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마을에는 유치원, 소방서, 경찰서, 학교, 식료품점, 놀이터, 도서관, 병원,
곰철 교수님의 카페,
멧돼지 스미스 아저씨의 대장간,
숲속마을 주민들 지정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찹쌀떡을 판다는 부들이(코끼리)아저씨의 찹쌀떡 가게
이 모든 것들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마을사무소가 있다.
마을사무소에는 다섯 동물들이 일하고 있다.
미세스 펜네(부엉이), 마을사무소장. 숲속유치원 부엉 선생님의 이모다.
아빠너구리, 버미의 친구 로니(아기 너구리)의 아빠. 마을의 회계를 맡고 있다.
거북 아저씨, 느긋한 성격으로, 가끔은 그 느긋함이 지나쳐 답답함을 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 (그의 아내인 거북 아주머니는 심슨 박사의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마을의 시설 관리자.
페더 씨, 부엉 선생님의 남편. 항상 잘 관리된 깃털을 자랑하지만 종종 실수를 한다. 마을의 가게 관리를 한다.
레아, 새침한 성격의 삼색 고양이 아가씨. 마을의 민원처리와 타 지역(주로 도시)과의 교류 담당. 늘 손거울을 보고 있으며 도시 생활을 동경한다. 숲속 온천을 관리하는 삼색이 할머니와 둘이 살고 있다. 이건 비밀인데, 벌레를 꽤 잘 잡는다.
하지만 이러한 업무 분장은-보통의 작은 조직들이 늘 그러하듯이-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뀌기도 한다.
마을 사무소는 오늘도 평화롭다.
미세스 펜네가 날갯죽지로 책상을 치며 말했다. "오늘 회의는 30분 이내에 끝내기로 합시다. 오늘의 안건도 마을 축제 준비입니다. 자, 각자 준비 사항 보고 부탁해요."
거북 아저씨는 느릿느릿 노트를 넘기며 말한다. "....어........그..러니까..... 마.....을 축...제........공..연.....을 할.....무..대.....가.........."
페더 씨가 말을 자른다. "어휴, 저렇게 느리게 말해서 언제 보고를 하겠어요. 이번 축제 때도 부들이 아저씨가 찹쌀떡 부스를, 곰철 씨가 특제 호박 케이크와 커피를 협찬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식료품점의 양 부부도 마을 공연에서 간식을 제공하기로 했는데..."
너구리 씨가 끼어든다. "저기, 그렇게 되면 우리 마을 예산이 너무 많이 들지 않겠어요?"
미세스 펜네는 "아니, 그 정도는 작년 축제 때도 했던 거잖아요. 예산은 문제가 아닌데, 뭔가 너무 특별한 게 없는걸. 이런 식이면 마을 주민들도 지루해 할 것 같아요. 레아 양은 아이디어 없나요?"
그 와중에 레아는 "어휴, 회의실에 왠 벌레가!" 하며 날아다니는 파리를 앞발로 탁! 잡고 있다. "네? 소장님?"
이러는 사이 어느 새 30분이 훌쩍 지나 버렸다.
미세스 펜네에게 좋은 생각이 난 듯하다.
"아, 그러고 보니 소나무 시에서 이번 축제에 드론 쇼를 협찬하겠다고 했어요. 우리는 매년 불꽃축제로 축제의 끝을 알렸지만, 드론 쇼라니 뭔가 특별하잖아."
"드...롱...? 드....롱....이...무 ㅓ....지...."
"어휴, 거북 씨 드롱이 아니고 드론이요.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계에요."
"뭐? 하늘을 난다고? 그럼 비행기 아닌가? 그런 게 날아다녀도 우리 마을 괜찮은건가? 하긴, 우리 로니도 비행기 장난감 참 좋아하는데, 그런 거라면 아이들도 좋아하겠네."
"그럼, 레아 양이 소나무 시 관계자를 만나서 얘기해 볼래요?"
소나무 시라고?
