나가는 모습이 몹시도 부러웠던 듯하다. 아무튼 해당 목표를 쓴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나는 한 언론사에 들어가게 됐고 이런저런 우연이 겹치면서(관련법 개정을 앞두고 갑자기 해외 출장 건이 마구 쏟아지며 이례적으로 신입인 나에게까지 뉴욕 출장 기회가 돌아왔다든지) 초년생 시절에만 두 번이나 해외 출장을 다녀오게 된 것이다. 그때만 해도 이미 블로그 글 따위는 까맣게 잊었을 때라 그저 운이 좋다고만 생각했다(그리고 해외출장이란 영화에서 본 것처럼 우아하게 회삿돈으로 노는 게 아니라 시차로 인한 피로에 찌든 상태로 죽어라 일만 하다 오게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운이 좋다'는 말로 퉁치는 많은 일들은 사실은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끌어당긴'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시중에 나온 거의 모든 책과 영상을 샅샅이 뒤적이며 '끌어당김의 법칙'을 공부했다. 그저 허무맹랑한 유사과학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선입견과 달리,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인사들 혹은 일부 과학자들조차도 이와 비슷한 원리를 주장하거나 삶에서 (알든 모르든) 실천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물론 이를 악용해 사이비 종교에 한 발짝을 걸친 듯한 무리들도 간혹 보였고, 그 정도는 아니어도 사업적인 용도로 이를 마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과장 과대광고하는 콘텐츠들도 꽤 있었다. 이런 것들은 배제하면서 최대한 검증된 콘텐츠를 주로 보려고 했다.
그리고 꽤 많은 사람들이 목표를 100번씩 100일간 쓰는 방법을 추천하고 있었다. 하지만 말이 쉽지 한 문장을 100번씩 쓰는 것은 아무리 빨리 써도 족히 30분은 걸린다. 안 그래도 매일을 분초 단위로 쪼개어 쓰는 워킹맘의 입장에서 그것은 결코 쉬워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말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기에, 나는 속는 셈치고 한 번 해보기로 했다. 막말로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손이 좀 아플 뿐) 하다가 정 아니다 싶으면 관두면 되니까. 마침 집에는 여기저기서 사은품으로 받아서 쟁여둔 각종 판촉용 노트와 볼펜들이 굴러다녔다. 준비물은 이것이면 충분했다.
물론 워킹맘으로서 30분간의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어려웠다. 보통 아침에 일찍 일어나거나 자기 전에 고요히 앉아 쓴다는데 그런 시간은 많아야 한 달에 한 두번 꼴로 간신히 낼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 아이는 신생아 때부터 잠이 무척이나 없는 아이여서(지금도 밤 9시부터 재우기를 시작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입면시간은 밤 11시에 가깝고, 다음날 7시가 되면 완벽하게 충전된 상태로 일어난다. 한마디로 어른보다 수면 시간이 짧다는 것이다. 이렇게 적게 자는데도 건강한 걸 보면 역시 체질이다 싶다.)100번 쓰는 행위 자체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내는 것이 더 어려웠다.
좀 구차하지만 온갖 장소에서 100번쓰기를 시도했다. 출퇴근길 버스 안에서 흔들리는 손목을 부여잡으며 겨우겨우 쓰고(일부러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뒷자리를 사수했다. 그런데 옆에 누군가가 앉으면 난감...), 업무 시간에도 모두들 점심을 먹으러 간 사이 책상 앞에서 부랴부랴 100번쓰기를 했다. 그럼에도 아이가 아프거나 일이 바쁘거나 내가 아프거나 가족 일정이 있거나 등등의 사유로 빼먹은 날도 솔직히 많았다. 그래서 말은 100일간이라지만 내 경우에는 거의 200일에 걸쳐서 어쨌거나 100번씩 100일간, 목표 1만 번 쓰기를 해냈다.
수 년간 브런치를 통해 많은 독자분들을 만나고 분에 넘치는 응원도 받았다. 무엇보다 글을 쓰는 시간이 내게는 너무 즐겁고 행복한 몰입의 시간이었다. 업무로 글을 쓸 때는 늘상 마감에 쫓겨서 마지못해 쓰는 느낌이라면, 브런치에 내가 쓰고 싶은 걸 쓸 때는 마치 대화 코드가 아주 잘 맞는 편한 지인이나 가족과 속을 탁 터놓고 아무 얘기나 하는 느낌이다. 시간이 지나니 브런치를 통해 출간의 꿈을 이루는 분들이 보였고 나도 한번쯤은 책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더 오래 전부터 내 이름이 적인 책을 내는 것은 오랜 꿈이었다. 그러나 어려운 가정 환경에 쫓겨 부랴부랴 취업을 하면서, 사회생활에 그리 적합하지 않은 내가 사회라는 공간에서 생존하기 위해 매일을 고군분투하느라,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라는 이름에 오롯이 복무하느라 그 꿈은 정말 꿈으로만 남아 있었다. 감히 떠올리지조차 못하는 꿈으로.
그러나 단지 목표를 문장으로 쓴다는 것만으로 현실화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은 다시금 멈춰 있던 심장을 뛰게 했다. 비록 그것이 단지 '유사과학'일 뿐이라도 믿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내 시간을 좀 할애해 실험을 해 봤다.