소나무 시는 숲속마을에서 그나마(?) 가까운 도시다. 그래봐야 기차로 몇 시간을 꼬박 달려야 하는 거리지만, 숲속마을의 대중교통은 다람쥐 준이의 아빠가 운전하는 마을버스와, 외부 지역으로 통하는 기차 단 두 가지 뿐이다. 이 중 기차를 타면 소나무 시로 갈 수 있다.(참고로 숲속마을역에 기차는 하루에 딱 두 대가 온다. 한 대는 소나무 시로 가는 열차, 다른 한 대는 해변으로 가는 열차.)
도시를 늘 동경하는 레아에게 소나무 시 관계자를 만나라니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레아가 더욱 적극적이 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레아가 얼마 전부터 기차역에서 자주 마주치는, 검고 윤기나는 털결을 자랑하는 낯선 도시 고양이 때문이다.
레아가 마을사무소 일로 기차역에서 역장님(버미 할아버지 곰)을 만나 서류를 주고받을 때
숲속마을과는 어울리지 않는 세련됨으로 눈길을 끄는 고양이가 있었다.
항상 잘 정돈된 털결과 깨끗하고 세련된 옷을 입은 그는
긴 꼬리를 흔들며 숲속마을역을 돌아다니곤 했다.
그를 볼 때마다 레아의 머릿속엔 여러 가지 상상이 둥둥 떠다녔다.
소나무시 역에서 왔으니 거기 사는 고양이겠지? 역시 도시 고양이는 뭔가 느낌이 다르구나. 같은 고양이인데도 뭔가 털결부터 다르네. 근데 이 작은 동네에는 왜 자주 오는 걸까?
매일같이 도시 배경의 드라마를 보면서, 도시 출신 고양이를 만나고 싶어하던 레아에게 그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아 참, 레아. 그 소나무 시 담당자 꽤나 멋지던데요. 평소에 도시 출신 고양이 노래를 불렀잖아. 잘 해봐요."
갑자기 레아의 어깨를 툭툭 치며 부리를 찡긋하는 미세스 펜네.
"네에? 소나무 시 담당자가요...?"
"응, 아주 매끄러운 털결의 까만 도시 고양이던데요."
이럴 수가! 이런 우연이 있나!
레아가 만나게 될 도시 담당자가 바로, 레아가 늘 기차역에서 흘끔흘끔 쳐다보던 그 도시 고양이였던 것이다!
그날부터 도시 고양이와의 업무 미팅은 쓸데없이(?) 비장해지고 말았다.
거북 아저씨 "너무......서..두..르는....티...를....내면....안...돼.........관..심...없는...척...튕...ㄱ ㅣ....."
페더 씨 "어휴, 거북 씨 그게 무슨 촌스러운 소리에요. 도시 스타일로 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괜찮아."
너구리 씨 "허허, 내가 아내 만났을 때 어떻게 했더라..기억이 잘..아무튼 레아 양은 잘 해낼 거야."
펜네 소장님 "그럼그럼, 우리 레아가 어느 마을 출신인데. 내 향수 빌려줄까?"
약속시간에 맞춰 준이 다람쥐 엄마의 미용실까지 들러 최대한 도시 스타일로 꾸밈을 한 레아는,
설레는 마음으로 도시 고양이, 아니 소나무 시 담당자를 만나러 숲속 카페에 갔다.
언제나처럼 곰철이 카운터에서 앞치마를 입고 커피를 내리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창가 자리에는 우아한 자세로 도시 고양이가 반짝이는 털결을 빛내며 커피를 핥짝핥짝 마시고 있었다.
'어머 어쩜....커피 마시는 것도 저렇게 우아할까?'
"아, 레아 씨군요. 반갑습니다."
도시 고양이가 중저음의 목소리로 레아에게 인사를 건넸다. 레아는 혹시나 자기의 얼굴이 빨개지지 않았는지 생각하며 애써 침착한 척 고개를 숙였다.
"마을 축제 건은 아시죠? 저희 도시에서 자체 개발한 드론을 숲속마을 축제에서도 홍보차 한 번 써보려고 하는데요, 그나저나, 이건 동영상으로 보여드려야 하는데... 이 카페에는 와이파이가 없나요?"
도시 고양이가 노트북을 꺼내며 두리번거렸다.
'와이파이라고....?'
곰철이 다가와 정중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손님. 저희 가게에는 아직 와이파이는 없습니다."
도시 고양이가 다소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나 참, 와이파이 없는 카페도 있다니. 정말 듣던대로 엄청나게 시골이긴 한가보네요. 뭐, 알겠습니다."
도시 고양이는 몰랐다. 곰철과, 그리고 레아의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뭐, 그렇다면 하던 이야기 계속 하죠. 일단 저희가 생각하는 예산은 이렇고요..."
"아, 생각보다는 예산이 좀 높네요..."
"그런가요? 뭐, 작은 시골 마을인 걸 감안하면 조금 조정할 수는 있습니다. 아니면 저희 제휴 브랜드 광고판을 설치하는 조건으로 더 깎아드릴 수도 있고요."
"저....저희 마을 축제는 마을 주민분들이 친목을 도모하면서 일 년 간 서로의 수고를 격려하는 자리라서요, 그렇게 상업적인 행사가 아니라 그건 좀...."
"아니, 요즘 지역 축제는 다 기업 자본으로 돌아가는데 여기는 안 그런가 보네요? 신기하네. 근데 마을 사무소 운영 자금도 필요할 텐데 그렇게 하면 운영이 되겠어요?"
레아의 꼬리가 점점 부풀기 시작했다.
어느새 땅거미가 깊게 내려오고 있었다.
도시 고양이와 레아는 카페 밖으로 나왔다.
"이야 세상에, 여기는 아직도 밤에 이렇게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구나? 이런 광경은 어릴 때나 보던 건데. 하긴 아직 초저녁인데 길에 불 켜진 가게가 하나도 없으니 별이 잘 보이나보네. 여기 개발하면 돈 꽤나 벌겠어요 하하. 레아 씨, 아까 말씀드린 제안 건은 마을 사무소 분들이랑 꼭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시고 회신을..."
"아뇨, 저희 이번 논의는 없던 걸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레아가 도시 고양이 쪽으론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단호하게 답했다.
"네? 아니 갑자기 무슨..."
"저희 축제는 그런 상업적인 행사가 아니에요. 마을 주민들이 단지 돈을 벌고 싶었다면 이렇게 빛나는 별 대신 네온사인 가득한 간판을 달아서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했겠죠. 하지만 우리 마을 주민들은 밤마다 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는 게 더 행복해요. 물론, 저도 그렇고요."
"아....."
"제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살펴 들어가세요"
레아는 도시 고양이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온천물에 달조각이 내려앉은 저녁,
레아가 문을 열고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온천 청소를 마치고 안방에서 사과를 깎고 있었다. 레아를 꼭 닮은 삼색털의, 등이 굽고 털이 푸석해졌지만 늘 바지런히 움직이는 고양이다.
"할머니, 저 왔어요."
"그래, 오늘은 그 뭐냐 도시 고양이 만난다 하지 않았어? 어때, 괜찮았니?"
레아가 한숨을 포옥 쉬며 말한다. "아...사실 좀 실망했어요. 멋있는 고양이인 줄 알았는데 자꾸 도시 자랑만 하고, 모든 걸 돈으로만 따지려고 하고...마을 축제에 드론 협찬한다는 것도 알고 보니 자기 도시의 회사들을 홍보하려는 목적이었지 뭐에요. 안 한다고 했는데 잘 한 건지 모르겠어요."
할머니가 레아 앞으로 사과 담긴 그릇을 밀며 말한다.
"잘했다. 그런 광고판 들어오면 우리 마을 주민들도 좋아하지 않을 거다. 네가 우리 마을을 잘 알지, 도시 동물들이 잘 알겠냐."
"히잉, 몰라요. 오늘은 할머니 옆에서 잘래."
"어이구 그래, 다 커도 우리 레아는 내 새끼지. 너 우리집에 올 때만 해도 엄마한테 간다고 울고불고 난리였는데, 언제 이렇게 다 커가지고. 기특하다 기특해."
"할머니는 참 또 그 얘기야."