무려 1만 번이나 쓴 내 목표는? 구독자 분들이라면 대략 아시겠지만 내 책을 낸다는 목표는 지난해 가을 이미 이뤄졌다. 백 번 쓰기를 마친 지 약 6개월 후의 일이었다.
(다만 좀 아쉬운(?) 점은 내가 목표를 쓰면서 떠올린 '베스트셀러'는 온라인 서점에서의 순위권 진입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건 생각보다 허들이 매우 낮았고 실제로 출판업계에서 알아주는 베스트셀러는 오프라인 베스트셀러 매대 진열쯤 되는 거라고 한다. 뭐 어쨌거나 원하던 대로 된 건 사실이니까.ㅎㅎ)
여기서 잠시 목표 100번쓰기의 방법을 궁금해 하실 분들을 위해 내가 시도한 방법을 써 보겠다.
우선 문장은 '나는'을 주어로 완성된 문장을 쓰라는 조언이 많아서 그렇게 했다. 사실 '책 내기', '100억 모으기' 등 간단한 명사형으로 쓰는 경우도 꽤 봤는데 주어와 서술어가 명확한 편이 더 목표 달성에 좋다는(?) 조언을 많이 들어서 기왕 하는 거 확실하게 하자 싶어 손목이 좀 아프더라도 이 방법을 택했다. 구체적인 시점을 정해주면 더 좋다고 해서 2025년이라는 연도를 명시했다. 결과적으론 2024년에 이루게 됐지만 아무래도 데드라인이 있는 편이 여러모로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문장을 쓸 때는 그냥 깜지 쓰듯이 아무 생각 없이 횟수를 채운다는 생각으로만 쓰는 게 아니라, 머릿속으로 목표를 이룬 구체적인 모습을 상상하면서 써야 한다. 물론 100번을 쓰는 약 30~40분의 시간이 결코 짧은 게 아니기에 속으로 자꾸 딴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나 역시 그냥 기계적으로 쓰게 될 때가 많았다.
잡생각이 들 때 다양한 방법으로 목표를 심상화하는 방법을 찾았다. 사업 계약을 체결하거나 특정 액수의 돈을 벌어들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분들은, 100번쓰기를 하면서 자신이 현재 계약서에 싸인을 하고 있다고 상상하거나 수표에 싸인을 하고 있다고 상상한다고 했다. 나는 책을 내고 나서 독자들이 가져온 내 책에 싸인을 하고 있다고 상상했다.
이것 또한 출간 후 그대로 이뤄졌다.
출간 후 한 기관의 섭외를 받아 북토크를 진행했고, 그날 내 책을 감명깊게 읽었다는 독자분이 책을 들고 오셔서 표지에 흔쾌히 싸인을 해 드렸다.
이밖에도 책을 내고 나는 태어나서 가장 많은 싸인을 한 것 같다. 지인들이 사 준 책이라든지...
아무튼 지금 생각해 보면 100번 쓰기 자체가 바로 하나의 '명상'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명상을 하는 많은 목적 중 하나는 수많은 잡생각과 다양한 환상에 미혹돼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가 진정한 고요 속에서 내 내면에 있는 것에 주목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익숙하지 않은 우리는 명상을 하는 10분, 15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에도 수많은 잡생각에 시달린다. 그 잡생각들을 그냥 있는 그대로 지켜보고 흘려보내는 것이 명상이다. 마찬가지로 100번쓰기를 한다는 것은, 수많은 잡생각들을 그냥 흘려보내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에 정신을 집중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세파에 찌들려 그저 꿈으로만 치부하고 미뤄뒀던 나의 목표에 제대로 눈을 고정시키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당연히 이룰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100번쓰기의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이 있다. 바로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는 것이다. 100번쓰기를 하다 보면 도중에 그만 쓰고 싶어질 때도 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현타도 자주 온다. 생각보다 손목이 많이 아프고 시간도 꽤 걸리기 때문이다. 이딴 걸 쓸 시간에 목표를 위해 뭐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조바심도 든다. 그때 '굳이 이렇게 까지 해서 이루고 싶지 않은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뭐라도 해 보고 싶은 꿈'이 구분된다. 사회에 의해 주입된 꿈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자연스럽게 나눠지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99번을 썼더라도 아니다 싶으면 다른 목표로 바꿔도 괜찮다. 나의 경우 책을 진짜로 내는 게 내 인생에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싶다가도 이뤘을 때를 생각하면 마냥 행복해져서 도중에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 망설임 없이 목표에 집중했고 글도 꾸준히 쓰고, 처음으로 출판사 정보도 열심히 수집했다.
오로지 나만 보는 나의 100번쓰기 노트는 다른 사람의 평가로부터 자유롭다. 남들이 아무리 허무맹랑한 목표라고 비웃을 것 같아도, 혹은 고작 그런 걸 목표로 하냐고 비난한다 하더라도 상관 없다. 오로지 내 마음에만 들면 된다. 그리고 차곡차곡 쌓인 시간의 힘은 당신의 삶에서 어떤 형태로든 기적으로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